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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Jan 29. 2022

각자 다른 문화 존중해주기

미국 기숙사 룸메이트

내가 기숙사에서 살때, 나는 룸메 두명과 함께 한 방에서 살았었다. 한명은 일본인이었고 한명은 멕시칸이었다. 그들과 함께 난 좋은추억도 많이 쌓았었지만 동시에 나쁜 기억도 몇개 있다. 그들과 함께 살면서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정리해보자 한다.


일본인 룸메는 교환학생으로 우리 학교에 잠깐 온 친구였다. 그 친구는 미국에서 경험할 대학생활에 대해 엄청 들떠있었다. 일본, 태국 혼혈아로써 태국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태국에서 마쳤다. 고등학교 때부터 일본으로 건너가 대학교까지 일본에서 다니고 있었다. 그는 태국에서 국제학교를 다녔다고 했었다. 그 때문인지 영어를 문제 없이 잘 구사했었다. 내가 그를 왜 일본인 룸메라고 했냐면, 외모가 태국인 보다는 일본인에 훨씬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나와 그친구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같은 동아시아인이라서 그런지 서로의 문화를 잘 알고 있었고, 코드도 나름 잘 맞았던것 같다. 그와 나는 한살차이가 났었는데, 신기했던점은 그가 한국 노래에 대해 잘 알고있었다는 점이다.

“너는 왜 그렇게 한국노래에 대해 잘 알아?”

그랬더니 그는 자신이 태국에서 중학교를 다닐때 한국노래가 굉장히 유행했었다고 한다. 샤이니,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등등 웬만한 대표곡들은 다 알고있었다. 나는 k pop 한류가 태국까지 진작에 퍼져있는 줄은 몰랐다. 나는 갑자기 우리나라가 자랑스러웠다. 우리나라 문화의 파급력을 새삼 실감했다. 같이 기숙사에서 추억의 노래를 들으면서 춤도 췄다. 이렇게 우린 더 친해졌다.


어느날 나는 그에게 궁금한것이 있어 물어봤었다.

“너는 속으로 생각할때 무슨 언어로 생각해?”

그는 언어 습득력이 빠른편이었다. 나는 그에게 장난식으로 한국어를 가르쳤었는데, 언어 구사력이 좋은탓인지 많은 한국어를 금방 배웠었다. 그는 실제로도 3개의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했다. 그래서 과연 속으로 말할때 무슨 언어를 쓰는지 궁금했다.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나도 모르겠어”

“엥? 너가 모르면 누가알아”

나는 말했다.

그는 곰곰히 생각하더니, 섞어서 쓴다고 말했다. 그게 무슨뜻이냐고 자세히 물어보니까 일본인 친구들하고 대화하고 나면 일본인이 되어 일본어로 생각하고, 태국인 친구들과 놀고나면, 태국어로 생각한다고 했다. 굉장히 신박하고 신선한 대답이었다. 과연 그럴수도 있겠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와 나는 친하다 보니 티격태격 하는 일도 많았다. 특히 서로 나라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들이 많았다. 학식에 어떤 음식이 나오면 서로 자기네 나라 음식이라고 티격태격 했었다. 미역국, 불고기 등등을 자기 나라 음식이라고 우기면, 나도 똑같이 우겼다. 어느날은 주제가 피겨로 넘어간 적도 있었다. 그가 아사다 마오가 김연아보다 뛰어난 선수라고 하길레, 나는 절대 아니라고 팔짝 뛰었다. 그거 말고도, 한국 패션스타일이 더 좋다, 일본 여자가 더 이쁘다 등등 서로 티격태격 할 주제는 넘쳐났었다. 하지만 우리는 한번도 진지하게 싸운적은 없으며, 정치적인 문제로 넘어간적도 없었다. 정치적으로 넘어가면 결코 좋게 끝나지 않을 것을 서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티격태격 하면서도 사실은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있었기에 진지하게 싸운적이 없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멕시칸 룸메는 부모님이 멕시코 사람이지만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라온 친구이다. 즉 외모는 멕시코인이지만 속은 미국인과 다름없는 사람이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미국에서 자신과 같은 멕시칸들과 주로 놀았고 부모님에게도 멕시코 문화에 대해 노출이 많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를 반 멕시코, 반 미국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노래를 듣는것을 참 좋아했다. 노래 장르는 라틴음악이었다. 말만 라틴 음악이지 거의 멕시코 전통 노래같았다. 내가 본 그는 이어폰을 거의 쓰지 않았다. 항상 방에 블루투스 스피커를 두고 라틴음악을 틀었었다. 처음에는 그려러니 했지만, 점점 싫증이 났다. 최악은 항상 아침마다 자신의 피곤함을 없애려고 그 노래를 튼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흥이 나서 신났겠지만, 그 노래를 강제로 듣는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짜증이 났다. 몇번 주의를 준 끝에 결국 볼륨을 줄이는 것으로 매번 합의를 봤다. 라틴음악에 대해 반감정이 처음으로 생긴 순간이었다.


그에게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됐냐면 자신의 여자친구를 우리 방에 데리고 옴으로써 알았다. 그는 수시로 자신의 여친을 우리 방으로 데리고 왔었다. 남자들만 사는 방에 여자가 있는 것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어느날 갑자기 수업을 끝내고 오면 그녀가 2층 침대에 누워있었다. 뭔가 옷을 갈아입기도 그렇고 편하게 쉴수도 없었다. 나는 이것이 아메리칸의 오픈 마인드인가? 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의 여친이 우리 방에서 자고 간적도 꽤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자라와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나는 결국 그에게 여자친구가 오기전에 우리에게 미리 언지를 줘달라고 말했다. 그래야 내가 미리 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차마 여자친구를 우리 방으로 데려오지 말라고 말을 못했던 이유는, 그의 여자친구도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차도 없고, 과제로 바빴던 그는 여자친구를 자주 만날 시간이 없었다. 그의 사정을 들은 나는 결국 조금 양보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행동이 이해가 가는것은 아니었다. 그저 상대방의 문화를 존중하자는 마음에서 였다. 그가 그의 여친과 헤어지고 나서 이러한 행동은 그만 두었지만 한국인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중 하나였다.


외국인과 같이 산 경험이 있는 한국인들에게 듣기로는 이러한 일은 수시로 발생한다고 했다. 심지어 어떤 형은 룸메가 자신의 여친과 단둘이 있고싶다고 자신을 쫒아낸적도 있다고 했다. 아 생각해 보니 나도 쫒겨난적이 있었다. 난 나름 둘이 달콤한 시간을 보내라고 배려한거였는데 그렇게 하지 말걸 그랬다.


이런것들을 제외하고는 그도 나쁘지 않았다. 나름 같이 잘 논적도 많았고 그도 우리가 시험기간일때 배려해준적도 많았다. 그는 딱 같이 살면 피곤한데 밖에서 친구로써 만나면 좋은 그런 스타일이었다.


그가 BTS 팬이라는 것은 새삼 놀라웠다. 알고보니 그의 여자친구가 BTS팬이라서 그도 따라서 팬이 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그는 BTS 멤버 이름을 전부 외우고 있었다. 그 당시 BTS는 외국에서 그닥 인지도가 없을때였다. 몇몇 매니아층만 아는 정도? 혹은 슬슬 유명해지고 있는 그럴 때 였다. 그 때문인지 그는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나는 여기서 한국 문화의 파급력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한국 음악이 외국인들한테도 통한다니 신기했다. 우리는 같이 술마시면서 BTS 노래를 자주 따라 불렀다. 나로써는 정말 진귀한 경험이었다.


이렇게 외국인들과 같이 살면 서로의 다른 문화때문에 충돌이나 마찰이 있는 경우가 잦다. 그럴때는 최대한 서로의 문화를 존중해 주면서 타협점을 잘 찾아내야 한다. 나는 서로 몰랐던 문화를 이런식으로 배우게 되니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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