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을 뵙고 나오며

by 걷고

설 명절에 장모님 댁에서 하룻밤 머물고 집에 돌아왔다. 명절 때마다 또 처갓집 들릴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장모님의 과한 사랑이다. 배가 부른데도 자꾸 먹을 것을 내오며 먹으라 하신다. 잠잘 때에는 춥지도 않은데 자꾸 이불을 가져다 덮어주신다. 정작 당신은 연로하셔서 거동하시기 불편하신데도 그 불편함을 감수하시면서까지 이렇게 하신다. 괜찮다고 말씀드려도 알겠다고 하시면서 또 하신다. 이제는 그냥 하시고 싶으신 대로 받아들인다. 문제는 아내가 장모님의 이런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모님께서 하지 않으시거나 나의 반응이 없을 때는 아내가 장모님과 같은 행동을 한다. 장모님과 아내의 마음은 너무 감사하고 잘 알고 있지만 가끔은 나의 결정권이 없다는 점이 불편할 때도 있어서 한편으로는 행복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편하다. 가족이란 이런 것인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장모님께 원하시는 TV 프로그램을 보시라고 리모컨을 전달해 드리는데 잘 안 들리시는지 아무런 말씀도 안 하신다. 왼쪽 귀가 잘 안 들리시나 보다. 집안에서 거동하시는데도 무척 불편해 보이신다. 이동을 돕는 기구가 집안에 있는데도 우리 앞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으시려고 한다. 당신의 그런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이기 싫어하시는 것 같다. 앉았다 일어나실 때는 오른 다리에 힘을 잔뜩 주시고 쿠션에 기대어 일어나신다. 도와드리려 해도 당신이 스스로 하시겠다고 한다. 반찬통을 들고 이동하시는 모습도 불편해 보여 대신 들어드리려고 해도 괜찮다고 하시며 당신이 하신다. 손에 반찬통을 들고 냉장고 문을 열어 무언가를 꺼내시려다 냉장고 안에 있는 다른 반찬통을 떨어뜨려 깨셨다. 다행스럽게 발에 떨어지지 않아서 다치시지는 않으셨다. 아내는 바닥을 정성스럽게 닦으며 혹시나 있을지 모를 유리 파편을 조심스럽게 치운다. 89세인 장모님의 모습과 거동을 보며 한평생의 삶이 참 무겁고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 모두 이 과정을 겪으며 살아가고 죽음을 맞이한다.


하룻밤 머물고 오늘 아침에 나오는데 장모님께서 아내에게 우리가 엊저녁에 집으로 돌아갔다면 혼자서 울으셨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먹먹하다. 큰 처남은 외국에 이민 갔고, 작은 처남 부부는 매주 일요일에 장모님을 찾아뵙는다. 아내도 매주 일요일에 찾아가 인사드리고 식사를 같이 한다. 하지만, 어느 자식도 노쇠한 장모님을 모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우리도 모시고는 싶지만 주변 상황이 허락하지 않아 모시지 못하고 있다. 죄송한 마음뿐이다. 죄송함을 알면서도 모시지 못하니 더욱 죄송할 뿐이다.

이제는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세대가 사라져 가고 있다. 부모는 부모의 삶을 살아가고 자식은 자식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가족이라는 연대감도 많이 약해졌다. 가족보다는 각자의 삶이 더욱 중요한 세대가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세월이 만들어 놓은 변화다. 옛것이 좋다고 얘기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지금의 것이 좋다고도 말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는 불편함이 있다. 장모님을 모시지 못한 것, 아이들의 삶의 방식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 또 우리의 미래와 노후에 대한 보이지 않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간다. 물론 자식의 삶을 존중하려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부모로서 바라는 점은 여전히 남아있다. 하지만 이제 이것조차 버리고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불안함, 불편함 속에도 편안함과 안정감이 있다. 가족은 또 우리네 삶은 이 둘이 서로 엉키고 섞여 있다. 이 둘 중 하나만 있다면 삶은 무채색이 될 것이지만, 다행스럽게 이 둘은 서로 섞여있다. 그래서 삶은 천연색이다. 다만 천연색이 무채색처럼 보일 때가 가끔 있을 뿐이다. 섞여 있는 이 둘 중 어떤 색을 보며 살아가느냐는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달려있다.


늘 그렇듯 ‘지금-여기’로 돌아온다. 우리네 삶은 ‘지금-여기’ 외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지금-여기’에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며 매 순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는 그 죽음을 충실하게 맞이하면 된다. 장모님을 뵙고 나의 미래 모습을 본다. 장모님의 노쇠함을 바라보며 나의 노쇠함을 본다. 장모님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보며 나의 것을 본다. 그리고 삶은 가볍지도 않고 무겁지고 않으며, 즐겁지도 않고 동시에 괴롭지도 않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기억난다. 맞는 말이다. 삶은 마치 물과 같다. 아무 맛이 없다. 그 물의 참맛을 알아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욕심만 버려도 삶은 훨씬 다 가볍고 편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