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하이킹을 하면서, 그리고 카우치서핑과 다른 만남을 통해서 꽤나 많은 일본의 청년들을 만났다. 사실 일본 여행을 하기전 일본 청년들에 대한 이미지는 '니트족', '프리터족'에 가까웠다. 장기화된 불황으로 인해 성장동력을 잃은 국가에서 청년들은 꿈과 희망없이 하루하루를 소비한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단어들이다. 현재 일본의 중장년층들은 청년세대를 보는 눈이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다. 전후 의욕적이고 (국가와 가정에)희생적이었던 자기세대와는 달리, 지금의 젊은 층은 대단히 이기적이고 자기파괴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내가 만났던 40대 중반 한분은 '일본의 젊은이들 때문에 일본은 미래가 없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직접 일본 청년들을 만나면서 부정적인 느낌보다는 오히려 긍정적인 인상을 받았다. 그것은 바로 사토리 세대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사토리는 '득도', '깨달음'을 일컫는다. 성장기에 학습된 불황과 일종의 좌절을 통해 꿈을 크게 갖는 것이 아닌 자기만족의 범주에서 갖는 것이다. 그러니까 먼 미래가 아니라 하루하루를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가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나라에서 나고야 방향으로 히치하이킹을 하면서 욧카이치로 향하는 한 청년들을 만났다. 20대 중반인 이들은 각기 공장 등지에서 일하고 있었고, 그 젊은 나이에도 이미 도요타 FJ크루저와 같은 그럴듯한 차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에게 욧카이치로 가는 이유를 물어보니 그저 "욧카이치에 유명한 스테이크를 먹으러 간다"라고 답변을 했다. 나라에서 욧카이치는 130킬로미터 가량. 왕복 260km의 거리를 그저 스테이크 하나 먹으러 가는 것이었다. 함께 이동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우리나라의 비슷한 나이대에서 느낄 수 있는 무게감이나 어두운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상당히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함께하는 시간동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서 만났던 청년들도 마찬가지였다. 불황에 따른 어두운 느낌을 그리 접할 수는 없었다.
내가 그들을 만난 짧은 시간에 그들의 삶에 대해 유추하는 것은 그리 설득력이 높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 일본 정부가 행한 생활 만족도 설문조사를 참고하자. 일본인 70%는 자신의 현재 삶에 만족했다고 응답했고, 20대는 무려 79.1%가 만족한다고 대답하였다. 이는 전 세대 중 가장 높은 수치이다.
http://blogs.wsj.com/briefly/2014/08/25/5-takeaways-from-japans-life-satisfaction-survey/
나는 내가 만난 일본의 청년들을 보면서 각기 다른 인상을 몇가지 접했다. 한가지는 개인에 관한 것이고 한가지는 국가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가지는 기득권에 관한 것이다.
1. 개인의 관점
사토리 세대는 삶의 중심을 성장이나 미래에서 찾지 않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관심과 만족을 삶의 중심에 놓았다. 통념적 인식으로 이들의 삶을 보면 '그저 하루하루를 소비할 뿐'이라고 여겨질 수 있겠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의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욕망'과 '책임'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욕망을 줄이고, 책임의 범위를 제한한다. 결혼과 연애를 하지 않는 인구가 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결혼, 그리고 출산은 필연적으로 책임을 낳고, 자신의 행복 범위를 넘어선 희생을 요구하게 된다. 통념적 인식에서 이는 '자기파괴'의 범주에 들어간다. 자신의 욕망을 파괴하여 만족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토리 세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해진 사회구조에서 자신의 작은 욕망이라고 지키는 일종의 '자기보존'에 가깝다. 그들은 행복을 수치나 외적 요소가 아닌 내적 요소에서 찾았다. 국가의 경제 성장과 내 행복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단 말인가? 경제성장률이 8%를 찍으면 내 행복도 8% 증가하는가? 사상 최대의 무역수지 흑자를 이뤄내면 내 지갑도 흑자인가? 국가에서 떠들어대는 경제, 통계적 관점은 사실 개인의 행복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행복과 관련이 있다고 국가가 믿게 만들뿐이다. 이들은 분명 행복하다.
2. 국가의 관점
국가의 성장적 관점에서 사토리 세대는 긍정적이지 못하다. 어찌되었건 욕망은 부를 일궈낸다. 새로운 성장동력은 일종의 욕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더 잘살고 싶은,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자기만족에서는 수치화된 성장을 이루기가 어렵다. 사토리 세대를 만나면서 일본의 경제가 그리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라는 인식을 받은 것도 이때문이다. 가장 도전적이고 활기가 넘쳐야할, 때로는 사회에 반동분자적 기질을 보여야하는 젊은이들이 '만족'한다는 것은 그만큼 죽어가는 국가, 사회라고 판단할 수 있다. 일본 청년들의 정치참여비율이 매우 낮은 것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이다. 전세계적으로 활발한 청년 스타트업도 유독 일본에서는 별다른 성공이야기가 없는 것도(신화는 여전히 57년생 손마사요시 아닌가?)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볼 수 있을듯 하다. 사회 구성원이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 국가의 발전가능성은 낮을 수 밖에 없다.
3. 기득권의 관점에서
개인, 국가가 아닌 이미 부를 거머쥔 기득권의 관점에서 사토리 세대를 바라보자.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나는 대체로 긍정적이라고 판단한다. 사토리 세대는 세상의 변혁이나 도전은 꿈도 꾸지 않는다. 그저 지금처럼 묵묵히 살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 살아갈 만큼의 경제활동과 소비활동을 하면 되는 것이다. 취향의 큰 변화도 없고 덤덤하게 삶이 지속된다. 자신의 취향에 대해 소비하는 것은 주저하지 않는다. 이미 부를 축적한 기득권의 입장에서 사토리 세대는 젖과 꿀이 흐르는 단물이다. 기득권에게 도전할 용기와 배포도 없고, 기득권이 만들어놓은 일종의 플랫폼에서 그저 살아가고 있을 뿐이니 말이다.
나는 이란을 여행하면서 이 기득권의 관점이라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 이란은 호메이니-하메네이로 이어지는 최고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독재국가이다. 외부에서 보았을 때, 독재국가에서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불행하고 힘겨울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직접 이란을 가보고 이란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함께하다보면 그것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란인들은 대개 그들의 삶에 만족한다. 자유의 억압에 대해서는 분명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기본적인 삶에 대해서는 별다른 불평이 없다. 이란은 석유를 기반으로한 국민 복지와 사회적 인프라가 꽤나 잘 갖춰져 있다. 물가도 저렴하고 취미도 즐겁게 누린다. 생활수준도 상당하다. 먹고사는 것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독재정권에서 지속적으로 '손'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온갖 보조금과 같은 정책들로 말이다. 내가 만나본 이란인들은 정부를 싫어하면서도 이를 넘어서는 투쟁이나 혁명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사실 이런 혁명이라는 것은 개인의 삶 자체가 너무도 힘겨울때 불이 붙는 경우가 많다. 비참해야 뒤집는 것이다. 그러나 이란에서의 삶은 전혀 비참하지 않다. 내 삶은 잘 유지되고 있는데, 굳이 위험부담을 안고 투쟁할 필요는 없는 듯 보였다.
다시 일본으로 돌아오자. 초고령화 사회인 일본의 인구구조상 일본에 중국과 같은 경제 성장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파이가 커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득권의 입장에서 어떤것이 더욱 합리적인 생각일까? 파이를 지키는 것이 최선이다. 얼마전 자민당의 아베가 또 한번 정권을 잡았다. 또 자민당이다. 허구한날 자민당이다. 일본의 보수화는 트렌드를 넘어 일상이다. 그리고 일본의 가장 큰 경제사회집단인(기득권이라고 표현해도 되겠다) 단카이 세대의 은퇴를 앞둔 시점이다. 단카이 세대는 자신의 기득권을 은퇴와 함께 자식세대에게 넘겨줄까? 전혀 아니올시다. 오히려 넘겨주지 않기 위하여 더욱더 꽁꽁 싸맬 것이다. 이와중에 사토리 세대는 썩 나쁘지 않은 대상 아닌가? 기득권을 넘볼 대상도 아니고. "네놈들은 우리처럼 도전의식이 없어!"라고 꾸중도 할 수 있고.
4.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일단 현재 한국은 사토리 세대가 크게 확장되기가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사토리 세대도 어찌되었건 최소한의 경제적 여건은 갖추어야 하는데, 한국은 그마저도 버겁다. 일본의 최저임금은 우리나라의 두배 수준이다.(물가는 비슷하다) 그리고 상당히 많은 기업들이 취업시 교통비와 주거임대료를 보조해준다.(내가 도쿄에서 만났던 한 20대의 집은 월세가 6만엔이었는데 이 중 2만엔을 회사에서 부담해주었다) 때문에 실질적인 생활비는 우리나라보다 저렴한 편이다. 개인의 행복을 위한 취미생활에 투자할 여유가 있는 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취미생활을 누릴만큼의 여건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청년들은 성장도, 행복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왜 폭발을 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다음에 생각해보도록 하자)
5. 그래서 고민해볼 것은
결말을 내고자 쓴 글이 아니다. 또다른 질문을 던지려고 쓴 글이다. 첫째, 그래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적 만족인가 외적 성취인가? 둘다인가? 아니면 또 다른건가? 혹시 균형인가? 둘째, 미디어로부터 접하게 되는 세대간 담론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세태를 파악하는 것인가? 의도가 담긴 것인가? 셋째, 오늘 저녁은 남은 동태찌개인가 먹어보지 못한 또 다른 무언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