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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타타타 Aug 29. 2024

철학자의 길

집단 착각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여행을 좋아하는 지인이 ‘칸트가 걸었다는 그 길’을 걸어보았다고 했다. 부러웠다. 나도 그곳을 꼭 방문하고 싶었는데, 독일을 두 번이나 여행하면서도 그곳에는 못 갔다. 칸트의 고향이 지금은 독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매일 빠짐없이 걸었던,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산책하는 위치를 보고 시계를 맞추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 지금은 러시아령인 칼리닌그라드다. 칸트가 살았던 당시에 그곳은 신성 로마제국 프로이센 왕국에 속했고, 2차 세계대전 후 러시아 연방에 병합되었다.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로 칼리닌그라드 주변의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유럽 국가가 되었지만, 칼리닌그라드는 여전히 러시아령이다, 그곳에 가면 칸트가 걷는 길을 걸으며 칸트의 숨결을 느껴보리라 하고 있었는데 지인이 그곳을 다녀왔다니, 그분이 새삼 존경스러웠다.

     

몇 달 후 그 지인은 또 ‘철학자의 길’ 이야기를 꺼냈다. “하이델베르크에 가면 칸트가 산책했다는 ‘철학자의 길’이 있는데 …” 하면서 하이델베르크 여행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칸트가 걷던 길이 아니었다. 지인이 말하는 철학자의 길은 나도 가본 적이 있는, 하이델베르크 성 건너편에 있는, 헤겔을 비롯한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교수들이 자주 산책했다고 하는 ‘철학자의 길’을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바로잡아 말해주니 지인은 인터넷을 검색하더니 “보시라. 인터넷 게시글 여러 개가 하이델베르크의 그 길이 칸트의 길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제가 독일 여행했을 때 가이드도 그렇게 얘기했고, 텔레비전에 유명 여행 프로그램에서도 그렇게 소개했다.” 정말 그랬다. 인터넷에 소개된 하이델베르크 철학자의 길 소개에 칸트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어디부터 잘못되었는가? 

    

칸트는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자라고, 그곳 대학에 교수직을 얻고 가르치고, 산책하고 연구하며 일생을 지내다가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일찍 일어났으며 아침은 차 몇 잔으로 족했고, 강의하러 가기 전후로 공부하거나 글을 썼다. 점심시간에는 지인을 불러 함께 얘기하며 길게 가졌다. 그의 이야기는 재미있었으며 여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오후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코스로 걸었다. 루소의 <에밀>을 읽는 동안, 프랑스혁명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며칠을 제외하고는 매일 걸었다. 그가 가장 멀리 외출한 곳이 100여 마일 떨어진 곳이었고, 하이델베르크에는 결코 간 적이 없다. 말년까지 쾨니히스베르크에 살다가 그곳에서 “그것으로 좋다(Es ist gut)”이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 그리고 그곳 성당에 묻혔다.  

    

지금, 하이델베르크의 그 길이 칸트의 길로 소개되는 것은 누군가의 착각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학창 시절 윤리 시간에 독일 철학자 칸트를 배우다가 의무론은 넘겨 듣고, 산책 이야기만 솔깃하여 들었던 누군가가, 나이가 들고 형편이 나아져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여행을 가보니 '철학자의 길'이 있고, 철학자들이 산책한 길이라고 하니, 그 철학자가 칸트이겠거니 했을 것이다. 그리고 여행 소감글에 '칸트의 산책길을 걷고 와서'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서 자신 있게 인터넷에 올리니, 그 글을 읽은 사람도 비슷한 교육을 받은 대한민국 사람이라, 그렇게 확신하고 이곳저곳 퍼 날랐을 것이다. 이것이 집단 착각이 일어나는 메커니즘이다. 


이제 나는 지인에게 조심스럽게 설명할 일만 남았다. “~님께서 다녀오신 하이델베르크 ‘철학자의 길’은 칸트의 산책길이 아니고, 헤겔, 하이데거, 야스퍼스를 포함한 하이델베르크 대학 교수들이 자주 산책했던 길로 보여요. 저도 아직 칸트가 실제로 걸었던 그 산책길을 가보지 못했는데, 혹 팀이 꾸려지면 저와 함께 그곳으로 여행 가실래요?” 

    

이 글을 쓰면서 두 가지를 더 알았다. 우리나라 서울에도 ‘칸트의 산책길’이 있다. 일본 교토에도 같은 이름의 길이 있다. 그리고 나는 매일 인근 하천 둑길을 걸어 퇴근하는데, 나만 홀로 그 길을 '철학자의 길'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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