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타푸르, 네팔
어느 햇빛 강한 유적위에 올라 있는데 옆으로 다가온 한 관광객이 눈에 익었다. 관광객은 그 주변에 앉아 현지인 소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리봐도 어디서 본 얼굴이다. 기억을 하려고 애를 썼다. 누군가. 어디서 만났던가. 생김새로 보니 프랑스인 같아 프랑스에 관한 기억을 뒤적여봤다. 그렇게 순차적으로 프랑스 기억을 되뇌이다가 이름이 떠올랐다. 노엘라! 다만 긴가민가했다. 나도 그 옆에 앉았다. 물어본다.
"너 프랑스 사람이냐?"
"그래"
"노엘라?"
"너 내이름 어떻게 알아?"
"안시?"
"나 안시 살았었는데...너 누구더라...아! 카우치서핑! 그 때 블라블라"
노엘라는 재작년 유럽 히치하이킹 여행을 할 때, 프랑스 안시의 호스트였다. 서로를 바로 기억하지 못했던 것은 일년 반이라는 시간도 있었지만, 호스트지만 한 밤 중 파티에서나 몇번 말을 나눈 사이였기 때문이다. 당시 노엘라의 집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게다가 그날 걔 중 한명의 생일파티가 있어 정원에서 룸메이트 + 카우치서퍼4명 + 친구 및 이웃주민들 + 그리고 내가 데려온 친구 2명까지...아주 많은 이들이 함께했다. 나는 호스트 노엘라보다 다른 카우치서퍼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니 서로가 가물가물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프랑스가 아닌 네팔에서. 약속도 없이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참 값지다. 책에도 썼다만, 스쳐지나가는 듯한 사람들의 특별함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그리고 나는 어떤 의미를 가진 사람으로 남는지도.
그때 노엘라와 이야기하던 소년. 이 소년은 오후 세시무렵 이 광장을 찾았을 때, 내게로 다가왔다. 14살. 이름을 물어보았는데 까먹었다. 네팔에선 흔한 이름이라는데, 내게 흔한이름은 아니지 않는가? 소년은 일종의 가이드.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관광객에게 다가가 이 곳을 소개시켜줄테니 얼마간의 돈을 달라는 관광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아이였다. 다만 여느 아이들보다 말빨이 좋았고, 친화력도 높았다. 한마디로 영리했다. 물론 나는 가이드를 대동하는 유형의 여행자가 아니기에 가이드 보다는 소년의 삶에 대해 많은 질문을 했다. 좋아하는 사람은 있냐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페이스북으로 고백했단다. 내가 그건 좋은 고백 방법이 아니라고 했더니. 더이상 사랑에 관해서는 질문하지 말랜다. 아마도 아픔이 있었나보다. 사랑은 참 좋은것이라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이야기를 해줬는데 소년은 지루해한다. 녀석도 참.
스무살이 되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는데. 별다른 생각이 없다고 했다.
"너는 영리해보이는데 조금 더 공부를 해서 기회의 폭을 넓혀보는건 어때?"
그리곤 내가 호주에서 만난 수많은 네팔인들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러자 소년은
"그건 부유한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에요. 저는 강가에 사는 가난한 가정 출신이라 그런 기회는 오지 않을꺼에요. 그런데 이 참에 제가 박타푸르 가이드를 해줄테니 약간의 돈을 주고 제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줘보는건 어떨까요?"
그 순간에도 영업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영리한 소년이었다.
그러나 영리하지만, 가난하기에 자신의 한계를 먼저 규정짓는 소년이기도 했다.
그렇다. 기회는 원래 불평등하다. 세상은 평등했던 적이 없다. 앞으로도 없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그 불평등을 어떻게 인식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문제는 별개다. 불평등으로 자신의 한계를 먼저 규정짓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나는 언젠가 내가 A급 삶을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환경에 속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기서 말하는 A급 삶이란 부유한 가정, 풍부한 인맥, 좋은 학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직장 등을 모두 포괄한 것이다. 쉽게 말해서 집에 몇백억씩 있어서 유학쯤은 쉽게 보낼 수 있고, 친인척에 판사, 검사, 의사, 국회의원쯤은 갖춰져있고, 해외 유수의 대학 석박사학위는 기본이며, 외국계 컨설팅 회사를 거쳐 스타트업에 뛰어드는(나는 경영학 전공이다) 등의 삶이다. 물론 이것도 우스운 S급 삶이 있겠지만, 그건 내 상상밖이니 이쯤에서 이것을 A급이라고 칭하자. 하여간 A급 삶에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속할 기미를 보일것도 같지 않았다. 내가 재벌가의 딸을 꼬셔 한순간에 모든것을 거머쥐는 남성판 신데랄라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얘기에 내 친구는 '까고있네'라고 대답해주었다. 뭘 까면 가능한걸까?
그 '깨달'았던 날에 나는 정공법으로는 답이없다는 사실을 또 한번 깨달았다. 그러니까 내가 남들이 다 가는 길로 간다면 그저 평생을 A급 인생 뒷꽁무니만 쫓다 죽을때쯤 "아 허망한 인생이여"하고 느끼게 되지 않을까하는 강력한 기운을 느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회하기로 했다. 다른 길로 가기로 했다. (물론 그 때 이미 다른 길로 가 있었기에 이렇게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나는 언제부턴지 모르지만 좀 다른 길에 서있었다.) 어차피 만지기 힘든 기회라면, 그걸 인정하고 다른 기회를 만들어보려 했다. 그 속에서도 전이나 지금이나 내 한계를 규정짓지는 않았다.
내 앞의 불평등은 내 세대에선 해소되지 않는다. 고도를 기다려도 고도는 오지 않는다. 직접 찾아가는 수 밖에 없다. 삶은 원래 부조리하다. 변혁을 기다리기 전에 먼저 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나서서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당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기회는 원래 불평등하다. 다만 그 불평등으로 자신의 한계를 규정짓지는 말자. 인정하되 넘어서자. 길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제도화 된 길에서 1등으로 달릴 자신이 없다면, 지름길을 찾아보자. 혹은 막히지 않는 우회하는 길을. 아니면 다른 길을 가보자. 아예 길을 만들던가. 하여간 끝끝내 가자.
그리고 가더라도. 사다리 걷어차는 속좁은 놈이 되지는 말자. 을에서 갑이 되었다고 갑질이나 행하는 수준떨어지는 놈은 되지 말자.
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이건 박타푸르를 떠나는 200원짜리 로컬버스에서 생각이 났다. 영리하니까 좀 알아들었겠지. 이젠 삶으로 증명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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