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46 안보의 거래화, 시대의 변화가 시작된다

가치 동맹의 종말과 ‘청구서’가 지배하는 세계

by 팥도리

우리는 오랫동안 ‘동맹’이라는 단어를 숭고한 약속으로 믿어왔습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피로 맺어진 혈맹은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을 견고한 성벽처럼 느껴졌죠. 하지만 2026년 오늘,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차갑습니다. 동맹은 더 이상 ‘무조건적인 보호’가 아닙니다. 이제 안보는 시장의 논리로 작동하는 하나의 ‘상품’이 되었습니다.


아틀라스가 짊어진 짐을 내려놓다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은 전 세계 질서를 홀로 떠받치는 거인 아틀라스였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국가안보전략(NSS)을 통해 이를 공식적으로 거부했습니다.

“미국이 전 세계 질서를 홀로 떠받치는 시대는 끝났다”는 선언은 고립주의와 거래주의가 결합한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알렸습니다.

이제 미국은 서반구의 이익에 집중하고, 동맹국들에게는 각자의 지역 안보를 책임지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전략 수정을 넘어,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되어 온 글로벌 안보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붕괴를 의미합니다.


동맹, ‘가치’에서 ‘가격’으로의 전환

2025년 6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NATO 정상회의는 이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모든 회원국이 2035년까지 국방비를 GDP의 5%까지 올리기로 합의한 것입니다. 과거 2%라는 목표조차 버거워하던 유럽 국가들이 미국이 들이민 ‘청구서’ 앞에 굴복한 셈입니다. 이제 동맹은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에서 “가격을 지불해야 유지되는 프리미엄 서비스”로 격하되었습니다. ‘가치가 가격화된 동맹(Priced Alliance)’의 시대에서 안보의 수준은 동맹국이 지불하는 경제적 기여도에 의해 결정됩니다. 돈을 내지 않는 동맹에게 돌아오는 것은 보호가 아닌, 그 결과에 대한 책임뿐입니다.


한국, ‘모범 동맹’과 ‘표적 관세’ 사이에서

한국의 처지는 더욱 복잡합니다. 미국은 한국을 국방비를 책임 있게 부담하는 ‘모범 동맹’으로 치켜세우는 동시에, 자동차 등 주요 수출 품목에 대한 표적 관세와 보조금 축소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안보를 지켜줄 테니 경제적 양보를 하라는, 전형적인 ‘안보의 거래화’입니다. 주한미군 자원을 다른 지역으로 재배치하거나 대만 유사시 한국 내 기지를 활용하려는 ‘전략적 유연성’ 요구도 거세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안보를 위해 경제를 내어줄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독자적인 역량을 갖출 것인지 기로에 서 있습니다.


각자도생의 시대, 새로운 전략을 찾아서

안보의 거래화는 불편하고 두려운 변화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의존해 온 안보의 ‘거품’을 걷어내고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계기이기도 합니다. 이제 안보는 구걸하거나 약속에만 기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국방력, 기술력, 그리고 외교적 협상력이 곧 안보의 ‘가격’이 되는 시대입니다. 거대한 시대의 변화가 시작된 지금, 우리는 청구서의 금액을 깎으려 애쓰기보다 스스로 청구서를 발행할 수 있는 실력을 길러야 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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