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 않은 삶

어른 김장하

by 걷고

영화 ‘어른 김장하’를 봤다. 기자가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다. 60년간 한약방을 운영하면서 주변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꺼이 기부를 하고, 사회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평생 살아온 어른이다. 고등학교를 설립한 이사장이며 동시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며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어른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어른을 ‘닮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선생님의 삶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압박과 회유도 있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선생님은 ‘부끄럽지 않은 삶’이라고 했다. 19세에 한약방을 개원한 후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돈을 많이 벌었지만, 아프고 괴로운 사람들에게 받은 돈을 허투루 쓸 수 없어서 사회에 환원하며 살았다고 한다. 사모님께서는 두 손 두 발 모두 들었다고 한다.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


과연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누구를 돕는 선행을 베풀지는 못했더라도 자신에게 떳떳하고 사회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왔는가? 이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아니다.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다.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일도 겪었고, 개인적으로도 부끄러운 삶을 살아왔다. 지금도 여전히 개인적으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는 없지만, 매일 매 순간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 사회적으로 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주관적인 판단일 뿐이다. 나의 삶은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께서는 수많은 고교생과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수여하셨다. 영화에 나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선생님에 대한 감사함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전체 수여자 중 일부분에 불과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장학금을 받았지만 특별한 인물이 못 되어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 말이 내게 걸렸다. 나 역시 대학 시절에 ‘효림장학재단’에서 장학금을 받았다. 1977년 국제약품에서 이 장학재단을 설립했고, 초창기인 1978년에 우리 대학 최초로 이 장학금을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 한 학기 학비가 25만 원 정도였는데 40만 원을 받았다. 그런데 특별한 인물이 못 되어 죄송하다면서 영화 속에 나오지 않은 사람이, 바로 나 자신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오지도 못했고, 장학금을 받았음에도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성장하지도 못해서일까?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 한 구석에 뭔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미안함도 있었다. 장학재단과 나 자신, 나를 키워준 가족과 지인과 사회에 미안했다. 이 감정을 ‘미안함’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그러나 사는 동안, 어리석었지만 나름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다. 원하는 성공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쉬지 않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기는 했다. 그러나 대부분 과거의 업에서 벗어나려는 투쟁으로 현재를 잘 살아내지 못했다. 현실을 창조적으로 살아갈 만한 여력을 모두 소모해 버렸던 것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나를 찾으며 나의 삶을 살아왔다.


이제야 겨우 삶의 원리와 살아가는 방법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나의 길을 어느 정도 찾았고, 그 길을 가고 있다. 지금은 걷기학교 교장과 상담심리사로 나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감히 김선생님을 따라갈 엄두를 낼 수도 없지만, 어떤 사람의 삶을 따라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닮고 싶은 삶을 살아간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취할 것을 취해서 나의 삶에 접목시키면 된다.


김선생님은 “사람은 칭찬하지도 말고 비난하지도 않으면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을 나 자신에게도 해 주고 싶다. 비록 부끄럽게 살아왔고 특별한 인재가 되지 않았다고 자신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 또한 좋은 일을 했던 적도 있었겠지만 굳이 칭찬할 이유도 없다. 모두 이미 지난 과거다. 지금 주어진 삶을 살아가면 된다. 잘한다고 자만하지 말고 실수하더라고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살아가면 된다. 막평타인 부긍자기(莫評他人 不矜自己) ‘남의 허물을 평하지 말고 자기를 드러내어 자랑하지 말라’는 어느 선사의 말씀이다. ‘어른 김장하’를 보며 떠오른 글귀다. 동시에 나 스스로 평생 마음에 안고 살아갈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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