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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환수 Feb 07. 2018

타호 스키 여행

3박 4일 South Lake Tahoe 스키 여행

지난 연말연시에 아이들 방학 기간이자 스탠포드 셧다운 기간(게다가 식당도 하나도 열지 않는다) 동안 하필이면 코감기 목감기에 이은 몸살감기로 계속 몸져 누워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간단하게 당일치기로 두 군데 정도 가까운 데 간 것 빼면 그 황금같은 시기를 그냥 집에서 보내고 말았다.

그래서 앞으로는 연휴가 있으면 최대한 열심히 챙겨서 가족과 좋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첫 번째 맞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데이 연휴에는 타호 가족 스키 여행에 도전을 하기로 했다.

1. 알아보기


* 막내 정후 맡기기
* 가족들 스키 가르치기
* 스키장 선정
* 숙소
* 스키 장비
* 먹을 것

1.1. 막내 정후 맡기기
이제 막 돌이 되는 정후를 등산용 아기 배낭 같은 데 태워서 이걸 메고 스키를 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운힐 스키를 타는데 아이를 썰매에 태워 끌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아이를 맡길 방법이 필요했다. (나중에 크로스 컨트리 스키도 한 번 해 보고 싶은데, 그 때는 썰매에 태워서 끌고 다녀보고 싶다.) 한국이었다면 부모님께 부탁이라도 드릴 텐데 그럴 수도 없고. 대충 찾아보니 타호 근방의 스키장에서 제대로 탁아소를 운영하는 곳은 헤븐리 리조트 뿐이었다. 리노 같은 데 묵으면서 일일 단위로 애를 봐 주는 탁아소에 아이를 맡기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일단 초기 등록비가 50-75불 정도 있고, 리노에서 타호 근방의 스키장까지 오고 가는 일도 정말 피곤해 보였고, 애 맡기고 한참 운전해서 스키 타고 또 한참 운전해서 돌아와서 애 데려오면 실제 애 맡기는 시간도 길어져서 애도 힘들고 비용도 만만치 않아진다. 결국 이 이유 때문에라도 헤븐리에 갈 수 밖에 없긴 했다. 헤븐리 탁아소에서는 생후 6주된 아기부터 봐 준다. 사전 예약을 하면 하루(8:30-16:00)에 145불, 그냥 맡기면 하루에 170불이다. 비싸지만, 리노 같은 데서 일일 탁아소 맡겨도 별로 싸지지 않고, 학태형의 경험으로도 잘 봐줬다고 하고 옐프 같은 데 올라와 있는 평도 좋아서 눈 꾹 감고 선택했다. 

1.2. 가족들 스키 가르치기
어차피 스키를 하루만에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강사처럼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내는 초등학교 때 걸스카웃 스키 캠프에서 건성으로 배운 이후로 대학교 때 엠비씨 스키 캠프를 한 번 가긴 했는데, 스키를 특별히 배우거나 탄 기억이 없다고 한다. 애들은 스키를 신어본 적도 없다. 처음에는 첫날(토) 내가 정후를 보고 애들하고 아내는 스키를 배우게 한 다음 둘째날(일)과 셋째날(월) 정후 맡기고 넷이 스키를 탈까 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 셋을 데리고 어설픈 초중급인 내가 잘 가르칠 수 없는 노릇이니, 재밌게 배울 수 있는 스키 학교에 보내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근데 알고 보니 애들은 종일 수업이니 상관 없는데 아내는 오전 수업이라서 오후에 혼자 타야 하는 상황. 첫날부터 정후를 맡기고, 첫날은 아내랑 스키를 둘이 타면서 가르쳐주기로 했다. 근데 결과적으로는 첫날 탁아소 예약이 안 돼서 첫날은 스키 안 타고 정언 정인이만 스키학교에 맡겨놓고 아내랑 정후랑 셋이 좀 쉬면서 놀았다.

1.3. 스키장 선정
타호 주변에는 정말 좋은 스키장이 많다. 대형 스키 리조트인 Heavenly, Kirkwood, Northstar를 비롯하여, 한국 스키장 규모 수준인 중소형 스키 리조트에 이르기까지 그 규모나 종류가 아주 다양했다. 가격도 다양한데 헤븐리는 그 중 가장 비싸다.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아주 싸게 사도 100불은 넘는 듯. 싸게 구할 수 있는 방법도 거의 없어서 그냥 홈페이지에서 사는 게 제일 낫다. (중소형 리조트는 Sports Basement 같은 데서 리프트권 할인표를 팔기도 한다.)
특별히 탁아가 필요하지 않다면 가깝고 규모도 작고 초보자 코스가 다양한 곳에서 타도 충분히 재밌었을 것 같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븐리가 워낙 스키장이 좋다고 하니 경험삼아라도 한 번 가 볼 만한 것 같긴 하다. 특히 경치는 어마어마하다. 날씨 좋으면 그냥 리프트 타고 올라가면서 타호 호수를 보기만 해도 비싼 리프트 값이 다 용서가 된다.

1.4. 숙소
헤븐리 홈페이지에서 근처 숙소는 대충 검색이 된다. 카슨 시티나 리노에 있는 숙소까지 뜨는데, 홈페이지에서 검색하고, 그 숙소에 대한 정보를 구글, 옐프 등에서 확인해 보고 또 호텔스닷컴 같은 데서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고 South Lake Tahoe나 Heavenly mountain resort 근처 호텔로 또 검색해 보고 해서 골랐다. 연말 초성수기때보다는 가격이 내려서 괜찮은 데를 잡을 수 있었다. (그래도 연휴다 보니 막 100불 밑으로 내려가고 그 정도는 아님) 민성이 아내분께서 추천해 주신 곳도 좋아 보였는데 남는 방이 없었고, 학태형이 추천해 준 곳이 방이 있어서 묵었다. 정후만 아니었다면 그냥 스키 들고 걸어가서 곤돌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었고, 부엌도 쓸만했고 침실 침대도 컸고, 거실에 소파베드가 있어서 다섯 식구가 그럭저럭 낑겨 잘 수 있었기 때문에 매우 만족스러웠다.

1.5. 스키 장비
우리 가족 모두 스키 장비가 없어서 빌려야 했는데, 리조트에서 빌리는 건 좀 비쌌다. 차가 미니밴이라 캐리어 같은 걸 안 달아도 식구들 스키를 다 싣고 갈 수 있어서 저렴하게 집 근처에서 빌리기로 했다. 처음에는 동네에 있는 스키 대여소를 눈여겨 봤는데, 학태형하고 통화를 해 보니 Sports Basement에서 빌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셔서 거기로 결정. 스키도 많고 가격도 싸다. 어른 기본 패키지는 5일까지 50불. 애들은 35불. 저렴하고 장비 상태도 좋다.
애들 스키복은 살까 하다가 어차피 빨리 커서 금방 못 쓰게 될 것 같아서 대여했다. 장갑하고 선글래스는 있어서 상의와 하의, 헬멧을 빌렸는데, 5일에 상의 15불, 하의 10불, 헬멧 15불이었다. 저렴한 편이긴 한데, 네 식구가 되니까 스키랑 의류 빌리는 데만 300불 가까이 들었다. 그래도 상태도 좋고, 1인당 가격 생각해 보면 비싼 건 아니라 만족스러웠다.

1.6. 먹을 것
학태형한테서 헤븐리 리조트 음식이 다 비싸서 (조각 피자가 15불, 생수 한 병이 5.25불) 도시락 싸는 것도 생각해 볼만 하다는 얘기를 들었고, 아침 저녁도 호텔에서 대충 해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전날 코스코에서 장을 좀 봤다. 근데 사실 이럴 필요까지는 없었던 게, 그 근처에 세이프웨이가 두 개나 있다. (하나는 캘리포니아주에, 다른 하나는 네바다 주에 있는데, 각각 6분, 8분 거리니 그냥 차 몰고 가서 장 봐 오면 된다.) 다음부터는 목적지 근처에 적당히 큰 수퍼 있으면 괜히 힘들게 미리 준비하지 않기로 했다.

2. 실행
호텔은 8일 전에 호텔스닷컴으로 예약했다. 3 peaks resort & beach club이라는 곳으로, 앞에도 썼지만 학태형이 괜찮았다고 하셔서 봤는데, 가격도 좋았고, 위치도 좋았고, 다섯 식구 그럭저럭 잘만했고, 취사하기도 좋았다.
스키는 집 근처에서 빌려갈 거라서 헤븐리 홈페이지에서 정언, 정인이를 위해 스키 강습+리프트 패키지를 예약했다. (1인당 1일에 195불) 사실 완전 초보자 스키 학교에서 첫날에는 리프트를 타지 않는데도 스키학교 정책상 리프트권이나 시즌 패스가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리프트는 안 타지만 애들 왕창 싣고 다니는 썰매 같은 걸 몇 번 탔다고 하니 용서해 주기로...
1월 10일에는 Sports basement에 가서 빌릴 물품 사이즈를 쟀다. 대여하는 곳에 가면 직원이 친절하게 신체 사이즈를 재 주고, 맞는 부츠, 스키, 폴 사이즈를 적어준다. 매장에서 필요한 정보를 주면 인터넷에서 예약하고 결제한 다음 대여 시작일에 빌리면 된다. 반납은 대여 기간 마지막 날 다음날까지 할 수 있다. 원래는 여행 출발일 전날인 14일에 빌리려고 했는데, 14일에 실험하다가 집에 늦게 가는 바람에 전화로 하루 늦게 찾으러 가도 되는지 물어보니 흔쾌히 괜찮다고 하더라.
사실 미국에 와서 스키장 갈 생각을 못 했기 때문에 스키복 등은 한국에 두고 왔는데, 프리미엄 아웃렛에 갔더니 스키복으로 입을 만한 옷을 아주 싸게 살 수 있었다. 프리미엄 아웃렛에 있는 콜럼비아 매장에서 내 스키복 상의, 아내 스키복 상하의를 일반매장 스키복 상의 한 벌 값에 샀다. 내 스키복 바지는 아웃렛에 맞는 사이즈가 없어서 일반 매장에서 샀는데, 스포츠 베이스먼트에서 노스페이스 20% 할인을 해서 아주 비싸게 산 건 아니었다.
타호에 가려면 체인이 필요한데, 성훈이가 체인을 빌려주기로 해서 출발 이틀 전에 빌려두었다. 체인 채워주는 사람 있으면 그냥 돈 주고 시키라는 의견도 많고, 직접 채울만하다는 의견도 많았는데, 일단은 그냥 내가 채워보기로 하고 성훈이가 알려준 동영상을 열심히 봤다.
가장 곤란했던 부분은 정후 탁아소 예약. 11일 전까지만 해도 예약이 가능했는데, 막상 10일 전인 1월 6일 밤에 16-18일 예약을 하려고 하니 16-17일은 예약이 다 찼고 18일만 예약할 수 있었다. 패닉에 빠져서 어쩌나 하다가 일단은 자리가 있는 18일이라도 예약을 했다. 그리고는 다음 날 아침에 “우리 가족 최초로 하는 스키 여행인데, 막내를 16-17일이 꽉 차서 곤란한 처지에 빠졌다. 혹시 대기자 명단 같은 데라도 올려놓고 자리가 생기면 넣어줄 수 없을까?” 하는 내용의 메일을 최대한 불쌍하게 썼다. 그랬더니 17일은 마침 자리가 나서 예약자 명단에 포함시켰고, 16일은 자리가 없지만 자리가 나면 바로 전화 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어찌나 안심이 되던지...
리프트 표는 정후 16일 탁아 가능 여부가 결정이 안 돼서 출발 이틀 전에야 샀다. 72시간 전에 리프트 표를 사면 할인이 꽤 되기 때문에 14일 밤에 부랴부랴 17-18 이틀 동안 어른 둘, 아이 둘 표를 샀다. 미리 온라인으로 사면 싸기도 하고, 리프트 RFID 카드를 받을 때도 예약자 전용 줄에 서서 빨리 받을 수 있어서 좋다. 그래도 비싸긴 비싸서 1일당 어른은 111불, 어린이는 61불씩이었다.

* 1월 15일
출발 당일에는 애들 학교 수업이 끝난 후에 출발을 해야 했기 때문에 아침에 스포츠 베이스먼트 가서 예약한 스키를 찾고 (예약 안 하면 정말 오래 기다려야 한다. 1-2시간은 족히 걸릴 듯) 코스코 가서 먹을 것 좀 사왔다.
애들 데리고 출발할려고 하는데 전화가 왔다. 헤븐리 탁아소에서 16일에 예약을 취소한 사람이 생겨서 정후를 맡길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정말 기쁜 소식이긴 했으나 이미 리프트 표도 사 놓았고 (16일 혜선이랑 나랑 탈 리프트권을 새로 사면 1인당 150불 가까이 하는 1일권을 추가로 사야 했던 것 같다.) 갑자기 계획 바꾸기도 부담스러워서 “이미 리프트권 예약을 다 끝내서 16일에는 맡기지 않는 게 나을 것 같다. 연락해 줘서 고맙다. 17일에 보자.”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드디어 애들을 데리고 출발하려는데, 스키 부츠가 이상하다. 아침에 내 스키 부츠를 짝짝이로 준 거다. 결국 스포츠 베이스먼트에 다시 가서 부츠 바꾸고, 원래는 REI에서 사려고 했던 애들 장갑하고 스키양말도 그냥 거기서 샀다. 스포츠 베이스먼트 서니베일 지점에서 거의 4시 반이 다 되어서야 타호로 출발할 수 있었다.
가는 길은 고속도로에 차가 많아서 거의 7시간이 걸렸다. 산에서 체인을 걸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도 가는 길에는 제설도 잘 돼 있고 해서 체인은 쓰지 않았다. 
호텔에 11시 넘어 늦게 도착했더니 프론트가 잠겨 있다. 잠시 당황했다가 앞에 설명이 되어 있는대로 전화를 걸었더니 그 옆에 있는 아이 주먹만한 상자 번호와 비밀번호를 알려준다. 그 상자를 여니 임시 카드키와 설명서 같은 게 있어서 방으로 들어가서 짐을 풀고 잤다. 

* 1월 16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밥 먹고 정언 정인을 챙겨서 스키학교에 보냈다. 3층에 있는 스키학교 등록장소까지 스키 들고 올라가니 애들은 이미 지쳐 있었다. 두꺼운 스키복을 입고 불편한 스키 부츠 신고 헬멧 쓰고 스키 들고 실내에서 계단을 한참 올라가니 지칠만도 했다. 덥다고, 힘들다고 잔뜩 뿔이 난 아이들을 겨우 맡겨 놓고 나왔다.
정후랑 셋이서 뭘 할까 하다가 타호 근처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타호 순환 드라이빙 코스를 찾아보고는 그대로 움직였는데, 눈 덮인 산길, 호수에 걸친 무지개 등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 계속됐다. 근데 문제는 타호 일주 도로 중 일부 구간에 제설이 안 돼 있다는 것. 그래서 전체 도로의 1/5도 못 돌고 그냥 돌아왔다. 길이 닫혀 있다는 표지판이 있었지만 그래도 가는 데까지 가 보자 하고 가 보니 어느 순간 길이 막혀 있고 사람들이 거기서 눈썰매를 타고 있었다. 헤븐리 마을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느긋하게 점심도 먹고 쉬면서 하루를 보냈다. 별로 하는 일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 같아 좀 아쉽기도 했으나, 한국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눈 덮인 평원이나 눈 덮인 침엽수들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3시 45분 쯤에 스키학교에 애들을 데리러 갔다. 아침에 스키학교 등록할 때 애들이 덥고 힘들다고 짜증을 냈던 터라 혹시 스키 싫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이 산더미 같았는데 다행히도 애들은 신나 있었고 스키가 재미있다고 한참 들떠 있었다. 애들 데리고 세이프웨이 잠시 들러서 주유도 하고 케익도 사 와서 저녁 먹고 케익도 먹었다. (실은 정후 생일이었다. 첫 돌이긴 한데, 실제 돌잔치 비슷한 건 2월, 원래 출생 예정일이었던 날 즈음에 부모님 오시면 같이 할 예정이다. 정후야 미안해!!!)


* 1월 17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밥 먹고 도시락 싸고 짐 챙겨서 탁아소에 갔다. 정후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탁아소에 간 건데, 상황 파악이 안 되는지 맡기고 나오는데도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아이 맡기고 나와서 리프트 표를 받는 데도 시간이 적지 않게 걸렸다. 미리 예약한 사람들만 서는 줄에 서 있었는데도 거의 20-30분은 걸린 것 같다.
슬로프에 처음 올라가서는 아이들과 아내의 수준(?)을 점검했다. 아이들은… 흠…. 전날은 스키 쉽다고 막 그러더니 그냥 초보자용 슬로프에 놓으니 어렵다고 난리다. 몇 번 걸어서 올라갔다 스키 타고 내려오는 걸 시켜보는데 힘들고 어렵고 다리 아프다고 난리. 아내도 많이 연습해야 되는 상태였다. 몇 번을 거의 평지에서 연습을 시켜보고는 그 중 제일 잘 하는 둘째를 데리고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 봤다. 처음 내려오면서 몇 번 넘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체중 대비 다리힘이 좋기도 하고 유연성도 좋아 그런지 제법 수월하게 탄다. 아내랑 첫째는 몇 번 더 걸어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해 봤는데, 나중에는 준비가 다 안 된 것 같긴 했지만 한 번만 더 걸어서 올라갔다가 내려왔다가는 체력이 고갈될 것 같아서 그냥 리프트를 태워 올라가 봤다. 여러 번 넘어지고 힘겹게 일어서는 걸 반복하면서 생각보다는 빨리 감을 잡았다. 나중에는 모두들 신나게 바람을 가르며 탔다. 

캘리포니아 랏지에 있는 것 중 First Ride라는 초보자용 리프트만 탔는데, 여기는 워낙 나즈막한 곳인데도 호수가 꽤 아름답게 보였다.
아이들이랑 아내보고 타라고 하고 나는 위쪽으로 올라가 봤다. Gunbarrel express라는 리프트를 타고 올라갔는데, 이걸 타고 올라가면서 뒤돌아보면 정말 숨막히게 아름답다는 게 무슨 말인지 실감할 것 같은 아름다운 전경이 펼쳐진다. 위로 올라가서 그 쪽에서 탈 수 있는 초보자용 슬로프 상태를 확인해 보고 괜찮으면 식구들 데리고 올라가려고 했는데, 눈도 오고 바람도 심하게 많이 불고 날씨도 추워서 그냥 내려와서 밑에서만 놀면서 하루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정후를 찾으러 갔더니 선생님 품에 안겨서는 얼굴 한 가득 환하게 웃는다. 탁아소에서 꽤나 즐거운 하루를 보냈었나보다. 탁아소에서는 아이가 뭘 먹고 무슨 놀이를 했는지, 어떤 친구랑 잘 놀았는지 등등을 아주 자세하게 기록한 보고서 같은 것도 함께 준다. 비싸긴 하지만 그만큼 잘 봐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호텔로 돌아와서는 애들 씻기고 저녁 먹고 정리 좀 하고 잤다. 다음날이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해서 이것저것 정리를 하다 보니 시간이 너무 늦어져서 새벽 한 시가 넘어서야 잠든 것 같다.

* 1월 18일
여행 마지막 날. 8시가 넘어서야 잠에서 깼다. 일어나 보니 눈이 제법 많이 왔고, 여전히 꽤 오고 있었다. 아침 먹고 이것저것 준비해서 나가니 9시 반이 넘었다. 어떤 아저씨가 오더니 지금 체인 안 끼면 못 올라간다고 하면서 껴줄까 묻는다. 얼마냐고 하니 저 앞에 주유소 가면 45불인데 그냥 30불만 달란다. 그냥 내가 끼우겠다고 하니 20불까지 깎아준다고 했으나 그냥 그래도 내가 하기로 했다. 성훈이가 알려준 동영상에 나온 대로 했더니 그래도 금방 끼웠다. 체인도 가뿐하게 끼우고, 기쁜 마음으로 출발해서 가고 있는데, 스키장 가까이 가니 눈길/얼음길이라기보다는 슬러시+물에 가까운 길이 되어 있었다. 조금 가파른 언덕에서 우리 차는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차를 돌려 내려와서 적당한 곳에 주차를 하고는 거기서부터 걸어갈까 어쩔까 고민을 했다. 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분명 2륜구동 차 같은데 그냥 멀쩡히 올라가는 차들이 보였다. 체인을 끼우면 얼음이나 눈이 없는 곳에서는 더 잘 미끄러진다는 걸 몰랐던 거다.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일단 체인을 푼 다음 다시 도전. 부들부들 떨면서 스키장에 무사히 도착했다. 차 두고 걸어갔으면 스키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탈진할 뻔했다. 그리고 아까 돈 주고 체인 채웠으면 진짜 아까웠을 뻔했다.
스키장 가서 막내 맡기고 슬로프 올라가니 11시가 다 됐다. ㅠㅠ 아내와 큰 애는 그새 감을 잃어서 좀 고전했지만 다시 상태가 괜찮아져서 높은 데로 올라갔다. 날씨가 맑아져서 높은 데서 멋진 경치도 구경하고 사진도 찍었다.

초급자용 중에 긴 슬로프를 두어 번 타고 2시 반이 다 돼서야 늦게 점심을 먹으려는데 정인이가 갑자기 토하고 어지럽다고 했다. 아침 먹은 게 체한 건가 했는데, 상태가 금방 좋아지진 않아서 나랑 정언이만 좀 더 타고 일찍 내려가기로 했다. 정언이는 한참을 헤매긴 했으나, 스키 앞쪽 끝을 30 cm 이상 벌리지 않고 타는 걸 계속 시켰더니 놀랄 정도로 많이 나아졌다.
쿠퍼티노로 돌아가는 길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서 부랴부랴 내려왔다. 내려올 때는 Gunbarrel Express 리프트를 타고 내려오거나 그 옆에 있는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올 수 있는데, 리프트는 타고 내려가는 것도 좀 무서워할 것 같아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다. 내려와서 바로 차에 가서 스키 정리하고 탁아소 가서 정후를 데리고 왔다. 4시 넘어가면 1분에 1불씩 시간 초과 요금을 받을 수도 있다고 했는데, 딱 3시 55분 쯤에 도착했다.
정후를 데리고 출발하려고 하면서 구글 지도를 보니 4시간 30분 쯤 걸린단다. 알려주는 길이 좀 특이했는데, 다른 길은 많이 막히는데 구글 지도에서 알려주는 길은 별로 잘 안 막혔다. 한참을 아주 신나게 한가한 길을 갔다. 88번 도로를 타고 40마일이 넘게 가야 하는데 중간에 눈발이 날리는 것 같더니 사람들이 길가에 차를 세우고 체인을 채우는 게 보였다. 우리도 잽싸게 차를 옆에 대고는 체인을 채웠다. 아침에 호텔 주차장에서는 정말 쉽게 채워서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두 번째 할 때는 좀 만만치 않았다. 반대편에서 오는 차들이 체인 없어도 된다고 하고 지나가는데, 사륜구동 차가 하는 얘기라 귀기울여 듣지 않았다.
체인을 채우고 가는데, 진짜 체인이 필요해 보이는 구간은 10%도 되지 않아 보였다. 어떤 곳은 아침에 스키장 갈 때 헤맨 것처럼 슬러시만 있어서 체인 때문에 오히려 더 미끄러지기도 했고. 정말 사륜구동 차들이 부러웠다. F-150이나 RAM 같은 차들은 날아다녔다. 눈길 운전을 정말 잘 하는지 오디세이 중에도 좀 날아다니는 차들이 있었다. 난 그냥 무서워서 조금만 미끄러우면 시속 10-20 마일로 천천히 갔다. 중간에 한 번씩 옆에 차 댈 데 생기면 차 대고 뒷차들 앞으로 보내고.
거의 2시간 가까이 눈길을 기어가다시피 가다 보니 따뜻한 지역으로 넘어와서 더 이상 체인이 필요하지 않았다. 힘들게 차를 옆으로 빼고는 체인을 빼고 다시 달리니 그제야 좀 살 것 같았다.
집에는 거의 10시 반 쯤에야 도착. 여섯 시간 걸려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갈 때보다는 빨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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