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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환희 Apr 13. 2016

"저 아저씨 뭐하는 사람이야?"

가오슝, 타이완


내가 가오슝에 있을 땐 해가 지면 매번 폭우가 내렸다. 나는 집을 나설 때 비가 내리지 않으면, 그깟 일기예보가 아무리 "오늘 비 와요. 제발 우산 가져가요"라고 사정을 해도 우산을 가져가지 않는 사람이라, 밤이면 매번 비를 쫄딱 맞는 처지가 되었다. 혹자는 띨띨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내 나름의 운치이자 내 나름의 취향이다. 물론 띨띨한 건 사실이다. 


아무튼, 비를 쫄딱 맞으며 걷다가 잠시 숨을 돌리려고 어느 허름한 건물의 지붕 밑에 들어갔다. 머리를 털고 간간이 젖은 발에도 달려드는 모기를 쫓고. 그러다가 앞을 보니 폭우 속에 스쿠터들이 수도 없이 지나가더라. 빗방울을 거스르며, 빗물을 틔기며. 바쁘게 걸었을 땐 눈에 보이지 않던 움직임이 내가 멈춰있으니 눈에 띄더라. 


그래서 나는 지나가는 스쿠터를 쫓았다. 비에 쫄딱 젖은 채, 지붕 밑에 쭈그리고 앉아, 지나가는 스쿠터마다 패닝샷을 찍었다. 비에 젖은 도로를 달림에도 스쿠터는 원체 빨라서, 내 앞을 지나치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밤이라 어두웠고, 비가 많이 와 시야가 흐렸고, 스쿠터는 빨랐다. 나는 스쿠터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지 모른 채, 카메라만 보고 스쿠터 속도에 맞춰 몸을 좌우로 움직일 뿐이었다.


그러나, 스쿠터를 타고 있는 이들에게 나는 눈에 띄는 대상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비에 쫄딱 젖은 채, 지붕 밑에 가만히 쭈그리고 앉아,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빗속에서도 그 눈길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사진을 마주하니 한 아이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빗속에서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더라.

"저 아저씨 뭐하는 사람이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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