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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사람이고, 그래서 사람이다

by 걷고

출발하는 날부터 내내 마음 한편이 뭔가 불편하다. 아마 먼 길을 떠난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일 수도 있고, 과연 ABC까지 잘 다녀올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도 있는 거 같다. 특히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고산증이다. 물론 고상증 약을 들고 가기는 하지만 어떤 증상이 나타날지, 또는 그로 인해 완보하지 못하지는 않을까라는 걱정도 있는 거 같다. 그 불편함과 두려움 또는 불안감이 늘 내재하고 있었다.

그런 마음 때문인지 사소한 일도 또는 사소한 사람들의 언행도 가끔 불편하게 느껴지고, 그 불편감은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다. 그 마음을 살펴보며 걸었다. 겉으로 드러나게 표현하지 않고, 그냥 그 마음을 바라보며 걸었다. 그 불편감은 결국 외부 상황이나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고, 내 안에 내재된 또는 이미 남아있는 불안감이 외부 자극을 만나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ABC에 도착하기까지 단 이틀만 남겨두고 있다. 시누와에서 데우랄리까지 가는 하루, 그리고 데우랄리에서 MBC를 거쳐 ABC에 도착하는 하루. 이 이틀간 마음에 남아있는 불편함을 해소하고 싶었다. 물론 그 이전에 3일 간 걸으며 이미 마음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지만, 그럼에도 뭔가 아쉬운 점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이틀간 발의 감각이나 소리에 집중하며 걷기로 결심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ABC 트레킹은 단순한 유람이 아니다. 힘든 과정을 통해 자신을 절차탁마하는 중요한 기회다. 더군다나 히말라야의 정기를 느끼고, 많은 산 사람들과 트레커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신으로 태어나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첫날 오전 내내 발의 감각에 집중하며 걸었다. 때로는 허벅지 근육의 감각도 느끼고, 종아리 부분의 감각도 느끼며 걸었다. 감각에 집중하며 걸으니 생각이 떨어져 나간다. 오후부터는 소리에 집중하며 걸었다. 특히 비가 오며 산에 만들어진 폭포수의 모습과 소리, 계곡에 물이 불어 큰 소리를 내며 흐르는 계곡물소리는 청각 명상의 좋은 도구가 되었다.

그렇게 걷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다. “사람은 사람이다.”라는 매우 단순한 사실이다. 이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없고, 나쁜 사람도 없다. 다만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이 둘이 구별되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구별될 뿐이다. 오늘 좋은 사람이 내일은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의 상황도 발생한다. 사회의 틀은 사회를 통제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틀이다. 자신의 틀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자신만의 틀이다. 이 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다. 사회의 권력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또는 더 많은 권력과 부를 축적하기 위해 틀을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 그것을 관습, 또는 문화라고 칭한다. 개인의 틀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틀이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해를 끼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 된다. 따라서 이해득실에 따라 좋은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모든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자신의 이익과 편리를 위해 자신이 틀을 만들고, 그 틀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고 평가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들이 놓치는 중요한 점이 있다. 다른 사람들 역시 자신을 평가하고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을. 또한 다른 사람들 역시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 판단한다는 사실을.

인간은 또 모든 존재는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생존의 위협에서 벗어나면 비로소 주변을 살필 여유가 생긴다. 그때 그 살핌을 봉사라는 틀로 만들어 사회와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미친다. 하지만 봉사라는 것 역시 자기만족일 뿐이다. 봉사를 통해 주변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은 진심이지만, 그 진심 이면에는 도우며 느끼는 행복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 또는 실현하기 위해 봉사를 한다. 그럼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기심과 이타심의 차이는 무엇일까?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은 작은 이기심이고, 자신 외의 존재들을 생각하는 큰 이기심은 이타심이 된다. 결국 이 둘은 하나다.


우리 모두 도토리 키 재기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사람의 모습이 어리석게 보일 때도 있고, 때로는 위대하게 보일 때도 있다. 근데 한 사람에 대한 이런 관점이 자신의 이익과 결부되면서 반대로 보이기도 한다. 어리석은 모습이 현명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위대한 모습이 치졸하게 보이기도 한다. 어리석음과 위대함, 또는 현명함과 치졸함 모두 허상에 불과하다. 자신의 이기심이 만들어 낸 허상일 뿐이다. 근데 우리는 실상은 보지 못하고 허상을 보며 울고 웃으며 난리법석을 떤다. 그래서 사람이고, 그러니 사람이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며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그들도 나의 다양한 면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고마워하고, 불만을 표현하고, 화를 내고, 웃으며 걸었다. 한 사람에 대한 감정의 변화도 있었을 것이고,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느낀 다양한 감정도 있었을 것이다. 반대로 그들 역시 나의 모습을 보며 때로는 좋아하고, 때로는 불편해하고, 때로는 화를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사람이고, 그래서 사람이다.


그래!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런 모습을 지닌 사람들이다. 인간적이지 않은가? 화를 내고, 웃고, 울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이 사람 아닌가? ‘나’나 ‘너’나 별반 다르지 않다. 좋은 사람도 없고, 나쁜 사람도 없다. 다만 나의 이기심이나 욕심 또는 나의 마음 상황에 따라 같은 사람도 좋아 보일 때도 있고, 나빠 보일 때도 있다. 그러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인정하며 살아가자. 상대방 역시 나를 있는 그대로 대하면 좋을 거 같다. 영어 표현 중에 “For all his(her) faults, I love him(her) more."라는 말이 있다. 그의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더 사랑한다는 의미다. 좋은 면만 사랑한다면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사람의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존중하는 것이다. 그러니 따지지 말고 그냥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고 살아가자. 그러니 사람이고, 그래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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