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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T] 혼밥 해방일지

월요일 낮의 해방은 사랑에도 숨 쉴 공간이 필요한 것을 증명한다

by 료료

아무도 묻지 않을 때

주말은 사랑하는 가족과 보내는 소중한 시간이다. 서로 다른 언어로 감정을 표현한다. 친구의 무심한 한마디에 속상한 아이. 기말고사와 수행평가의 압박 속에 쉬는 순간에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아이. 자꾸 쌓여가는 업무에 지친 남편의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그들을 위해 즐거운 주말을 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다가올 때가 있다.


각자 다른 이야기를 떠올리지만 모두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식사를 준비한다.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지 매일 고민한다.


“엄마 음식이 최고야!” “오늘은 뭐 먹어?” “이건 별론데.” “난 이거 싫은데.” 어떤 날에는 뿌듯함, 어떤 날에는 허무함. 하지만 함께할 수 있는 시간에 감사함을 느끼려 꾸준히 노력하려 했다.


진심으로 그들을 다독여주고, 응원해 주고 싶지만 가끔은 그 감정을 받아내기 버거울 때가 있다. 결혼한 지 18년이 되었다. 매일 끼니를 챙기고, 그들과 맞춰 살아가는 나 자신을 바라볼 때가 있다.


꽉 채워진 필기 노트에서 내가 적힌 부분만 지워져 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아무도 내 감정을 묻지 않는다’라고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무도 묻지 않을 때 (캔바)

해방의 월요일

월요일 아침이 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다. 전날 밤 작두콩 차를 가득 끓여놓은 주전자를 유리 포트에 다시 붓는 일이다. 온수를 섞어 한 잔씩 준비한다. 학교에 가져갈 보온병에도 작두콩 차의 온도를 맞춘다.


‘너무 뜨겁지 않을까, 너무 차갑지 않을까.’ 걱정하며 긴 티스푼으로 물을 살짝 뜨고는 손가락에 떨어뜨려 본다. 맞는 온도를 찾고는 만족하며 각자의 보온병에 물을 붓는다.


휴대전화로 날씨가 어떤지, 바람이 많이 부는지, 날은 흐린 지_ 기상예보를 보면서도 고민한다. 아이들은 분주하게 학교 갈 준비를 한다. 나는 확인 대답을 듣기 위해 아이들에게 쉬지 않고 말을 건다.


물, 휴대전화는 챙겼는지 말이다. 교실에 에어컨이 세게 틀어지면 춥지는 않은지 계속 묻고 당부한다. 나가기 전에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가서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이야기한다. 차를 항상 조심하고, 공기가 좋지 않으면 마스크도 챙겨가라고 이야기한다.


끊임없는 나의 애절한 당부에 애들은 그만하라며 이제 들어가라고 한다. 옆집 오빠가 나오기 전에 말이다.


남편에게는 오늘도 일이 많겠지만 힘내라며 너무 오래 앉아 있지 말고,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일어나서 10분씩이라도 꼭 휴식을 취하라고 한다.


모두에게 이별이 아쉬워 “잘 다녀와”만 열 번 이상 말한다.


그리고..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와 동시에 표정이 순식간에 뒤바뀌며 만세를 외친다.(가끔 사이코패스 인물을 상상하기도 한다)


캔바로 활짝:)


고요함이 가득 찬 공기에 월요일의 해방을 선포한다.



혼밥의 특권

혼자 먹는 밥은 평화롭다.

누구의 취향도 고려하지 않는다.

월요일은 해방의 날이다.

혼자 먹는 밥은 오롯이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누군가를 위해 결정하지 않는다. 홀가분한 마음이 나를 회복시킨다. 버거운 마음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날. 다시 나를 되찾는다.


배가 고파온다. 여유 있게 천천히 냉장고를 열어 재료를 살핀다. 달걀 두 알과 양배추를 꺼낸다. 며칠 전 둘째 아이와 채소 가게를 들렀는데 알이 꽉 찬 큰 양배추가 5천 원이라고 했다. 너무 커서 사기 전에 잠시 고민했다.


양배추 요리를 모두 잘 먹으니까..하며 양배추를 장바구니 카트에 실었다.


며칠 후, 남편이 양배추를 (또) 사 왔다. 잠깐 놀랬지만 침착하게 냉장고를 열어주며, 큰 양배추의 어엿한 자태를 보여주었다.


“집에 이만큼 큰 양배추가 있지만 괜찮아. 정말 고마워요.”

2주 동안 집을 비우고, 출장을 떠나는 남편이 남은 우리가 걱정되었던 것 같았다. 늦은 시간 퇴근을 하고, 마트에 들러 이것저것 장을 보고 온 것이었다. 정말 고마웠지만 고마웠다. 더 이상 말할 수가 없다.


캔바로 양배추 사건

‘미안해, 남편아. 나의 진심은 진심이야.’

“엄마, 양배추 그만 먹고 싶어.”


그렇다. 아이들은 똑같은 메뉴가 두 끼 연속으로 나오면 머뭇거리며 식탁에 앉는다. 며칠 연속으로 먹은 양배추 요리에 아이들은 질렸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 뒤로 양배추를 냉장고에 며칠 방치했더니 변색이 되어 자리 잡고 있었다. 전체가 갈색이 된 것은 아니었다. 부분적으로 변색하였기 때문에 괜찮은 부분을 도려내어 채 썰었다.


프라이팬에 썰어 놓은 양배추를 뿌리고, 올리브 오일을 두른 다음 소금도 솔솔 뿌린다. 양배추가 내가 좋아하는 정도로 익었을 때, 달걀을 넣는다. 아이들과 양배추 볶음을 먹으면 아이들이 원하는 익힘의 정도가 있기 때문에 취향의 식감은 어려워진다. (남편은 내가 먹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지만, 아이들이 일용할 음식을 잘 먹이는 일도 내 마음의 큰 숙제인 것 같다)


혼밥의 익힘은 다르다. 혼밥의 영광이라 할 수 있다.

‘혼밥의 특권이자 기쁨 아니겠는가!’ 지글지글 볶이는 소리는 가끔 요리를 즐기게 해주는 중요한 ASMR이다.


영광을 누리며 밥솥에 남은 밥을 다 긁어 떠내면 밥솥에 있는 밥을 모두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의 저녁에는 새 밥을 다시 지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밥을 넣고, 약 불로 낮춘다.


또 다른 메뉴, 김치 비빔국수를 위해 김치를 꺼낸다. 김치를 다지는 것은 꽤 번거로운 일이지만 서슴없이 도마와 칼을 흥얼거리며 꺼낸다.(적은 글을 읽어보니 무섭다:) 누군가 재촉을 하거나 정해진 시간도 없다. 오늘은 다르다. 번거로움도 오늘은 괜찮다.


김치 비빔국수는 시어머니가 알려주신 비법이다. 다진 김치에 참기름을 듬뿍, 설탕과 깨소금도 듬뿍. 고소한 맛과 달콤함이 더해진다. 깜빡한 것이 있다. 동시에 소면을 삶고 있어야 했는데 아쉽다. 서두르고 싶은 마음에 제일 센 불로 높였다. 소면을 끓이는 물은 인덕션 위로 솟아난다.


캔바로(피식)


어떤 날은 끓는 물이 넘치지 않기 위해 인덕션을 유심히 보는 날도 있다. 하지만 왠지 더 피로해졌다. 다음부터는 ‘적당히 넘치면 그냥 닦지. 뭐’ 하는 마음을 먹었다.


끓인 소면을 차가운 물에 헹궈 털어내고, 달콤한 다진 김치 위에 올려 비빈다. 프라이팬의 달걀 양배추 볶음밥과 김치 비빔국수. 누구의 입맛도 신경 쓰지 않은 오직 나만을 위한 혼밥이 준비되었다. 누가 봐도 남은 재료로 만든 혼밥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를 위한 최고의 한 끼였던 것이 분명했다.


아무 대화도 없는 고요함이 사치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의 엄마, 아내이기 전에 나는 그냥 나로 존재하고 싶을 때가 있다. 말없이 밥을 먹고 싶을 때가 있다.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도 한다. 그래서 전혀 심심할 틈이 없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상상하며 머릿속으로 흘려보낸다.


그 가볍고도 무거운 사치는 나를 늘 설레게 한다. 혼자 먹는 밥, 한 끼는 나를 회복시킨다. 아무것도 없이 홀로 채워지는 여백을 남긴다.


월요일 낮의 해방은 사랑에도 숨 쉴 공간이 필요한 것을 증명한다. 매일 혼자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기 위한 과정이었을 뿐. 가족들과 더 깊은 사람을 나누기 위해 오늘도 나의 해방을 선언한다.


캔바_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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