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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환희 Dec 10. 2015

雨中野營 : 비오는 제주에서 캠핑 중

협재, 제주


제주다. 제주로 백패킹을 떠난지 며칠이 지났다. 남들은 느긋하게 걷는 올레길, 남들은 가볍게 즐기는 애월의 해변 카페 부근을, 나는 거대한 배낭을 짊어지고 거닐었다. 배낭엔 텐트와 침낭과 취사도구와 몇몇 옷가지, 책, 그리고 이놈의 노트북까지 들었다. 캠핑 출발하기 전 따뜻한 제주라지만 '동계'이기에 거대한 동계 침낭을 하나 들였다. 배낭의 반절 이상이 침낭이다. 텐트와 매트리스는 집어넣을 구석이 없어 배낭 외부에 매달았다. 그렇게 숙박의 완전한 자유를 얻고 발걸음의 경쾌함을 잃었다.


곽지과물해변에서 캠핑한 어제는 밤새 비가 내렸다. 그치기만을 바랐으나 오늘 협재에서도 어김없이 비가 내린다. 차라리 내린다면 눈이길 바랐으나 비다. 비를 맞으며 재빨리 텐트를 치고 물길을 만들어 침수 대비를 했다. 일을 마치고 텐트로 들어오니 머리와 티셔츠는-비에 젖는 대상을 적게 하고자 반팔만 입고 텐트를 쳤다- 땀과 비에 젖어있었다. 한 겨울에 반팔 티셔츠라, 한 겨울에 땀이라. 오늘 제주는 15도 안팎이었다. 한계온도 -17도라는 침낭이 무안하다. 


텐트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가득하다. 밖으로 나와보면 비가 많이 내리는 것 같지 않은데도 텐트 속은 빗소리 오케스트라 급이다. 떨어지는 한 방울 한 방울이 제각기 소리를 가진다. 좁은 텐트에서 그 소리가 울린다. 공부가 잘된다며 90년대 청소년들을 현혹시킨 엠씨스퀘어에 버금간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공부와 별 상관없는 것은 매한가지다. 그냥 소리가 좋을 뿐이다. 데헷.


내일은 비가 그칠지, 어디에서 캠핑을 하게 될지 모르지만 즐겁다. 오늘 누군가를 만나 시간을 함께한  것처럼 내일도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17도 동계 침낭에게 이름이나 지어주고 그놈이랑 얘기나 하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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