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지 않게 왔다가 아무렇지 않게 가는 것을
지나온 사진을 들여다본다. 젖은 물속에 사르르 퍼지는 시간을 조용히 가득 삼키는 듯하다. 꽃꽂이용 스펀지인 초록색 오아시스처럼.
손끝을 밀어 넣어 아주 조그마한 초록색 웅덩이를 여러 개 만든다. 깊숙이 그 자취에 스며든다. 부드럽게 안겨온다. 손을 떼면 아무 일도 없던 듯이 나는 그대로 돌려보낸다.
며칠 전 주방에서 서랍을 정리하다 아빠 사진을 발견했다. 산악회에서 등산을 갔었나 보다. 아마도 정상까지 갔다가 내려와 나무 아래 평평한 곳에 그늘막을 치고 친구들과 도시락과 막걸리를 먹었을 거다. 아빠 뒤로 빨간 그늘막이 보인다. 땀에 젖은 흰 수건을 목에 두르고 사람 좋은 넓적한 미소로 사진을 가득 채운다.
아빠의 굵고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지난번 친정에 들렀을 때 엄마가 그랬었다. “너희 아빠 목소리가 좋아서 노래 대회에서 상도 받아오고 그랬잖아.” 매번 아빠에 대해선 악평만 하던 엄마가 웬일로 칭찬을 했다.
내가 나온 사진을 먼저 찾을 줄 알았지만 어쩌다 보니 아빠 사진이 생각났다. 한 번씩 아이들에게 “엄마도 어렸을 때가 있었어.”라고 말하면 피식 웃으며 “이상해, 엄마는 지금 모습이 좋아.”라고 말한다. 돌아보면 새로울 때가 많다. 하지만 금세 그 시간에 어떻게 지냈는지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다시 그 세계로 잠시 이끌려 가는 기분이 든다.
하얀 커버에 알록달록한 꽃들의 자수가 나 있는 소파에 앉아 있다. 귀를 살짝 덮은 커트 머리에 앞머리가 가지런하지만, 옆머리가 살짝 삐죽 나왔다. 앞니를 부끄러운 듯 살짝 드러내며 고개를 돌리며 웃는다. 빨간 바지와 진하지만 밝은 갈색과 검은색 체크 셔츠를 줄곧 입는 아이였다.
그 위로 두툼한 털이 달린 분홍 조끼를 입고 하얀 양말을 신고 있다. 발은 아직 소파 아래로 닿지 않아 다리가 붕 떠 있다. 6살 정도로 되어 보이는 이 소녀의 바람은 뭐였을까.
‘엄마, 아빠, 언니들과 언제나 끝까지 행복하게 잘 살고 싶은 생각 아니었을까?’ 사진의 화질은 눈이 부시게 쨍하다.
빨간 바지 때문이었는지, 가지런한 까만 바가지 머리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죽기 전에 삶을 돌아보는 여행을 하게 되지 않을까?
죽기 전의 음식이 나를 인생을 돌아보고 후련히 떠날 수 있는, 새로운 삶으로 떠나는 것으로. 소망한다.
‘내가 죽기 전에 먹고 싶은 음식은 누구와 먹는 음식인가에 따라 달라질까? 죽기 전에도 그 고민을 하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죽을 만큼 힘든 적이 있었을까?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를 순간은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잠시 오래된 일기장을 뒤지듯 먼지가 가득 뿌옇게 피어오르는 어딘가에 있을 케케묵은 이야기를 찾아와야 할 것처럼 마음이 분주하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욕심내고 싶었던 일 그리고 살고 싶었던 일들에 대해 떠올린다면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나를 이기는 듯하다.
만약에 죽는다면 스팅의 잉글리시 맨 인 뉴욕 Sting, Englishman In New York을 듣고 싶다. 그 노래는 내가 한국에 있을 때도, 타국에 있을 때에도 지구에 내려와 있는 나에게 힘을 주는 음악이었다. 거리에서 손뼉을 치고 첼로, 바이올린, 드럼 악기들이 연주되고 스팅이 하얀 셔츠를 입고 스탠드 마이크 앞에서 부르는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누가 뭐라든 항상 자신을 잃지 마세요. Be yourself no matter what they say'라고 잉글리시 맨 뉴욕 가사를 들으면 누가 뭐라고 해도 난 나로 살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경쾌한 리듬 속에 드러나는 쓸쓸하고 자유롭지만 외롭고 그리운 마음이 들지만 나답게 살아가고 싶다. 죽기 전에 먹을 음식을 이 노래라고 표현한다면 같이 글 적는 작가님들에게 혼이 날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목으로 넘어갈까? 죽기 전에 난 안전한 곳에 있을까?' 시간과 장소가 준비된다면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자동차 경적, 사람들의 다양한 감정이 끊임없이 오가는 광장, 야외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싶다. 그곳에 스팅의 잉글리시 맨 인 뉴욕을 누군가 불러준다면 정말 더 행복할지 모르겠다.
나무 보드에 적혀있는 오늘의 메뉴를 고른다.
먼저 아페리티프 Apéritif, 식전주를 마신다. 서버는 마담인 나에게 시음을 맡긴다. 노르망디 과수원에서 수확한 사과로 제조된 밝은 노란색 시드르를. 입을 살짝 벌려 눈에 띄지 않게 혀끝으로만 살짝 맛을 본 뒤 미소가 지어지면 상큼하지만 묵직한 목 넘김을 조금씩 느낀다.
다음으로 엉뜨헤 Entrée 전채요리 에그 미모사를 먹으며 입맛을 돋군다. 쁠라인 메인 요리가 나오면 설레는 마음으로 쁘아송 생선요리를 제대로 먹는다. 그다음 Fromage 치즈는 셰프가 목장에서 엄선해 가지고 온 샤블리, 쉐브르, 콩테를 먹는다. Dessert 후식으로는 파블로바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마지막은 카페 대신에 차를 마시고, 소화를 돕기 위해 먹는 디네스티프 digestif, 식후주 꼬냑은 어떻게 할까. 그건 이탈리아의 리몬첼로 Limoncello를 마시고 싶다. 아주 차가운 상태로 입안을 개운하게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내가 만약 죽을 수도 있다면 말이다. 언젠가 죽을 수 있겠지만 죽기 전에 먹고 싶은 음식은 여행 중에 먹는 음식이다. 무엇을 먹어도 감사하지 않을까?
리몬첼로를 한 번에 마시고.
거리에 흩어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누군가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에 잠시 멈춰 온기를 남기고 갈 수 있으면 좋겠다. 미세한 작은 균열이 삶의 또 다른 영향을 끼칠 수도 있지만 아무렇지 않게 왔다가 아무렇지 않게 가는 것을 지금은 그렇게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