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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혁 Dec 25. 2018

나 약간 3살같음

불안감에서 벗어나는 방법(따윈 없다)

카데르 아티아 <이동하는 경계들>, 2018, 광주 비엔날레


인생의 모든 순간을 통틀어 김종혁은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가끔 억울하다. 왜 나는 성격이 이럴까. 어떤 것 하나도 그냥 흘려보내는 것 없이, 나에게로 오는 것 하나하나 모두 느끼고 걱정하고 생각해야 한다. 계획을 짜놨으면 완벽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안된다. 완벽한 변인통제가 필요하다. 이러면 어떡하지? 저러면 어떡하지? 안되면 어떡하지? 그렇게 모든 것에 감정을 많이 쏟는다. 이런 상황에서 계획한 바, 바라던 바가 잘 이루어지면 별로 감동하지 않는다. 완벽이 디폴트다. 안 되면? 미친듯이 실망하고 미친듯이 본인에게 욕지거리를 해댄다. 이런 것도 못하냐고. 대체 뭐하냐고 지금.


그러니까 어떤 식이냐면… 전역하기 전에 지원한 알바가 있었다. 중학교 학생들 대상 캠프의 대학생 멘토 알바. 3주동안 아이들과 캠프에서 합숙하며 학생들 가르치는 일이었다. 2시간 지나면 자동으로 꺼지는 싸지방 컴퓨터로 (이미 몇 번 날리고 피눈물 흘리며) 자소서를 썼다. 휴학증명서 사본을 지원할 때 같이 보내야 했는데, 군대엔 스캐너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으니 아는 동생한테 전화해서 스캔해서 메일로 받았다. 심지어 증명서 결재도 싸지방 컴퓨터로는 안 되가지고 엄마한테 집에 있는 핸드폰 정지를 풀어서 겨우 핸드폰으로 결재했다. 자소서를 다 쓰고 지원을 하는데 거의 일주일이 걸렸다. 자소서 쓰는데만은 딱 이틀정도 걸렸는데…


지원한 시점에서, 이 알바가 붙으면 너무 행복하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군대의 모든 제약을 헤쳐나가며 아득바득 지원했는데… 진짜 붙으면 너무 좋을 것 같다는 생각과 알바 월급으로 풍족한 복학 첫 학기를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뜨게 됐다.


근데 그것도 잠시, 말년 휴가 나가서 면접을 보고 나서 미친듯한 걱정에 휩싸이는 종혁이… 아… 면접 망한거 같은데…. 이거 떨어지면 안되는데… 당연히 붙어야되는데… 내가 자소서를 어떻게 썼는데… 엄마 기계 잘 모르셔서 폰정지 푸시는데 30분이나 걸렸는데… 돈 벌어야 되는데… 나의 오지고 지리는 계획이 여기서 망하면 안 되는데… 아….


그리고 나서… 붙더라. 정말 좋은 일인데, 이미 걱정으로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붙잡고 기뻐하려니 딱히 막 흥은 안 났다. “어.. 붙었네..” 정도. 별로 안 행복했다. 그냥 당연히 붙었어야 했던 것처럼. 안 붙었으면 진짜 미친듯한 실의에 빠져서 지냈겠지. 이미 붙었나 안 붙었나 걱정하는 과정에서 나는 내 자신한테 “이거 못해내면 너 욕 좀 처먹자”는 암시를 걸고 있나 보다. 못하면 욕먹어야 되고, 잘하면 그냥 뭐 당연한 거고. 성공을 위해 정말 부정적으로 내 자신을 피드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까 제명에 못산다.      


매일 밤 침대 위에서 나를 심판한다. 오늘은 잘 산 게 맞냐고. 오늘은 얼만큼의 노력을 했냐고. 공부는 많이 했는지, 책은 많이 읽었는지, 머리에 무엇을 넣었는지, 낭비한 시간은 없었는지, 쓸모 있는 사람은 되었는지… 온갖 것들이 덮쳐오고 머리는 복잡해진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나에게 욕을 퍼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슴은 답답하다. 잠을 편안히 잘 수 있을 리가. 오늘 못 끝내 놓은 무언가가 있다면, 사실 마음만큼은 잠 마저도 마다한 채 다시 이어가고 싶다. 내 몸한테 미안해서 그렇게 못할 뿐.        


책에서 “유아적 나르시시즘”이라는 정신분석 개념을 접한 적이 있다. 3살 전후 아이의 세계란 아주 간단하고 완벽하다. 본인이 세계의 중심이다. 아기가 노력하지 않아도 모든 욕구는 부모와 주변 환경에 의해서 충족된다. 그러니 본인이 세상의 왕이며, 단 하나의 완결된 존재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모든 계획은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모두 충족되며, 걱정할 필요가 하나도 없으니까. 물론 아이가 성장하며 이렇게 완벽한 세상은 종말을 맞이한다. 본인이 이미 엄청나게 많은 사람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닫고, 본인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선 본인이 노력해야함을 깨닫는 것이다. 아기가 성장하며 유아적 나르시시즘은 깨진다. 본인이 실패할 수도 있고, 완벽하지 않은 존재임을 지각하는 것이다.


김종혁은 유아적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아직도 주위의 환경이 나에게 완벽하게만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 미친듯이 집착하며, 실패란 용납할 수 없다고,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나 자신을 세뇌한다. 계획은 완벽하게. 완벽하게. 완벽하게!


누군가는 말한다.


“아니 사람이 실패할 수도 있고, 온갖 다른 기회가 많은데 왜 그렇게 걱정부터 하고 너 자신을 그렇게 괴롭혀?”


안다. 물론 머리로만. 맘대로 안된다. 기대하지 않는 것이, 실패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것이. 왜냐면 실패에 비하면 성공은 무지막지하게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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