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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환희 Oct 08. 2015

그냥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파리, 프랑스


내가 파리에 머무는 기간동안 가장 화제가 되었던 것은 투르 드 프랑스였다. 투르 드 프랑스는 프랑스 전역을 거쳐, 프랑스를 상징하는 샹젤리제 거리에서 막을 내리는 세계 최고 권위의 자전거 경주다. 가끔 호스트와 함께 중계를 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경주는 둘째치고 자전거가 지나가는 풍경이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 전역을 돌아다니는 이 자전거 경주는 그 자체로 도시와 나라를 알릴 수 있는 대단히 큰 요소였다. 거리가 거리인만큼 꽤 오랜시간동안 중계를 했고, 카메라는 선수만을 쫓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풍경을 담으며, 그 속에 담긴 역사, 문화등의 이야기를 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알게모르게 그 지역이 갖는 특별한 매력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관광대국, 문화대국은 이런 과정 속에서 탄생하는구나 싶었다.


2013년 여름 파리에 있었을 땐, 투르 드 프랑스 결승전이 열렸다. 나는 별 생각없이 개선문을 가려다 죠르쥬생크 지하철역이 막혀있는 것을 보고 '아! 오늘이 결승이지'했더랬다. 샤를드골역에 내려보니 이미 수많은 인파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맨 뒤에서 나는 발꿈치를 들고 고개를 쭉빼서 스치듯 지나가는 자전거를 스치듯 바라봤다. 하지만, 이마저도 한계가 있어 대개는 눈보다 귀로 진행상황을 살폈다. 환호성이 들리면 선두그룹이 이곳으로 다가오는 식으로 말이다. 


색색의 자전거들은 개선문을 돌아 샹젤리제 거리로 향했다. 그리곤 콩코드 광장을 돌아 다시 개선문으로 향했다. 나는 끊임없이 이곳을 도는 자전거들을 보며 한가지 의문이 생겼다. 선수들은 자신의 경주가 얼마나 남았는지 어떻게 알까? 그들은 어떻게 힘을 배분하는걸까? 당시 나는 혼자 고민을 하다 '선수들은 얼마나 남았는지 생각하지 않고, 마지막 종이 울릴때까지 온몸으로 밀고 나간다'라고 결론을 내버렸다. 그리곤 집으로 돌아와 호스트에게 이에대해 물었더니, 호스트는 1. 자전거에 비치된 속도계의 거리측정, 2. 선두그룹 앞 오토바이에 랩 표시 등으로 안다고 얘기해주었다. 낭만(?)적이지 못하고 지극히 건조한 답변에 흥이 달아났지만, 그 날 인터넷 검색을 하다 어떤 경륜선수의 인터뷰를 보곤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달릴때는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냥 나를 믿고 끊임없이 나아간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는 김수영의 산문 「시여, 침을 뱉어라」에 나오는 말이다.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나가는 것이다. (중략) 그러면 온몸으로 무엇을 밀고 나가는가. 그러나-나의 모호성을 용서해준다면-'무엇을'의 대답은 '동시에'의 안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즉 온몸으로 동시에 온몸을 밀고나가는 것이 되고, 이 말은 곧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 된다. 그런데 시의 사변에서 볼 때, 이러한 온몸에 의한 온몸의 이행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바로 시의 형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시를 논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산문의 의미이고, 모험의 의미이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의 형식은 내용에 의지하지 않고 그 내용은 형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민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 공헌한다. 바로 그처럼 형식은 내용이 되고 내용은 형식이 된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시여, 침을 뱉어라>,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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