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엄마 품을 떠나면 5-6살 때부터 타인과 어울리는 법을 터득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회성은 고도화가 되고 복잡해진다. 어릴 적에는 이기적이다. 내 것만 챙기려고 하지만 어느 정도 사회성이 발달할수록 내 것만 챙겨서는 지속적인 사회생활이 힘든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이 이타적으로 변하는 이유는 내가 생존하기 위해서다. 내가 타인을 도우면 내가 어려울 때 그들도 나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인간은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때때로 이타적인 행동을 취한다. 하지만, 선의의 이타성도 우리는 오해를 받는다. 이 오해를 만드는 속성은 질투다. 내가 A에게 이타심을 보이면 B는 A를 질투하고 나에게 섭섭함을 보인다. 이 삼각관계가 5 각관계, 7 각관계처럼 요소가 추가될수록 관계는 기하급수적으로 꼬이는 테크트리를 탄다. 마냥 이타심이 좋다고 해도 나의 생존에 해를 끼치는 경우다. 이 정도가 되면 어릴 때와 달리 내 주변의 사회망이 고도화되고 복잡해졌다는 반증이다. 이 때문에, 이타심은 사회적 관계가 복잡해질수록 영향력이 줄어든다. 그럼 어떻게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
사회 속에서 '나'는 일대일 관계가 아니라 일 대 다수의 관계다. 이 관계를 좋게 하기 위해서는 도장 깨기 하듯이 일대일로 이타심을 보이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회적 관계가 좋은 사람들 혹은 외부의 공격을 유연하게 넘기는 사람들은 포지셔닝에 능하다. 그들은 성과의 우위가 아닌 도덕적 우위를 먼저 선점하려고 한다. 실력이나 성과가 낮아도 도덕적 우위를 먼저 선점하면 성취 결과를 떠나서 자기 방어를 할 수 있으며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것만으로 자신이 직접 공격을 하지 않아도 공격을 할 수 있게 된다. 즉, 내가 당신들보다 도덕적 우위에 위치한다는 건 반대로 당신들은 나보다 낮은 도덕성을 지니고 있으면 나 보다 아래에 위치한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도덕성에 민감하다. 결과만 좋으면 과정이 어떻든 상관없다며 결과중심주의처럼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결정적인 순간에 승패를 좌우하는 건 도덕성이다. 도덕적 우위는 결과보다는 과정에서 나오며 도덕적 우위를 빼앗기면 나 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 처참히 밝혀도 아무 말도 못 하는 굴욕적인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그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싶지 않다면 결과도 결과지만 도덕적 우위를 먼저 선점하고 일을 진행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좋다. 이때 중요한 포인트는 나를 둘러싼 모두에게 나의 도덕적 포지션을 인지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지만 훨씬 더 효과적 인다.
과거에 절대권력이 있던 왕들도 존경받는 종교인들을 건들지 못했다. 종교인은 도덕적 우위의 상징이다. 그들을 공격한다면 역으로 자신이 후폭풍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을 꺾을 수 있는 방법은 그들보다 더 높은 도덕적 우위를 설계하여 선점하는 것이다. 자신만의 도덕적 명분을 만들어야지만 도덕적 우위를 선점한 사람들과 겨우 상대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