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간 만화미학자
철학을 전공한 만화평론가 박세현 작가는 만화의 미학을 주로 다룬다. 이 책에서는 미술과 만화의 접점을 이루는 18가지 키워드를 통해, 작가만의 독창적인 시선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한다.
프로롤그, “미술은 일기이자 자위다” 006 페이지
<프랑스의 라스코나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에 그려진 벽화가 미술의 시작으로 교육받았다. 하지만 이 동굴들보다 1만 5천 년 전에 만드러 진 프랑스 동남부에서 발견된 쇼베 동굴벽화에는 동물의 움직임과 원근법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쇼베 동굴 벽화는 정지된 순간을 포착한 움직임을 표현한 만화에 더 가깝다>
우리는 라스코나 알타미라 벽화를 미술사의 시작으로 배워왔다. 하지만 그보다 더 오래전, 프랑스 남부 쇼베 동굴벽화는 약 3만 년 전 인간이 남긴 최초의 ‘움직이는 이미지’ 일지도 모른다. 그 속에 담긴 동물의 생동감은이 실제 앞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사실적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야기를 그리기 시작했을까. 이 동물벽화에서 어떠한 서사의 생명력이 느껴진다.
사람들은 왜 모나리자에 환장할까?
작가는 세 번째 키워드에
‘취향: 과연 아름다움은 취향일까’, 034 페이지
실제로 루브르에서 사람이 제일 많은 곳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앞이다. 다른 그림은 몰라도 이 그림은 서로 안다고 자부하는 듯하다. 수많은 관람객들은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온다. 평생 다 빈치가 20여 작품밖에 안 그려서 미술사에 <최후의 만찬>과 같이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모나리자 앞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 꼭 그림이 좋아서일까? 나는 오히려 맛집에 줄 서듯, '파리에 갔으면 모나리자는 봐야지' 하는 마음, 에펠타워나 피라미드 앞에서 인증 사진 찍는 것처럼 일종의 의식처럼 말이다.
그림이 대단한 걸까, 다빈치가 위대한 걸까, 아니면 모두가 중요하다고 말하니 다들 모이는 걸까. 유리벽 너머로 마주한 모나리자는, 완벽한 황금비례 속에서 기묘하게 웃고 있다.
그 미소는 어쩐지 몽환적인 동시에 우리를 꿰뚫고 보고 있는 다 빈치의 눈빛 같아서 소름 돋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림의 크기가 생각보다 별 생각이 안 들기도 한다. 루브르 미술관은 규모가 커서 모나리자 여기 있구나 스쳐 지나가는 정도라고 해도 거짓이 아니다. 파리의 일정은 바쁘고, 루브르는 거대하니 말이다.
“모나리자네? 어, 안녕?” 하고 휘리릭 지나쳐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도 잠시의 눈 맞춤이 시간이 지나서 이따금 생각나기도 한다. 그게 뭐였지? 아 모나리자의 눈이 날 따라왔던 거 같은데... (괴담인가요)
열한 번째, 리얼리티: 대체 뭐가 리얼리티인가?
134 페이지
예술에서 리얼리티가 무엇인가 의문에 마침표를 찍은 작품이 클로드 모네의 연작 <루앙 대성당 연작>이다. 모네가 같은 장소에서 바라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하루라도 시간에 따라, 다른 날 혹은 다른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햇빛에 비친 루앙 대성당을 연작으로 그렸다.
‘얼마나 힘든 작업인지.... 밤새 악몽만 꾼 적도 있소. 대성당이 내 위로 무너져 내렸는데, 아 그게 파란색으로, 분홍색으로, 혹은 노랗게도 보이지 뭐요.’ _ 모네가 부인 알리스에게 보낸 편지 1892년 4월 3일
모네는 1892년에 편지를 썼고, 연작이 탄생하기 시작한 건 1894년이었다. 2년 넘게 대성당을 같은 장소에서 여러 날을 보면서 외로운 투쟁을 벌였을 화가의 열정을 크게 생각하는 화가였다.
이미지는 순간순간 빛의 스펙트럼이 만들어낸 우연한 ‘반사효과’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모네 이후 보이는 사물은 결코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고전주의의 리얼리티는 무너지고, 인간의 주관적 시각에 따라 보이는 사물은 다르게 나타난다는 회화의 패러다임이 등장했다고 한다. 결국 미술은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게 아니라, 본 대로 그리게 된 것이다. 내 눈에 비친 현상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발생한 관념대로 그리는 것이 리얼리티가 되기 시작했음을 알린다.
코로나 때라 다들 마스크를 끼고 있다. 파리와 가까워서 루앙에 가기가 편했다. 모네의 그림 속 루앙 대성당이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 직접 찾았다. 루앙 대성당을 마주하고 있을 때_ 모네는 과연 어디쯤에 있었을지 대충 감을 잡아봤다. 여긴가? 저긴가? 유럽의 공간은 세월이 흘러도 늘 그 자리에 있어서 마치 양자역학처럼 내가 그때 있었고, 나는 지금 없었고, 또 다른 내가 그곳에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네는 그때도 지금도 계속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나와 모네는 입자처럼 양자 상태로 존재하진 않지만, 기억, 장소, 예술이 불러오는 감각의 잔상을 통해 중첩처럼 느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동시에 겹쳐지는 공간.
루앙 최강 맛집이었다. 다른 건 안 먹어봐서 사실 모른다. 하지만 배가 고파서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맛있었던 기억이 오래 남는다.
이것은 서평인가.
모나리자와 루앙 추억 살리기 편인가.
또바기 작가님들과 독서 동아리에서 받은 책들로 서평을 적기로 했는데 마무리는 루앙의 피자가 되었다. 이것이 예술의 입맛 아닐까? 만화미학자가 바라본 미술관은 피자 입맛자가 바라본 말도 안 되는 서평으로 남기게 되었다.
만화미학자라는 제목이 끌려서 이 책을 골랐는데, 만화에 대한 이야기는 생각보다 많이 없어서 아쉬웠지만_ 각자의 생각이 다른 미술 이야기를 보고서 역시 미술은 재밌는 것이구나라는 훈훈한 생각을 마지막으로 서평의 모습을 띄우며 마무리를 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