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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환희 Sep 28. 2015

해질무렵 스리랑카

콜롬보, 스리랑카


콜롬보의 해질녘은 아름답다를 넘어 완벽하다. 이제껏 바다로 향하는 해를 수도없이 마주했지만, 스리랑카의 하늘과 인도양이 품은 해만큼 극적인 것은 보지 못했다. 구름은 유달리 선명했고 하늘은 유달리 붉었다. 하얀 구름에 으스러지는 태양 비쳐 절반만 붉어졌다.


기찻길은 바다 바로 옆에 있었다. 기차는 몬순의 습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를 가로질렀다. 파도에서 흩뿌려지는 물방울은 환상을 그렸다. 퇴근길의 사람들은 꽉찬 기차칸에 몸을 싣고 천천히 흘러갔다. 문에 간신히 매달린 사람들은 바람에 실린 파도의 잔해를 마주했다. 나는 그 기찻길의 어딘가에 서서 하염없이 시간을 버렸다. 안경은 이내 뿌옇고 작은 물방울이 가득해졌고, 기찻길 위는 점점 더 몽환적으로 변했다. 안경을 쓰는 유일한 장점이 아마 이런것이리라. 내 눈은 몽환의 필터를 끼고 있다.


기찻길은 대개 사람이 아닌 기차의 영역이다. 높은 장벽이나 철조망으로 사람의 접근을 막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콜롬보의 기찻길은 아무런 장벽이 없다. 사람들은 기차를 타러 기찻길을 가로질렀다. 기찻길을 넘어 해질녘을 마주하기도 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기차 경적에 사람들은 당황하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바로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멀찌감치가 아니라 아주 바로 옆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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