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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우 Dec 08. 2023

썸머, 플렉스의 중심에서 NonFlex를 외치다

《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5주년을 축하하며

플렉스해버렸어

인간의 허영심이 인터넷을 타고 흐른다.

언제부터인지 달을 가리키면 달이 아니라 손가락에 낀 반지를 본다. 금반지인지, 다이아라도 박혔는지? 그리고 다이아가 박히면 '좋아요'를 눌러댄다. 좋아요를 받으면 플렉스~!


프로이드는 인간은 인정받으려 하는 욕망과 성적 욕망에 의해서 내적동기화되어 움직인다고 한다. 플렉스는 둘 중 무엇에 의해 움직이는 걸까? 


무하마드 빈 살만은 돈이 많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사우디는 장관만 되어도 전용기를 타고 다닌다고 하니 무하마드 빈 살만의 추정 재산인 2조 달러가 얼마마한 가치인지 가늠도 안 된다. 그리고 전용기가 몇 대나 있을지, 한 번에 얼마나 비싼 음식을 먹고, 얼마나 비싼 옷을 입을지, 상상도 안 된다. 그야말로 인간으로 태어난 플렉스 그 자체라 부를 만하다. 그런데 빈 살만은 케비어를 먹었다고 인스타에 플렉스하지 않는다.


나는 더는 예쁘 음식 사진에, 비싼 장비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지 않는다

처음에는 무심코 예쁘고 맛있어 보여서 눌렀지만, 내가 뭐하고 있는 건가 생각이 들었다. 무얼 좋아하는가? 무얼 닮고 싶은가? 생각해보니 내게는 애플민트가 올라간 달달한 딸기라떼가 아니라 누구와 무엇을 했느냐가 더 중요했다. 귀중했다. 더 소망했다.


... 이건 뭐야? 아니, 당신 누구야!!!

"오븐 문을 조금 열자 달큰한 열기가 훅 빠져나왔다. 재빨리 쿠키 상태를 확인하고 열기가 더 빠져나가지 않도록 서둘러 문을 닫았다. 쿠기는 괜찮았다. 무릎에 손을 지고 무심코 오른쪽을 바라보며 끙차 일어나려는 그때, 나는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곳에서 만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존재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나의 두려움을 여기 두고 간다》(하정 지음)


하정 작가는 덴마크에 갔다. 가서 잡초를 뽑고, 흙투성이가 되도록 감자를 골랐다. 그리고 오후가 되면 직접 간식을 만들어 먹거나, 씻고 곤히 잠이 들었다. 그렇게 약속된 몇 달간 무료로 덴마크의 한 공동체에서 일했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 예쁜 잔에 담긴 딸기라떼를 먹고, 근처에 있는 명품숍에 가서 귀걸이를 사는 플렉스는 없었다. 공동체 농장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일들을 그려낸다. 조금 슬픈 이야기도 있는 그렇다고 신파는 아니다. 조금 웃긴 이야기도 있는데, 웃기기보다 웃프기도 하다.


나는 평소에 경제경영이나 IT 트렌드, 역사, 자기계발, 마케팅 도서를 주로 읽는다. 에세이 도서는 손이 가지 않는다. 어쩌다 읽게 된 《나의 두려움을 여기 두고 간다》을 읽고 나서, 궁금해졌다. 이런 (그당시 내게는 별 것 아닌 것 같은 사소한) 이야기도 재미나게 읽을 수 있게 글을 쓰다니, 하정(책 속에서는 썸머라는 닉네임을 쓴다)이라는 작가는 대체 누구인가? 궁금해졌다. 하정 작가의 다른 책을 찾아봤다.


《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하정 지음)는 덴마크의 귀여운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할머니는 '한 평생 명품숍에서 쇼핑한 물건을 방 가득을 채웠다?'가 아니라, 한 평생 손수 만든 것들을 온집안에 채웠다. 귀금속 공예가로서 직접 귀금속을 만들었다. 그리고 할머니 집 창고에는 디자이너로 일한 할머니의 아버지 작품들이 한갇득 쌓여 있었다. 작품만이 아니라, 손떼 묻은 그릇과 직접 온가족이 작성한 크리스마스북까지.


따뜻해

이 책을 읽다 보니 이번에는 할머니한테 빠져들었다. 아 할머니의 가족에게인가... 나도 이런 가정을 갖고 싶어. 100년의 역사가 담긴 집이라니! 아 소소한데 왜 자꾸 끌려...


논-플렉스

플레스하지 않아도, 아니 않아서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것, 더 소중한 것, 더 갖고 싶은 것들의 일상과 나와 가족의 역사 이야기. 여운... 아쉽다. 더 보고 싶다. 할머니는 건강하시겠지!!!


작가 썸머(하정)는 '플렉스의 중심에서 논플렉스를 외쳤다.'

고가도 아니고 달콤하지도 않다.

딸기라떼 대신 녹차맛 글을 읽었다고 해야 할까?

여운이 채 여운이 가지시 않았는데

놀랍다.

반갑다.


5년만에 확장판이 나왔다.

이건 소문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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