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아니, 사실 본인이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건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 주관의 영역에 있는 본인 생각으로 어떻게 본인을 객관화시키냐는 말이다. 아무리 열심히 본인을 제삼자로 만들어도 그것은 결국 내 생각일 뿐이고, 결국 자기 객관화란 아무리 노력해도 내 주관 위에서 만들어질 뿐이다.
그래서 무지 상대적이고, 헷갈린다. A랑 비교했을 때 내가 아주 잘했던 무언가를 B랑 비교하고 한 삼초만 생각해보면 그런 게 아니라는 걸 깨닫기가 너무 쉽다. 엉엉.. 나는 잘하는 거 없는 쓰레기였다는 사실만 수시로 깨닫는다.
내가 남한테 어떻게 보일지도 사실 정확하게 짚어내는 게 불가능하다. 나는 절대 타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남 눈치를 보고 소화하려 해도 애초에 나한테 관심 없는 사람들만 한 트럭이다. 그러니 헷갈린다. 굳이 나에게 안 좋은 편견이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내가 유추할 수도 없는 오해를 지니고 있다. 뭐 내가 첫인상이 별로라던지, 본인은 뿔테 안경 쓴 사람을 싫어한다던지...
그런데 자기 객관화는 곳곳에서 무지무지하게 요구된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남용된다. 사실 1도 알 수가 없음에도. 소크라테스나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 말했던 손자 같은 사람이 “본인을 알라!” 말한 이유는 이것이 굉장히 어렵기 때문이다. 이걸 할 수 있다면 철학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거고, 누구랑 싸우든 그냥 다 이길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자기 객관화를 좀 해라, 니 분수를 알아라는 이야기는 결국 성인의 반열에 오르라는 소리와 같다. 당장 당신에게 내 분수 어쩌고 들을 시간에 집 침대에 누워 뉴에이지 음악 틀고 마음 걷기 명상을 하며 텃밭을 가꿔야 하니 나를 보내달라.
인격도야의 수준에서 논하기 전에, 우리나라에선 “너 알아라”는 말이 그냥 “나대지 말라”라는 말과 동의어인 것 같아서 슬프다. 그냥 “네가 세상의 먼지인 것은 디폴트이고 학계의 정설이니 그냥 네가 쓰레기인 것처럼 생각하고 사는 게 미덕”이라는 느낌이랄까. 그런 식의 자기 객관화는 이미 습관이 된 것이 아닌지. 남 눈치 안 보는 삶이 참 부럽지만, 습관 된 타성은 오늘도 낮은 자존감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만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