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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Feb 17. 2023

빨래와 다림질

좀 안 하고 살 수 없을까?

  

싱가포르는 무더운 데다가 습도도 높아서 밖에서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난다. 외출하고 집에 돌아오면 잠시 입은 옷이더라도 모두 빨래바구니에 넣는다. 식구들 모두 매일 샤워하는 데다가 하루에도 한두 번씩 옷을 갈아입다 보니 빨래거리가 상당히 많이 나온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지만 세탁이 끝난 후에 빨래를 너는 것은 가족 중 누구라도 해야 하는 일이다. 주말에는 아이들이 빨래를 널거나 개기도 하지만 평일에는 내가 거의 다 한다. 나는 해가 잘 드는 발코니에 빨래건조대를 놓고 옷은 옷걸이에 걸어서 양말이나 수건은 널어서 말린다. 거실에 빨래건조대를 두면 집이 깔끔하게 보이지 않는 단점이 있지만 나는 햇살을 머금은 빨래 냄새가 좋아서 오래전 의류건조기를 버린 후 새로 사지 않았다. 의류건조기를 사용하면 비 오는 날에도 빨래 말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짧은 시간에 뽀송뽀송하게 건조되어서 좋았지만 때때로 새로 산 옷들이 줄어들기도 하고 옷감이 상하기도 해서 속상한 적이 있었다. 무엇보다 건조기가 다 돌아간 후에 빨래를 바로 꺼내지 않고 몇 시간 후에 꺼내면 옷이 쭈글쭈글하게 구겨져 있어서 나는 그게 제일 불편하게 느껴졌다. 비가 자주 오는 우기(11월~1월)에는 의류건조기가 없는 것이 좀 아쉽기는 하지만 하루 종일 비가 오는 날은 드물고 천장에 달린 실링팬을 돌리면 빨래가 웬만큼 잘 마르는 편이어서 괜찮다. 우기가 지나 건기가 되면 햇볕이 강해서 이불 빨래를 해서 널어도 서너 시간이면 바짝 마르니 의류건조기가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나는 요즘 빨래건조대에 일일이 빨래를 너는 것이 많이 번거롭게 느껴진다. 특히 일이 많은 날 빨래를 널고 있자면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빨래가 다 마르면 다림질할 옷은 한 편에 모아두고 주말에 다림질을 한다. 사실 다림질은 집안일 중에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다. 빨래가 많으니 당연히 다림질할 옷도 많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에어컨을 켜고 다림질을 해도 다리미 열기 때문에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오르고 오랫동안 서서 다림질을 하다 보면 팔도 다리도 아프다. 나는 무슨 일이든 미루지 못하고 바로바로 해 버리는 편인데 이상하게도 다림질만큼은 미루고 미룬다. 매일 다림질을 하면 좀 쉬울 텐데 주말에 한꺼번에 옷을 다리려고 하니 한숨부터 나올 때가 많다. 다림질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지만 한국과 달리 싱가포르는 세탁 및 다림질 서비스가 잘 발달되어 있지 않다. 싱가포르의 5 가구 중 1 가구가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지에서 온 메이드를 고용하고 있기 때문에 세탁 및 다림질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적고 일 년 내내 여름옷을 입기 때문에 해외여행을 갔다 온 게 아니라면 드라이클리닝을 맡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현지 친구의 소개로 잠시 다림질 서비스를 이용해 본 적이 있었다. 셔츠 한 장당 다림질 요금이 2불(18년 전 환율로 1400원 정도)이었는데 수거한 옷을 일주일 후에나 배송해 주었다. 다림질을 맡긴 옷이 갑자기 필요해도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으니 답답할 때가 자주 있었다. 결국 다림질 서비스 이용하는 걸 포기하고 내가 직접 다림질을 하게 되었다.     


내게 있어 다림질은 어려운 일이라기보다는 귀찮고 힘든 일이다. 다려야 할 옷이 많은 데다가 남편과 아들 옷은 크고 길어서 다림질하는 데 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스탠드형 다리미판과 스팀다리미를 사용해서 옷을 다린다. 다림질하기 쉽도록 빨래를 널 때 탁탁 털어서 손으로 좍좍 편 후 옷걸이에 걸어 말리기 때문에 구김이 심한 옷은 없는 편이다. 식구들 옷 중에서 가장 공을 들여 다리는 건 남편의 셔츠다. 먼저 셔츠 깃의 안쪽과 바깥쪽을 조금 힘주어 다려서 빳빳하게 세워준 후 소매 끝의 안쪽과 바깥쪽도 다린다. 싱가포르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양복을 입을 일도 거의 없고 긴소매 셔츠를 입을 때도 자연스럽게 소매를 접어 올려 입으니 셔츠 깃만 신경 써서 다리면 되지만 해외출장 시 양복 안에 입는 드레스셔츠는 소매 끝에도 신경을 많이 써서 다린다. 소매 끝에 아주 작게 새겨놓은 남편 이름 이니셜이 깔끔하게 보이도록 주름지지 않게 다린다. 소매를 다린 후 앞판, 등판, 어깨 부분을 다리고 앞판 단추와 단추 사이를 다리미 뾰족한 부분으로 다려준다. 옷걸이에 반듯하게 걸어서 단추를 잠가 준다. 남편의 셔츠와 바지를 다 다리고 나면 다림질이 한결 수월해진다. 쌓여 있는 옷은 많지만 대충 주름만 펴 주고 마무리한다.  

    

힘들고 귀찮은 다림질을 할 때 나는 언제나 《나 혼자 산다》와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본다. 시시콜콜 웃고 떠드는 그들을 보면 주중에 일을 하고 주말에 다림질을 하고 있는 나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부러운 생각이 들지만 나도 같이 깔깔거리고 웃다 보면 어느덧 다림질이 끝나기 때문에 가벼운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편이다. 깔끔하게 다려서 옷걸이에 쭉 걸어놓은 옷들을 보면 속이 시원해지고 흐뭇한 마음도 든다. 내가 잘 다려준 옷을 입고 일을 할 남편과 공부를 할 아이들을 생각하면 조금 짜증 나고 힘들었던 마음도 사르르 녹는다. 빨래와 다림질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요즘 나오는 의류건조기는 오래전에 내가 샀던 것보다는 성능이 좋을 건 같긴 한데 탈수가 다 된 옷을 한꺼번에 건조기에 넣고 같은 온도와 시간으로 돌려도 될지 의문이 든다. 옷을 분류해서 수건과 속옷은 건조기에 넣어 말리고 겉옷은 빨래건조대에 널어 말린다면 지금보다 얼마나 더 편리할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물건을 사기 전에 그 물건이 나에게 꼭 필요하고 살 만한 가치가 있을지 고민하는 습관 때문에 쉽사리 사지도 못한다. 주말이 다 되어 가니 쌓여 있는 다림질거리가 또 눈에 거슬린다. 에어컨을 켜고 레몬즙과 얼음을 넣은 탄산수를 마시면서 여느 때와 같이 이번 주에도 《나 혼자 산다》를 보며 다림질하고 있을 내 모습이 벌써 눈에 선하게 보인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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