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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화수 Feb 01. 2019

우리는 들을 준비가 되었나?

영화 '아이 캔 스피크'를 다시 봐야 하는 이유

영화 '아이캔스피크' 나문희, 이제훈 주연, 김현석 감독


'옥분(나문희 분)'이 구청에 등장하면 직원들은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발버둥을 친다. 온 동네를 뒤져 민원 거리를 찾아오는 막무가내 그녀는 '도깨비 할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오늘도 누군가 상가를 임의 훼손해서 상인들을 내쫓으려 하고 있다며 관련 증거자료들을 산더미처럼 가지고 구청을 찾았다.


영화 '아이캔스피크' 중에서


이 구청으로 갓 전입 온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는 이러한 영문도 모른 체 옥분의 민원을 맡았다가 애를 먹는다. 원칙주의자이지만 7급 공무원이 되기 위해 구청장에게 상가 재건축 문제 해결의 꼼수를 제안하기도 하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민재 앞에 옥분은 그저 골칫거리일 뿐.

 

영화 '아이캔스피크' 중에서


옥분에게는 꿈이 있다. 영어 회화를 능통하게 하는 것. 비싼 돈을 들여 영어 학원에 다녀보지만 젊은이들과 함께 하는 수업에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는다. 그때 외국인과 유창하게 대화하는 민재를 발견한 옥분. 옥분은 민재에게 영어 선생이 되어 달라고 매달린다.

 

영화 '아이캔스피크' 중에서


골칫거리 옥분이 영어를 가르쳐달라니... 민재는 단호하게 거절하지만, 동생 '영재(성유빈 분)'를 옥분이 남몰래 돌봐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영어 선생이 되어주기로 약속한다. 그렇게 옥분과 민재, 그리고 동생 영재는 한 가족과 같이 서로 정을 나누며 지내게 된다.

 

영화 '아이캔스피크' 중에서


그러던 어느 날, 옥분은 민재가 상가 재건축을 밀어붙이기 위한 꼼수를 제안했고, 자신이 가져다준 민원자료들을 폐기했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한다. 민재도 옥분이 미국에 있는 동생에게 전화를 하기 위해 영어를 배우고 있지만, 정작 동생은 옥분은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옥분에게 말하며 크게 상처를 입힌다.

그리고 옥분은 둘도 없는 친구 '정임(손숙 분)'이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입원했다는 걸 알고 실의에 빠지게 된다.

 

영화 '아이캔스피크' 중에서


정임을 문병하는 옥분에게 ‘최현욱 기자(이신성 분)'가 찾아온다. 그는 정임이 일본에게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과를 받아내기 위한 미 하원의원들의 '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을 위해 활동해왔다는 사실을 말해주며, 정임을 대신해 옥분에게 미 하원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해 줄 것을 요청한다. 옥분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던 것.

 

영화 ‘아이캔스피크’ 중에서


한 평생 자신의 아픈 과거를 감추며 살아왔던 옥분은 이제 더 이상 숨지 않기로 결심한다. 엄마의 묘를 찾아온 옥분.


엄마. 죽을 때까지 꽁꽁 숨기로 살라고 했는디... 엄마랑 굳게 약속했는디 이제 그 약속 못 지켜. 아니 안 지킬라고. 돌아가신 엄마보다는 정심이가, 정심이 보다는 내가 더 중하니께. 엄마 왜 그랬어... 왜 그렇게 망신스러워하고... 아들 앞길 막힐까 봐... 전전긍긍 쉬쉬하고... 내 부모 형제마저 날 버렸는데 내가 어떻게 떳떳하게 살 수 있었겠어...
불쌍한 내 새끼, 욕봤다. 욕봤어.
한 마디만 해 주고 가지...
그라고 가지.. 엄마! 엄마!!!... 엄마....


영화 ‘아이캔스피크’ 중에서


옥분의 이야기가 뉴스를 통해 전해지고 이 사실을 접한 민재는 충격에 빠진다. 옥분을 다시 찾아온 민재.


밥은 묵었어? 내 며칠 집을 비워 찬거리가 없는디 잠시만 기다려주면...
죄송합니다 할머니... 죄송해요 할머니...
아니다. 민재 니가 죄송할게 뭐 있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옥분은 울먹이는 민재를 따뜻하게 안아준다


“정임이는 위안소에서 나를 살려준 친구였어. 정심이가 몇 년 전부터 정신이 오락가락할 때부터 예상을 했던 거 가터. 정심이를 대신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이 생길 거라고... 그래서 내가 영어를 배웠어... 박주임(민재)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도와줄 수 없겄냐?”

 
영화 ‘아이캔스피크’ 중에서


민재의 도움과 상가 사람들의 응원으로 옥분은 마침내 미 하원 청문회에 서게 된다. 일본의 방해 공작 이 있었지만, 대한민국의 장관, 국회의원, 시민들의 탄원으로 이를 극복하고 마침내 증언할 기회를 얻은 옥분. 단에서 내려와 자신의 배를 드러내 보이자, 무수한 칼자국과 욱일승천기와 같은 그림과 알 수 없는 일본어들이 난잡하게 쓰여있다.


영화 ‘아이캔스피크’ 중에서


“일본군이 내 몸에 새겨놓은 칼자국과 낙서요. 내 몸엔 이런 흉터들이 수도 없이 있습니다. 이 흉터들을 볼 때마다 지옥 같은 그때의 고통이 한없이 되살아 납니다. 증거가 없다고요. 내가 바로 증거예요. 살아있는 생존자들 모두가 증거입니다. 그 지옥 같은 고통을 당할 때 내 나이 겨우 열세 살이었소. 나는 죽지 못해 살았소. 고향을 그리워하며 내 가족을 만날 날을 기다리며...I am standing here today, for those young girls their childhood stoled away by the crimes of japanese army... we must remember those girls and the pain that day...”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김복동 할머니’가 지난 28일 향년 9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김 할머니는 30년 동안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측에 위안부 문제 사과를 촉구하는 수요집회를 이끌었고,

1992년 8월 제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 1993년 6월 오스트리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의 증언대에 섰다. 2016년에는 유엔인권이사회에 출석해 자신이 겪은 고통스러운 과거를 증언했다.

 

수요집회에 참가한 김복동 할머니, 사진 : 한국일보


김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수십 년간의 무거운 침묵을 깨고 피해사실을 증언한 최초 증언자 중 한 명이다. 특히, 자신의 사재를 털어 ‘나비기금’을 마련해 전 세계 전쟁피해 여성들을 도왔으며, 베트남 전 당시 한국군에 의해 피해를 입었던 베트남 여성들에게 대신 사과를 하기도 했다.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소녀상을 쓰다듬고 있는 김복동 할머니, 사진 : 중앙일보


김 할머니와 같이 피해사실을 증언하고 정부에 등록된 한국 위안부 피해자 240명 중 생존해 있는 이들 현재 23명에 불과하며, 이들의 평균 연령은 91세에 달한다.

일본은 자신들이 저지른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공식 사과를 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와 체결한 한일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은 10억 엔을 박근혜 정부에 주었고, 박근혜 정부는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께 금전적 보상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할머니들은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며 거부하였고, 문재인 정부에 들어 화해치유재단의 허가를 취소시켰다.

 

김복동 할머니를 병문안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한겨레신문


지금 누군가에게 사과하기를 망설인다면
이 순간은 언젠가 당신이 용서를 구해야 할 때로 기억될 것이다. 
- 토바 베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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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매거진 '이 영화를 다시 봐야 하는 이유'는 영화의 내용과 의미를 충실하게 전함으로써 영화를 보았거나 혹은 보지 못한 이들에게 '읽는 영화'로서의 재미를 선사함과 동시에 그 영화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주는 사회적 의미를 되짚어보는 데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영화는 허구적 상상력의 집약체이지만, 그 허구는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그 상상력도 인간의 심리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영화가 바라보고 있는 나름의 현실, 그리고 인간의 심리를 되짚어보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때로는 묵직한 울림을 주기도 하고, 흥미로운 통찰과 관점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영화를 읽으며, 사람과 세상을 알아가는 재미를 함께 누렸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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