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보는 근황
구직중이고 내일이 삼일절이다. 내일은 회사들에게서 연락이 안 오겠구나 싶었다. 날짜감각 없이 살고 있다.
계속 집구석에서 구직활동을 했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면접을 보고, 면접 복기하고, 정리하고, 읽고, 문제풀고 그랬다. 시험 비스무레한 걸 치르니 응당 공부를 멈추지 않아야 하는데도, 매일이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는 탓에 묘한 권태로움을 느낀다. 내일이 기술 면접이고 라이브 코딩인데 오늘 뭘 더 풀고 뭘 더 본들 결과가 크게 바뀔까 하는 의문도 있다.
정신적인 에너지가 거의 없다. 작년 11월부터 여유 없이 내 안의 모든 에너지들을 쏟아 구직을 준비해나갔기 때문이다. 하루에 최소 수시간 이상씩은 구직 준비를 하거나 이력서에 쓰여진 프로젝트를 다듬거나 했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극단적으로 단순해졌다.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불안감을 유발할 수 있는, 시간 들이는 행위들을 모두 멈췄다. 운동도 오래 쉬게 되었고, 끼니도 집에서 아주 간단히 처리했다. 애인 외의 사람도 거의 만나지 않았다.
오늘 하루는 약간 붕 떴다. 지원한 곳들 중에 다음 프로세스를 협의해야할 회사가 있는데, 오늘 전부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내일은 공휴일이니 내일도 오지 않을 것이다. 면접 직전쯤이 되면 준비한 스크립트를 조금 읽겠지만 아직 언제 해야할지 모르니 면접 준비할 의욕은 아직 없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붕 뜬 날이 생길지 몰랐다. 생길줄 알았다면 그동안 미뤄왔던 친구들과의 약속을 잡았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오늘과 내일은 적당히 시간을 떼워야 하는데, 온 정신이 생산적인 활동을 거부하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좀 보려고 했는데 결국 펼치지 못했다. 간신히 방청소만 했다. 속절없이 가는 시간이 별로였다. 그래서 오랜만에 그냥 뒹굴 뿐이었는데, 이런 정신머리로 회사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살짝 들었다. 그런데 또 입사하면 가서 잘 할것임을 안다. 그동안 돈 받는 일은 허투루 해본 적이 없다.
이렇게 뭔가 시작하기 힘들어진, 힘이 쭉 빠져버린 멘탈리티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게 중요할 것이다. 아직 입사 전까지는 시간이 좀 있으니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 부터 시작해서 루틴을 좀 개선해나가야 할 것 같다.
정신이 몹시 취약해져서 기쁨이나 보람같은 걸 잘 느끼지도 못하는 것 같다. 뭔가를 이룬 기쁨을 잘 느끼고 싶다면 노력하는 과정의 끝에 정신과 몸이 온전한 상태로 있어야 함을 깨달았다. 구직 성과가 조금씩 나고 있는 지금인데, 구직 직전에 느꼈던 불안이나 걱정은 그 결만 바뀐채 계속 존재하고 있다. 구직 망하면 어떡하지 류의 불안이 이제는 회사 가서 못하면 어떡하지 이런 식으로 바뀌고 있다.
오늘 내가 시간을 쓰는 방식이 내 처지와 비슷했다. 나는 붕 떠있다. 학생도 아니고 직장인도 아니고 회사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하루의 일과가 정해진 것도 아니라서 오로지 나는 내 시간을 쓰지만 무엇을 할지 발견해내지는 못했다.
개발을 시작한지 3년이 지났고, 개발이 재미있고 좋아서 해나갔지만 마음 한켠에는 단 한번도 좋은 직장과 연봉으로 설명되는 외적인 성과를 위해 마음을 내려놓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서 그 목표가 얼추 달성되려고 하니, 그동안 준비해왔던 목표를 잃어버린 셈이다. 다시 목표 설정이 필요해졌다. 내 앞에 맘놓고 달릴 수 있는 목표와 같이 달리는 사람들을 어서 만나고 싶다.
내일부터 다시 아침에 일어날 것이다. 그것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 내 현 상황을 똑바로 보려고 글을 써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