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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Jan 24. 2023

너무 애쓰며 살지 않을 결심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


작년 12월 초 나는 세상이 빙빙 도는 어지러움을 겪었다. 여느 때와 같이 학교에 가려고 옷을 입고 귀걸이를 한 후 잠시 의자에 앉아 유튜브를 보다가 집에서 떠날 시간이 되어 일어섰는데 갑자기 주위의 사물들이 핑핑 돌기 시작했다. 의자를 잡고 한참 동안 서서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수업 시간이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았지만 급히 학생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그날 수업을 취소했다. 재택근무를 하고 있던 남편을 불렀다. 가만히 침대에 누워 움직이지 않고 있으니 조금 진정이 되는 듯했지만 일어서서 걸으니 다시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중심을 잡기가 어려웠다. 가까운 종합병원 응급실로 급히 갔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몇몇 질문을 하신 후 어지러운 증상이 뇌의 이상으로 올 수 있는데 몇 가지 정밀 검사를 해 봐야 한다고 하셨다. 피검사와 심전도 검사 그리고 뇌 MRI를 찍었다. 검사 결과는 다음 날 새벽에 나왔는데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어지럼증을 완화시켜 주는 약 일주일 치를 처방해 주시고 약을 다 먹고도 낫지 않으면 신경외과로 가라고 하셨다. 약을 복용하니 어지럼증은 며칠 내에 가라앉았지만 온몸에 힘이 빠진 듯 축 쳐지는 느낌은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다행히 그다음 주는 온라인으로 중간고사를 치러서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시험 감독을 할 수 있었고 크리스마스 전후로 짧은 방학이 있어서 조금 쉴 수 있었다.


쉬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신경을 쓰지 않고 최소한의 일만 하려고 했다. 누워서 멍 때리거나 영화를 보면서 멍 때렸다. 매일같이 영화를 봤지만 기억에 남는 영화가 별로 없는 걸 보면 영화만 틀어놓은 채 딴생각을 한 것이 분명하다. 그동안 잔병치레 없이 잘 지내왔는데 갑자기 이렇게 몸이 안 좋은 이유가 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치열하게 살아왔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싱가포르에 와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느 정도 안정이 된 30대 후반에 내 일이 하고 싶어졌다.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육에 크게 관심은 없었지만 재취업을 하기에는 유망할 것 같았다. 당시 싱가포르에 한류 열풍이 불어서 한국 음식과 한국 드라마 그리고 한국어에 관한 관심이 아주 뜨거웠기 때문이다.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수요도 많아서 파트타임으로 일자리를 찾는 것도 어렵지 않아 보였다. 우선 한국에 있는 어느 대학교에서 온라인 한국어교원 양성과정을 수강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재미가 있었다. 공부는 주로 아이들이 학교에 간 시간에 집중적으로 했다. 아이들이 다니던 초등학교는 1학년과 2학년은 오전·오후반으로 분반해서 운영하는 학교여서 두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가고 나 혼자 있는 시간은 오후 12시부터 1시 반까지 단 1시간 반 밖에 되지 않았다. 한국 초등학교처럼 급식을 주지도 않아서 큰아이 점심을 미리 준비하면서 작은아이 도시락도 싸 주었다. 혼자 있는 귀한 시간에 나는 밥을 먹지 않고 공부를 했다. 3개월 간 공부를 한 후 수료증을 받았다. 우선 어느 기관에서 본격적으로 일하기 전에 동네 이웃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쳤다. 가끔 방문수업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시간만 맞으면 방문수업 또한 마다하지 않고 하러 갔다. 나만의 자료도 차곡차곡 만들면서 조금씩 경력을 쌓았다. 그러다가 운이 좋게 A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게 되었고 한 반만 맡았던 첫 학기와 달리 다음 학기부터는 여러 반을 맡게 되었다.


수료증만 가지고 학교에서 일하다 보니 실력이 턱없이 부족한 게 느껴졌고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하면서 사이버대학교 3학년에 편입을 해서 학위를 받고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부여하는 자격증도 취득했다. 매 학기 강의평가에서 좋은 피드백을 받게 되자 S항공사와 S기업체에 강의를 나가게 되었고 지금 다니고 있는 B학교에도 강의를 나가게 되었다. 학교 두 군데와 기업체에 동시에 나가다 보니 매일매일 너무나도 바빴다. 하루일과는 새벽 6시에 두 아이들을 등교시켜 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1시간 정도 운전을 하고 집에 오면 청소를 하고 빨래를 널고 개고 다리고 오후에 아이들이 집에 오면 먹을 간식에 저녁까지 미리 준비를 해 놓았다. 집안일을 빨리 끝낸 후 다시 한번 수업자료를 훑어보며 머릿속에 정리하고 정장을 입고 한껏 꾸민 후 학교나 회사에 갔다. 집에 돌아온 후 늦은 저녁을 먹고 부엌을 정리하고 조금 쉬었다가 다음 날 수업을 준비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하루 종일 시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종종거리면서 바쁘게 살았다. 지난날들을 생각하며 침대에 누워 이리저리 뒤척거리다 보니 참으로 내가 억척같이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철저히 계획형 인간이어서 계획을 세우면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목표를 설정하고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한번 마음먹은 건 웬만해서는 포기하지 않는다. 나 스스로를 끊임없이 응원하기도 하지만 나 스스로를 많이 다그치기도 한다. 나를 편안하게 내버려 둔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응급실에 다녀온 후 생각이 많아졌다. 갱년기가 되어도 예전과 같은 체력을 유지하고 건강하게 산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육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재충전의 시간이 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어 강사로 일하기 위해 내가 투자한 돈과 노력과 공들인 시간은 이제 모두 보상받을 만큼 받은 것 같다. 운이 좋게 여기저기에서 일을 하고 공로상과 표창장도 받았다. 싱가포르 현지 신문에 내가 대문짝만 하게 소개가 되는 영광도 누렸다. 더 하지 않아도 아쉬울 게 별로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정말 하루도 열심히 살지 않은 날이 없다. 나를 너무 다그치며 욕심껏 잘하려고 하다 보니 이제 몸에 무리가 온 것 같다. 대충 하는 법이 없어서 참 피곤한 삶을 사는 것도 같다. 새해에 나는 지금껏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새로운 결심을 해 본다. 너무 열심히 살지 않을 결심, 너무 애쓰지 않고 살 결심 그리고 너무 나를 닦달하지 않고 살 결심을 하며 올해는 꼭 쉬어가기로 한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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