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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야 Mar 25. 2023

춥고 삭막한, 그러나 뜨겁고 열정적인

'노잼도시' 마드리드에 대한 오해 풀기

#1


 세고비아에서 마드리드로 돌아왔다. 이제야 제대로 둘러보는 건가. 첫날 크게 데어서 이 도시엔 정을 주고 있지 않았는데...


 돌아온 마드리드는 일단 추웠다. 한국이었으면 이미 패딩을 꺼내 입었을 날씨였는데, 멋 부리려고 코트를 입었더니 어깨가 잔뜩 움츠러들었다. 패딩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거기다 겨울이라 해가 일찍 진다.

 마드리드에 돌아왔을 때 이미 해가 거의 진 상태였다. 날도 흐리고, 춥고, 어둡고. 


그란비아 거리

 또다시 마드리드의 밤이 시작됐다.

 그래도 이번엔 새로운 곳을 가봐야지. 마드리드에서 핫한 곳이라던 '그란비아 거리'로 갔다. 숙소에서 5분 정도 걸려 도착한 그곳엔 사람들이 엄청 몰려있어 정신이 없었다. 소매치기 조심하려고 가방을 꼭 붙잡고 시내를 구경했다.


  한국처럼 높은 빌딩은 없어도 비슷한 높이의 멋있게 생긴 건물들이 줄지어 가로수처럼 서있었다. 번쩍거리는 조명들과 자동차의 불빛, 화려한 광고판이 마드리드의 밤에 불을 켜고 있었다. 

천에 끈 달고 짝퉁 파는 잡상인들

 "삐익-"


 어디선가 달려오는 경찰과 허겁지겁 보따리를 들고 뛰어가는 길거리 상인들. 바닥에 하얀 천을 깔고 축구 유니폼이나 가방을 팔던 그 사람들은 국가에서 단속 대상이었나 보다.

 한두 번이 아닌 듯 천의 모서리에 끈을 달고 경찰이 달려오자 끈을 잡아당기고 뛰던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다 놀래 쳐다봤다. 잡았으려나, 궁금했지만 이미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다. 


 필요한 생필품을 사고 시내를 둘러보는데 눈에 띄는 가게들이 있었으니, 바로 축구 용품을 파는 곳이었다. 아무래도 마드리드에 왔으니 '레알 마드리드' 굿즈 판매점은 구경해야지. 마음에 들었던 후드집업이 있었지만 가격 때문에 다시 내려놓고 숙소로 돌아왔다. 




#2


 낮의 마드리드를 제대로 보는 날. 하늘이 파랗고 공기가 맑았다. 그리고 추웠다. 그래도 춥지 않았다. 낮에 본 마드리드는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다. 


 아침 일정은 프라도 미술관에 가는 것부터 시작했다. 카페에서 아침으로 빵과 음료를 사 먹고 미술관 가는 길. 처음 가보는 곳이지만 그새 여행이 너무나 익숙해진 걸까. 현지인들처럼 자연스러워졌다. 긴장이 조금씩 풀리고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티켓이 예뻐 이 사진만 남겼다^^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라는 프라도 미술관. 우리가 세운 계획은 미술관 가는 것까지만 있었다. 덕분에 아무 정보 없이 안을 둘러봤다. 어떤 걸 봐야 하고, 뭐가 유명한지 모른 채 그저 가이드와 함께 온사람들이 모여있으면 그 앞에 슬그머니 같이 서서 구경했다. 귀동냥을 하다 그마저도 재미가 없어져 사람 없는 곳으로 가서 둘러본다.

 뭘 보는 것보단, 친구와 둘만 있는 조용한 공간에서 '우와! 우리가 여기 전세 냈다~'며 소곤대고 지나가는 것이 더 즐거웠다. 즐거웠으면 됐지.


 생각보다 일찍 끝난 프라도 미술관 일정에 다음 목적지를 찾아봤다. 산 미구엘 시장과 마요르 광장. 어차피 저녁엔 마드리드 왕궁을 가기로 했기 때문에, 마드리드 시내의 중앙으로 다시 걸어갔다.

마드리드 시내 대충 보면 이런 느낌


마요르 광장 Plaza Mayor

 마드리드 처음 왔을 때의 마요르 광장과는 느낌이 달랐다. 분명 스산하고 적막했는데. 낮에 본 광장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 사람 각각이 뿜는 에너지의 양이 어마무시했다. 

 삼삼오오 모여 둘러보는 사람, 가이드를 하는 사람과 그 일행, 그 관광객들을 노리는 하이에나 같은 사람들.


 "오우~ 뷰티풀~" 하며 장미를 건네는 사람 - 장미를 받으면 돈을 내라고 한다. 

 자신과 함께 사진을 찍자는 광대나 전통복장을 입고 있는 사람 - 사진 찍고 돈을 내라고 한다. 

 그 외에 여기저기 숨어있는 소매치기들.


 이런 거 공부하느라 미술관에 무슨 작품이 있는지 공부할 시간이 없었걸 지도. 덕분에 미리 알고 가서 당하지 않았지만 계속 긴장을 해야 하니 조금만 둘러봐도 피곤해졌다. 

     

산 미구엘 시장 Mercado de San Miguel

 산 미구엘 시장은 마요르광장 바로 옆에 있었다. 처음엔 전통시장인 줄 알았는데, 어떤 네모난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최신식으로 깔끔하게 지어진 게 특이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저기에선 소매치기가 정말 빈번하겠다는 게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아쉽게도 안에서는 사진을 한 장도 찍지 않았다. 조금은 담대해져도 괜찮을 뻔했지만, 그럴 깜냥도 없을뿐더러 괜히 도전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눈으로 많이 담아두었다. 


 산 미구엘 시장에선 다양한 식재료뿐만 아니라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도 팔았다. 스페인 하면 빠질 수 없는 하몽부터 치즈, 타파스 등 먹을거리, 볼거리가 참 많았다. 물론 사거나 먹진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쯤은 먹어봐도 됐을 텐데, 왜 그리 짠순이처럼 돌아다녔나 모르겠다.




 마드리드 왕궁의 야경이 예쁘다길래 일부러 늦은 시간에 방문했다. 예약하고 가서 줄을 서지 않고 바로 들어갔다. 겨울 날씨답게 매섭게 파란 하늘에 하얀 왕궁이 더 밝아 보였다. 펄럭이는 스페인 국기와 함께 왕궁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우리도 앞에서 한참을 사진 찍고 안으로 들어갔다.

마드리드 왕궁 Palacio Real de Madrid

 들어가면 입구에서 우리를 맞이해 주는 휘장과 동상. 천장엔 그림이 있고, 주변으로 석조 계단과 기둥이 왕궁의 위엄함을 내뿜고 있었다.

마드리드 왕궁 내부

 왕궁의 방 안을 둘러보았다. 사진을 찍을 수 없어 눈으로 담아야 했다. 화려한 방, 예쁜 접시가 있는 방, 그림이 많은 방 등 천천히 둘러보며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방을 나오면 복도로 쭉 이어져있고,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가 있었다. 야경을 보기 위해 해질 때까지 벤치에서 미적거렸다. 시간이 참 안 갔다. 저 멀리 경비복을 입고 있는 분이 우리에게 온다. 마감시간이라면서 나가야 된단다. 갈 곳이 없는데 그렇게 쫓겨났다. 


 결국 근처 카페에 가서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렸다. 요 며칠간은 그렇게 빨리 지던데, 꼭 기다리는 날에는 해가 안 진다. 파랬던 하늘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때 왕궁에 갔다. 


 "뭐야, 이게."


 가로등이 켜진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는 마드리드 왕궁. 오히려 맞은편에 있던 '알무데나 대성당'이 더 근사했다. 덕분에 미련 없이 발을 돌려 숙소로 향했다.

(왼) 마드리드 왕궁 야경 / (오) 알무데나 대성당




#3


 다음 날 마드리드를 뜨는 날인데, 여행 첫날 봤던 레알 마드리드 후드집업이 계속 눈에 밟혔다. 가격 때문에 들었다 놨다 했지만 10만 원짜리가 아까워서 안 샀다간 후회할 것 같았다. 결국 친구는 숙소에 두고 혼자 그 가게로 갔다.


 겁이 많은 내가 마드리드 거리에 혼자 나가다니. 처음엔 무서웠지만 기분이 색달랐다. 델 솔 광장에선 주말이라 그런지 불쇼도 하고 버스킹도 했다. 이곳은 낮이나 밤이나 이렇게 열정적이구나. 어느새 광장에서 사람들과 같이 구경했다.


 마드리드의 첫인상이 좋지 않아 계속 색안경을 끼고 도시를 봤던 건가.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한껏 상기된 채 호응하는 사람들과 주변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추운 겨울인데도 테라스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밤을 즐기는 사람들. 반짝이는 가게 조명과 아기자기한 소품을 파는 기념품 샵까지. 


 머리를 세게 맞은 듯했다. 3일 동안 너무 갇힌 채로 여행했나 보다. 겁부터 먹고 움츠러든 게 아쉬웠다. 조금 더 용기를 냈으면 어땠을까. 


 겁쟁이라 옷만 후딱 사고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광장에서 한창 구경하고 기념품가게에서 마그넷과 엽서등도 쇼핑까지 하고 있었다. 이 광장에 처음 발 디뎠을 땐 하루라도 빨리 탈출하고 싶었는데, 이제와선 떠나려니 아쉬웠다. 


 춥고 삭막해 보였던 마드리드가 이젠 뜨겁고 열정적으로 다가왔다. 마드리드는 항상 이랬지만, 내 심경에 따라 다르게 느껴졌던 걸까. 모든 건 마음에 달려있구나. 앞으로도 모든 순간에 조금 더 좋은 모습을 보고, 조금 더 행복한 순간을 기억하려고 노력해야겠다. 


 '노잼도시'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마드리드. 볼 게 별로 없었을진 몰라도 마지막에 마음속을 다채롭게 채우고 간 도시여서 기억에 남는 곳. 마드리드에 대한 마지막의 느낌은 좋아서 다행이다.


 마드리드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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