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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May 21. 2023

고여사의 일기

거짓말

   오랜만에 주일 오후의 느긋함이 찾아왔어요. 시집을 펼쳤다가 병원에서 온 전화를 받고 달려갔어요. 증세가 악화되었으니 다녀가라고...입원을 결정할 때 각오는 했지만 뭘 해야 할지 막막하네요. 


  숨을 몰아쉬는 엄마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머리를 쓰다듬으며 전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아니까 걱정 말고 편히 쉬시라고 했어요. 알고는 있지만 해결할 능력은 없는데 꼭 할 수 있는 것처럼. 알아들었는지 130을 넘게 치솟던 심박수가 100 정도로 떨어지데요. 거짓말을 했지만 잘 한 거겠지요?


  한 손에 잡히는 가느다란 팔목에 짙은 피멍이 들어있었어요. 링거 바늘 자국이요. 주사바늘이 엄마를 집어삼킬 것처럼 느껴졌어요. 달음박질 친 아이처럼 헐떡이는 호흡 안쪽으로 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진 입천장과 하얗게 마른 각질이 숨 쉴 때마다 팔랑거리는 혓바닥에서 죽은 고래를 보았어요. 그렇게 떠나실 건가 봐요.


  바다가 보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말없이 고개를 가로 젓던 엄마였지요. 왜 보고 싶지 않겠어요. 아니, 진저리가 쳐서 보기 싫었을까요? 엄마의 청춘이 바다에서 시작되어 바다에서 소멸된 것을. 삶의 터전이었던 바다를 그리워한다면 마지막을 바닷길로 잡으려했는데 아무래도 아버지 곁에 자리를 잡아야 할까봅니다. 저승에도 술이 있을까요? 술 드신 아버지와 싸우는 일은 더 없겠지요?


  시집을 다시 펴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아 덮었던 일기장을 열어 한 귀퉁이 여백에 끼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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