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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환희 Nov 24. 2015

권태

아비아네, 이란

권태와 너무도 쉽게 마주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난 왜 그리도 조급했나 싶다. 조금 더 넉넉하게 시간을 보냈으면, 조금 더 많은 것을 담아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짙다. 정작 내가 지친 부분은 멈추지 않고 새로운 것만을 위해 앞으로 나가던 모습이었는데, 그때의 나는 그것을 모르고 더 낯선 것만을 갈구했다. 멈춰야 보이는 것을 모르고 달리면서 왜 보이지 않냐고 낙담하기만 하였다.




아비아네(Abyaneh)는 이란의 중부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160가구, 305명(2006년)이 살고 있는 이곳은 붉은 점토로 만든 전통적 주거환경과 화사한 꽃무늬 차도르를 하고 있는 주민들로 알려져있다. 늘 그렇듯 전통적 가옥은 주변에서 가장 흔히 구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진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 수많은 집의 색과 근처에 있는 산의 색이 별다른 차이가 없다. 이 동네의 흙이 붉기에, 집도 붉은 것이다. 터키의 마르딘(Mardin)의 경우 아비아네와 비슷한 주거환경을 보여주는데, 그 동네의 흙은 황토색이라 산과 집이 모두 황토색이다.


이란을 여행하던 시기의 내 눈은 사진을 찍은 모습과 비슷한  듯하다. 새로움, 특별함은 저 수백 개의 집 하나하나에 있는 것인데, 나는 전체 풍경만을 보고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다고 여기고 발길을 재촉하였다. 이때가 여행  8개월가량이었을 때. 잠시 멈춰 서서 천천히 마주하는 것들을 품어냈어야 했는데, 나는 오히려 스스로를 밀고 또 밀었다. 나아가는데만 익숙했다. 앞으로만 달리는 것이 권태였는데, 나는 더 빨리 달리면 권태가 사라질 것이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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