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물보다 진하다. 하지만 물은 피를 용해시켜 이 둘이 섞인 다른 물을 만든다. 그리고 그 물은 세월 따라 흐른다. 흐름이 있는 물은 살아있는 물이고, 멈춘 물은 죽은 물이다.” 영화를 보고 혼자 내린 한 줄 평이다. 온 생애를 가부끼에 바친 어느 국보의 인생을 담은 영화다. 가부끼 명문가의 아들인 ‘슌스케’와 야쿠자의 아들인 ‘키쿠오’의 경쟁과 뜨거운 우정, 그리고 가부끼로 향한 이 둘의 열정이 눈물겹다. 최고의 가부끼 연기자가 되기 위해 명문가의 혈통이 필요한 ‘키쿠오’는 ‘슌스케’의 피를 마시고 싶다고도 하고, 악마와 거래를 하기도 한다. 가문과 혈통을 중요시하는 가부끼 문화에서 이방인인 ‘키쿠오’가 살아갈 길은 오직 하나, 모든 것을 가부끼에 바치고 야쿠자의 아들인 ‘키쿠오’는 사라져야만 한다.
가부끼는 17세기부터 시작된 일본의 전통 연극으로, 노래, 춤, 연기가 섞인 에도 시대의 대표적 유흥거리다. 2008년에 유네스코 지정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일본 문화다. 문화는 한 나라의 국격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국격을 유지하는 것은 문화를 잇는 장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국보가 되기 위한 이 둘은 가부끼 외에 다른 것에는 전혀 관심도 없다. 사랑도, 권력도, 명예도 필요 없다. 다만 가부끼 국보가 되기 위한 방편으로 도움을 받거나 잠시 빌려다 쓰는 것일 뿐. ‘슌스케’와 ‘키쿠오’는 그런 사람들이다. 때로는 방황하고, 때로는 가부끼 세계를 떠나지만 늘 그 주변에서 활동하며 가부끼 세계를 잊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들에게 가부끼가 없는 세상은 죽음이고, 그 물은 고여서 썩어간다. 그들에게 개인 ‘슌스케’와 ‘키쿠오’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부끼를 연기할 때의 그 모습만이 그들의 삶이고 인생이다. 여자 분장을 하는 가부끼 연기자의 모습이 바로 그들의 참모습이고 삶이다.
문화는 이런 사람들 덕분에 연결되고 후대로 전달된다. 장인, 명인, 국보 등 뭐라고 칭하든 이들의 인생은 개인의 삶이 아닌 자신이 하는 일에 몰입해서 살아가는 삶이다. 그들이 자신을 버렸기에 문화의 물은 흐르고, 그 물은 피보다 진하고, 물과 피가 서로 구별하거나 따지지 않고 함께 흘러간다. 그들에게 정체성이란 자신의 얼굴이나 이름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역할이다. 그 정체성을 찾고 유지하기 위해 평생 바쳐 살아가고, 후계자를 찾아 명맥을 이어준 후 죽음을 맞이한다. 문화는 이렇게 전달되어 살아남아 흘러간다. 이 명맥이 끊기는 날에 그 문화는 죽는다. 한 문화의 사라짐은 역사의 한 장면이 싹둑 잘려나가는 것과 같다. 억지로 이어 붙여도 여전히 그 어색함은 남아있게 된다.
이 영화의 감독은 제일교포 3세인 이상일이다. 이 영화는 전통 가부끼에 대한 그의 열정을 표현한 작품이지만, 어쩌면 그의 인생이 투영된 작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은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제일교포 3세다. 그가 그간 성장해 오면서 많은 설움과 슬픔과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그 정체성을 찾기 위해 전력을 쏟아 살아왔을 것이고, 그 과정을 가부끼를 통해 표현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는 한국인 피에 일본인 물을 섞어 그 물이 흐르게 만든 사람이다. 그는 ‘키쿠오’였지만, 그 안에 ‘슌스케’를 품어 '키쿠오'도 아니고 '슌스케'도 아닌 이 둘이 섞인 사람을 만든 것이 아닐까? 이 영화를 통해 그는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을 것이다.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이 둘이 잘 섞여 있는 자신을 찾았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며 나의 삶을 돌아본다.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인생 2막에서는 살아오면서 만든 자신의 정체성을 부수고 새로운 자신으로 태어나야 한다고 늘 주장해 왔다. 과거의 자신과의 이별을 의미하고, 새로운 자신으로 태어나야 한다는 생각에서 한 말이다. 나는 ‘슌스케’인가 아니면 ‘키쿠오’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슌스케’는 본성, 천성, 타고난 재능, 바뀔 수 없는 선천적인 운명 또는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 ‘키쿠오’는 노력, 의지, 뭔가를 이루고 싶어 하는 열정 등으로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 때로는 천성이 열정을 이길 때도 있고, 때로는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 영화룰 본 후에는 천성과 열정을 구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라는 주제를 안고 살아가느냐, 아니면 이런 의문이나 생각 없이 살아가느냐의 차이만 남는다.
이 영화는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는 어떤 삶을 살아갈래?” 나의 답은 이미 나와있다. “그 질문은 내게 무의미한 질문이다. 이미 나는 나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천성이나 열정, 또는 피나 물, 이 둘이 섞이거나 따로 흐르거나 상관없이 나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나에게 지금처럼 살아가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렇다. 나는 방황을 끝내고 나의 삶의 길에 들어섰다. 수행으로 얘기한다면 가장 초기 단계인 예류과에 들어와 있다. 일단 예류과에 들어온 이상, 설사 부초처럼 떠다니더라도 그 물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이미 나는 흐름 속에 들어와 있다. 그것은 바로 '걷기'다. 이것이 나의 길이고, 나의 ‘슌스케’와 ‘키쿠오’이며, 나의 삶이다.
추운 겨울에 마음속에 자신만의 뜨거운 입김을 불어넣어 열정적인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