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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T] 오늘의 거짓말

거짓말은 달콤해

by 료료

시그니처의 달콤한 거짓말


오늘 뭐가 재밌었는데?


저녁 메뉴는 새송이 버섯과 베이컨 그리고 시금치였다. 저녁을 먹기 위해 자기 방에 있는 첫째 딸을 불렀다. 그녀는 식탁 의자에 앉아 수저를 챙기며 접시에 놓인 새송이버섯을 건방지게 위에서 내려다보며 (현실적으로 아래에서 올려다볼 수는 없지만 말이다)


“나는 양송이버섯을 좋아하지. 새송이버섯은 별론데....”라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나는 올 것이 왔구나! 했다. “먹어보고 맛없으면 너한테는 새송이버섯은 다음에 안 줄게. 그래도 한 번 먹어봐. 아까 네가 계속 말 시켜서 살짝 태우긴 했어.”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그녀의 답을 기다렸다.


“우악. 탄 맛이 나.” “아까 내가 버섯 굽는다고 조금 있다 이야기하자고 했는데 네가 계속 와서 말 걸고 나보고 오라고 했잖아. 어쩔 수 없었어. 그냥 좀 더 먹어봐. 밥이랑 먹으면 맛이 잘 안 날 거야.” “탄 맛이 나는 데 쓴맛까지 있어.” 나는 천성적으로 특별히 인내심이 많은 사람도 아니며 포용력도 크지 않다고 평소에 자부하기도 한다.


‘오늘도 이번 생의 나를 위해 기도합니다. 남편이 느닷없이 주말에 사 온 새송이버섯 왜 사 왔는지 모르겠지만 통통하게 맛이 좋아 보였던 그 녀석의 자태를 우리 딸에게도 선보이고 싶어 새 프라이팬에 내가 아끼는 소금을 정성스레 뿌렸던 나를 반성합니다. 소금만 정성스럽게 뿌릴 것이 아니라 굽기도 정성스럽게 구워야 했으며 아니 새송이가 잘못했구나. 양송이버섯이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저의 죄를 사해주시고, 저 어린양의 입맛을 사하겠노라 다짐합니다.’라고 길게 기도했던가 싶었다. 아니면 더 길었을지도 모르겠다.

“널 위해 썰어놓은 이 사과를 봐주지 않겠니?” 꿋꿋이 정신을 다잡아 침을 한 번 삼키고 다시 말했다. “식사를 준비한 사람에게는 맛이 없어 보여도 우선에 감사하다고 잘 먹겠다는 인사를 해야 하는 거야. 식사 예절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야. 알겠어?” 입을 삐죽이며 알겠다고 대답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석연치 않은 표정이기에 나도 마음이 조금 불편해졌었다.


“맛이 없는데 맛있다고 해라고 하는 건 아니야. 그래도 상대방이 너를 위해 자기 시간을 써서 준비했는데 우선은 예의 있게 행동해야지.”라고 말했지만 속으로 말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우치기 시작했다. 우선은 알겠다고 대답했으니 더 길어지면 짜증 낼 수도 있으니까 얼른 화제를 바꿔야 하겠다는 생각이 잽싸게 들었다고 하기에도 늦은 감이 많았지만 좋은 생각이었다.


“오늘 그래서 뭐가 재밌었는데?”라고 물으니 씩 웃으며 오늘에 대해 말해주기 시작한 딸의 모습에 (그래도 새송이에서 쓴맛이 난다며 몇 번이나 더 말했지만) 결국에는 접시를 비워가는 모습을 보며 내심 또 뿌듯했다.


오늘의 므랑그


생각했던 맛과 전혀 다르고 색다른 맛, 정상적인 상식과 규칙을 깨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한 접시의 속임수로 질서를 파괴하고 혼돈을 주는 요리 식탁의 트릭스터 셰프가 되는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장난기 어린 어떠한 기대도 깨버릴 수 있는 시그니처 메뉴를 만들어야겠다. ‘요리가 맛이 없다고 한 딸에 대한 반항심일까? 반항에 대한 거짓말, 거짓말에 대한 반항 어떠한 것이든 좋은 재료가 될 것 같다.

달걀흰자를 가득 담아 휘핑한 다음에 뽀얀 므랑그(머랭 프랑스어)에 뾰족한 칼의 눈부심과 번쩍하는 총소리를 담아낸다. 달콤한 거짓말 시럽을 넣어 다시 휘핑하면 정직함을 물리치고 결백한 전투에서 탄생한 변덕의 므랑그 한 접시가 탄생한다. 11세기 페르시아 학자인 이븐 시나는 “설탕 과자는 모든 병을 고치는 약이다.”라고 단언했다. 무자비한 정복자에게 설탕 과자를 선물로 바쳐 환심을 사기도 했다는 것이다.


‘오늘은 푹 익은 삶은 계란이 맛있고, 내일은 덜 익은 삶은 계란을 먹고 싶은 것처럼 보통의 변덕이 그렇지 않을까?’ 오늘의 므랑그 재료로 제철에 손질된 신선한 속임수, 변덕, 장난을 두께 5mm씩 슬라이스 해 준비해 뒀다. 평소에는 재료를 시장이나 마트에 가서 구입하지만 오늘의 트릭스터 식탁 재료는 신화와 전설 속으로 눈이 닿는 곳마다 거짓말 시럽을 찾아낸다.


북유럽 신화에는 신들을 속이고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한 로키가 있다. 때때로 신들에게 큰 위기를 초래하지만 가끔은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북미 원주민 신화의 영리한 코요테는 사람들을 속이거나 법칙을 어기며 혼란을 불러일으키지만 새로운 변화나 교훈을 주기도 한다. 타히티 신화의 마우이는 섬을 낚아 올리거나 태양의 속도를 늦추거나 바다의 생물을 조정하는 속임수를 부린다. 한국 설화의 도깨비는 장난을 치고 사람을 속이며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사건을 뒤집기도 한다.

나는 도깨비 가면을 쓰고 오늘의 므랑그를 만든다. 나는 변덕스럽고, 교만하며, 거짓말로 신을 속이고 인간의 마음에 들기 위해 달콤한 시럽이 된다. 어떤 시그니처 푸드에도 잘 어울리는 달콤한 시럽은 거짓말의 결정체다. 식사하던 중 달콤한 시럽 한 스푼이면 나의 삶에 어떠한 사건과 사고가 일어난다고 하여도 고쳐지지 않을까? 세상에 있을 수 없는 거짓말의 달콤한 시럽을 잔뜩 만들어내는 트릭스터 셰프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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