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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민들레 157호에 제 글이 실렸습니다!

신규 교사들은 왜 학교를 떠나는가

by 화랑

계간 민들레 157호 <교사는 가르칠 수 있을까>에 제 글이 실렸습니다. 책 <교대 나와서 교사 안 하면 뭐 먹고살지?>를 읽은 어떤 독자분이 저를 편집장님께 추천해주셨나봐요. 덕분에 처음으로 공식 매체에 글을 기고해보았습니다.

꺄!
도서관에서도 볼 수 있어요

아래는 제가 쓴 글입니다.



신규 교사들은 왜 학교를 떠나는가



그렇게 방황이 시작됐다

2023년 여름, 서울서이초등학교의 한 교사가 세상을 떠났다. 한 다리만 건너도 아는 사이인 서울교대 한 학번 후배가 나의 근무지로부터 고작 7km 떨어진 장소에서 외롭게 떠났다는 게 무척 슬프고 안타까웠다. 당시 나는 서른다섯 명이 넘는 과밀학급을 맡고 있었고, 우리 학교는 운동장을 반으로 쪼개 새 건물을 올리는 중이었다. 사건이 벌어졌던 끔찍하게 어둡고 답답한 공간이 왜 교실로 쓰일 수밖에 없었는지 나는 너무도 잘 알았다. 무서워서 교실을 교체해달라고 말하는 선생님의 심정도, 그럼에도 바꿔줄 수 없었던 학교의 사정도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래서 내 일처럼 아팠다.
감정을 추스릴 새도 없이 연이어 비슷한 일이 보도됐다. 동료 선생님들이 서울, 군산, 대전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역시 악성 민원과 불공정한 업무 분장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내 직업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원래도 불만은 있었다. 적은 급여, 겸직 제한, 보수적인 조직 체계 등. 그래도 이 정도는 어디서나 겪을 수 있는 직장인의 애환 정도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걸 상쇄해 줄 확실한 장점이 있었다. 안정성. 어릴 때부터 불안도가 높았던 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안정적인 직업 중 하나인 초등 교사를 선택했고 졸업하자마자 바로 사회에 닻을 내렸다. 내가 탄 배는 부모님 앞에선 자랑스러운 여객선으로, 일터에선 씩씩한 군함으로 변모했다. 때때로 화려한 유람선이 지나갈 때면 볼품없는 오리배가 되어 위축된 적도 있지만 아무래도 괜찮았다. 아주 깊게 박힌 닻이 든든하게 나를 잡아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련의 사건을 접하고 나니 문득 이 직업이 더 이상 안정적이지 않다고 느껴졌다. 물론 학교에서 구조 조정을 하거나 갑자기 희망퇴직을 요구하진 않는다. 대신 교실 안팎에서 학생 간의 다툼이 생겼을 때 끝도 없이 학부모로부터 괴롭힘을 당할 수 있다. 내가 했던 말이 다 녹음되어 그중 일부가 아동학대 신고의 근거로 쓰일 수도 있다. 현장 체험학습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이건 내가 기대하던 안정성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선 무난히 정년까지 마칠 자신도 없었다. 안정적이지 않다면 이 직업이 나에게 주는 장점은 무엇일까. 닻이 끊겼는데 굳이 이 배에 타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방황이 시작됐다.


그들은 왜 학교를 떠났는가

최근 5년 간 퇴직 교원 수는 꾸준히 증가했고 그중 초등교사가 가장 많았다. 명예퇴직자 수는 증감을 반복했지만 의원면직(퇴직)은 계속 늘어나 작년엔 943명에 달했다. 특히 젊은 교원의 이탈이 꾸준히 증가해 2023년 10년 차 미만 중도퇴직자는 576명이었다. 전국의 교육대학교 및 초등교육과에서도 667명이 이탈했는데 이는 근래 중 최고치이다. 이제 막 교단에 서서 호기심과 의욕이 넘칠 시기, 신규 교사들은 학교를 떠난다. 선생님을 꿈꾸던 예비 교사들은 길을 바꾼다. 모두가 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교직은 더 이상 머무르고 싶은 자리가 아니다.
나도 관둬야 할까? 현장에 남는다면 버틸 수 있을까. 어디서부터 바뀌어야 할까. 막막한 마음을 안고 다섯 명의 퇴직 교사를 찾아갔다. 무엇이 그들을 떠나게 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들어봤다.

진경: 2년 근무 후 2022년도에 의원면직, 워킹홀리데이 중
희희: 1년 근무 후 2024년도에 의원면직, 작가, 진로탐색 중
현지: 4년 근무 후 2023년도에 의원면직, 크라우드펀딩 크리에이터
유미: 5년 근무 후 2023년도에 의원면직, 사업가, 인플루언서
윤이: 5년 근무 후 2023년도에 의원면직, 대안학교 교사

한 명 씩 대화를 나눌 때마다 짙은 울림이 남았다. 단순한 이직으로 보기에 이들 삶의 궤적은 너무나 깊고 치열했다. 저마다 사연이 다양하고 현재 사는 모습도 다채로웠는데 그럼에도 공통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퇴직에 있어 부모님의 반대를 겪었다는 점이다. 다들 진로 고민으로 힘든 와중에 부모님까지 설득해야 해서 고생이 배가 됐다. 두 번째 공통점은 교직을 그만둔 이유였다. 결정적인 요소는 달라도 큰 줄기가 비슷했다. 이들은 교권 침해가 발생하는데도 이를 저지할 수 없는 현실, 혹은 급여가 부족해도 보완할 수 없는 공무원의 한계가 의원면직의 계기였다고 말했다.

교권 침해

우리 반에 1학년 때부터 담임 교체를 밥 먹듯이 해온 전설의 학생과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학생이 있었어요. 그 둘이 있으니까 수업이 전혀 안 되더라고요. 수업 시간에 앞문 뒷문을 왔다 갔다 뛰어다녔어요. 화가 나면 저한테 뭘 던지면서 쌍욕도 했어요. 그 학생 어머니는 술 마시고 새벽에 전화해서 “우리 아들 인생 망쳐놓고 네가 잘 살 것 같아?” 이러셨어요. 그 아이 한 명한테 학교 폭력 사안 7개가 걸려 있었거든요. (유미)
매일 사건이 생겼어요. 그것 때문에 야근하고, 관리자에게 보고하고, 학부모와 통화하고 상담하는 나날이 계속 반복됐고요. 쉬는 시간에도 마음 놓고 있을 수가 없었어요. 화장실도 못 가고, 점심 식사 후에도 바로 올라와서 계속 학생들을 보고 있어야 했죠. 교사라는 직업은 제가 너무 좋아하고 원했던 일이었거든요. 예상과 다른 데에서 오는 괴리 때문에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희희)

사실 어딜 가나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먹고사는 일에서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교직에서 겪고 있는 문제는 어떤 경우든 막을 수가 없다는 데에 있다. 학교는 정당하든 악독하든 민원이면 다 받아줘야 한다. 설사 학생이나 학부모가 나쁜 의도를 품는 게 분명할지라도 이에 대처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까 나날이 무력해진다.
개인적으로 ‘아동학대 예방법’의 필요는 십분 인정한다. 내가 어렸을 때 수업 시간 내내 토끼뜀만 시키던 체육 선생님이나 창문에 부딪힐 때까지 학생을 밀치던 수학 선생님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건 명백히 잘못됐고 처벌 받을 행동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학교에서 아동학대라고 들어오는 신고나 민원 중에 진짜 그런 경우가 몇이나 되는가.
반면에 학부모가 아동학대를 빌미로 교사의 생활지도를 방해하거나 업무에 차질을 주는 일은 매우 빈번하다. 이 사회는 체험학습 중 일어난 안전사고부터 놀이터에서 생긴 학생들 간의 다툼까지 모든 법적 책임을 교사에게 돌리며 궁지로 몰아넣지만, 역으로 교사가 학부모나 학생에게 대응할 수 있는 제도는 희미하다(그나마 문제학생 분리나 교권보호위원회를 여는 방법이 있지만 현장에서 이는 거의 실현되지 않는다).

현지와 윤이는 이러한 문제를 교사 혼자 감당해야 하는 현실에 주목했다.

학생을 상담하면 결국 가정이 원인이에요. 근데 그 문제는 제가 해결해 줄 수가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한계가 너무 명확하더라고요. 가정과 사회가 연계돼서 그 아이를 같이 봐야 해요. 저 혼자 아무리 붙들고 있어도 안 되는 거죠. 저만 계속 소진되고요. (현지)
공교육에 있을 때 교권 추락으로 인한 어려운 점을 담임교사 혼자 짊어져야 하는 구조가 제일 큰 문제라고 봤어요. 여기 대안학교는 하나의 공동체를 잘 이룬 상황이에요. 우선 교사회랑 부모회가 있고, 교사끼리 또 부모끼리 서로 도움을 주고받아요. 학부모가 교사 한 명을 괴롭히듯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윤이)

대안학교로 이직한 윤이는 아직까지 교권 침해로 교사가 고통받는 상황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문화도 다르지만, 구조의 차이에 있었다. 윤이가 일하는 학교에서는 교사와 학부모가 일대일보다는 교사회 대 학부모회 형태로 소통했다.
교권 침해는 교사뿐만 아니라 같은 반 학생, 학교 전체에까지 피해를 끼친다. 늘봄과 디지털 교과서가 빛처럼 빠르게 도입되는 동안에 교권 침해 관련 제도는 무엇이 바뀌었나. 서이초 교사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2년, 그 사이에 현직 교사인 나는 어떠한 변화도 체감하지 못했다.

급여

진경과 현지를 떠나게 한 이유는 ‘돈’이었다.

서울에서 교사를 하면 금전적인 불만이 커지잖아요. 그게 직업 선택에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돈 잘 버는 직업을 갖고 싶으니까 다른 생각이 흐려졌어요. 노력하는 만큼 뭔가를 성취할 수 있는 일을 찾기도 했고요. (진경)
제가 처음에 부산에서 기간제 교사로 6개월 일하는 동안 천만 원을 모았거든요. 진짜 안 먹고, 맨날 걸어다니고, 학교에서 뭐 있으면 자원하고 이런 식으로 짠테크를 했는데 결국 한계가 있더라고요. 부동산 경매 공부도 꾸준히 하고, 임장도 보러 다녔지만… 그냥 몸값을 올리는 게 제일 나은 방법인 것 같았어요. 다른 직업은 저녁에 부업으로 온라인 쇼핑몰이라도 할 수 있잖아요. 그러다 볼륨이 커지면 갈아타면 되고요. 근데 교사는 겸직이 안 되죠.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너무 손발이 묶여있어요. (현지)

나도 비슷했다. 같은 서울인데도 기숙사에 살던 대학생 때와 달리 초임 교사로서의 자취 생활은 힘에 부쳤다. 200만원 언저리 되는 월급에서 월세와 교통비를 빼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당시 강남 학군지에서 일했는데 우리 반 아이들의 일상을 보면 한숨이 나왔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 월급으로는 평생 그렇게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최소한 중고등학교 때 공부하면서, 임용고시 때 노력하면서 품었던 기대만큼은 살고 싶었다. 안전한 아파트, 거실 있는 집에서 쇼파에 누워 텔레비전도 보고 차곡차곡 돈 모아 미래 계획을 하는 삶. 그게 욕심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그것도 못하면 교대까지 와서 임용은 왜 쳤나 의문이 들었다. 그때의 나는 직업을 바꾸거나, 투자에 전념하거나, 복권에 당첨돼야 했고 셋 다 자신이 없어 아예 지역을 바꿔버렸다. 고향에 돌아온 이후 다행히 풍요로워졌다. 집값이 저렴해 부담이 덜하고 전보다 호봉이 올라 저축률도 높아졌다. 물론 같은 호봉이어도 서울에선 빠듯했을 것이다.
흔히 공무원은 50대, 60대 되면 월급도 올라가고 은퇴하면 연금도 받으니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럼 되묻고 싶다. 당장 200만 원대 급여를 받는 20대 교사에게 그 말이 와닿겠냐고. 학교는 일반 기업과 구조가 달라 신규라고 일이 적은 게 아니다. 똑같이 한 학급의 학부모와 학생을 책임져야 하고 신규라는 이유로 되려 기피 업무를 담당하기도 한다. 현재 물가와 부동산 가격을 고려했을 때 우리나라 저연차 교사는 정당한 보수를 받고 있는가? 겸직도 제한적인 공무원 사회에서 월급이 부족하다면 나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젊은 교사 이탈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살기 위해 나갈 수밖에

그럼에도 교사의 퇴직은 쉽지 않다. 공무원의 특성상 이직과 재취업이 자유롭지 않을뿐더러 어렵게 합격한 임용고시를 포기하려면 엄청난 확신과 용기가 필요하다. 주변에선 또 어찌나 반대하는지. 특히 여교사가 관둔다고 할 땐 유난히 간섭과 통제가 심하다. 인터뷰이 다섯 명의 부모님은 하나같이 딸이 교직에 남길 바라셨으며 진경과 현지는 학교를 그만두기 위해 가족과 극심한 갈등을 겪어야 했다. 지지 받지 못해 외롭고 다른 일로 먹고살 수 있을지 몰라 불안한 상황 속에서 이들은 어떻게 결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길을 걷다가도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컨트롤이 안 됐어요. 1년 정도 심리 상담을 받아서 나아지는 듯하다가도 다시 그러는 거예요. 그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내가 교사를 그만두지 않고서는 나을 수가 없구나.’ (진경)
그때는 정신과 다녔어요. 매일 아침에 눈 뜨면 차에 치이고 싶고, 밤에 잘 때는 다음 날 안 깨고 싶었어요. (유미)

가벼운 마음으로 그만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들의 퇴직은 진경의 말을 빌리자면 ‘더는 못하겠어서, 위기감이 들어 선택한 셀프 구제의 방법’이었다. 교원의 이탈을 일반적인 이직과 다르게 봐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절벽까지 내몰린 교사는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만두거나, 극단적인 경우 일찍 세상을 떠난다.


그 이후의 삶

나의 경우 다른 진로를 고민하다가도 주변에서 ‘다 똑같이 힘들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나이 들면 후회한다’라며 극구 만류해 움츠러들었다. 인터뷰이들도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퇴직 후 1~2년이 지난 후 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교사를 그만뒀다고 ‘고민 끝! 행복해!’ 이건 아니에요. 그치만 이렇게 여러 경험을 하고 나에 대해 고민해 보는 과정 자체가 되게 만족스러워요. (...) 왜 그렇게 길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어요. 막상 관두니까 찾으면 방법이 다 보이는 거예요. 요즘엔 비전공자여도 취업하는 방법이 정말 많고요. (진경)
불안하죠. 직업이 있다가 없어졌고 아직 주위엔 잘 다니는 친구들도 많으니까요. 근데 어쨌든 학교에 출근할 때보다 마음이 편안해요. 매시간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돼서 안 힘들어요. (희희)
지금 삶에 만족해요. 특히 잘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월급이에요. (현지)
이 길로 잘 왔다는 확신은 100퍼센트예요. 여기서 격려 받고, 성장하고, 보람도 느끼거든요. 물론 바쁘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고, 부딪히면서 배워야 하니까 힘들 때도 있어요. 그래서 100점 만점에 한 90점 정도? (윤이)

우려와 다르게 다들 새로운 삶에 비교적 잘 적응해 만족하고 있었다. 가끔 불안해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진 않았다.


10년 후엔 나아질까

작년 겨울 이러한 인터뷰를 모아 책을 출간했다. 이 과정에서 희망과 용기를 얻었고 어두운 동굴 속 한 줄기 빛을 찾은 듯 했지만 여전히 나는 현직에 있다. 관두지 않은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큰 건 아무래도 육아다. 올여름 예상치 못한 임신을 했고 입덧이 심해 산전휴직을 신청했다. 당분간 진로 고민은 잠시 접어두고 출산과 육아에 집중할 예정이다.
교대 다닐 때부터 ‘1등 신붓감’, ‘애 키우면서 하기 좋은 직업’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나름 교육학을 전공해 국가고시까지 보는 직업이 ‘여자가 하기엔 최고’라는 단편적인 문구로 설명되는 게 씁쓸했다. 선배 선생님께서 구조적인 문제는 덮어두고 “애 낳을 때까지만 참아. 그때가면 이만한 직장이 없어”라고 하시는 것도 은근히 짜증났다. 그런데 막상 당사자가 되고 나니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토록 나를 실망시켰던 교직이 현재의 나를 보살피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임산부나 애 엄마로서 배려 받을 수 있는 직업이 몇 안되는 것도 이제야 절감한다.
그럼에도 10년 안에 학교를 관두는 게 나의 목표다. 급여야 그렇다 치더라도 나날이 심해지는 교권 추락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때 되면 뭐가 달라질까. 이렇게 말하면서도, 10년 후에 지금의 상황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라본다.



계간 민들레


<민들레>는 이번 기회에 처음 알게된 매체인데 팬이 됐어요. 다른 분들의 글도 무척 흥미로워서 몇 권 더 사보려고 합니다. 교육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한번쯤 읽어보시길! 특히 이번 편은 교사분들께 더없이 큰 힘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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