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참 말하기도 듣기도 좋은 말이다. 근데 사랑이 너무 흔한 단어가 되어 버렸다. 예전에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 단어가 주는 무게감과 책임감, 쑥스러움과 신중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의 의미가 무엇일까? 사전적 정의는 ‘다른 사람을 아끼고 위하며 소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마음을 베푸는 일’이다. 근데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자식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교육시키고 만들어 나가는 부모도 있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욕심이다. 상대방이 원하는 사랑이나 삶의 방식이 아닌 자신이 하고 싶은 방식의 사랑을 하며,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불평불만을 하거나 다투기도 한다.
오랜 기간 살아왔어도, 또 오랜 기간 만나왔어도 사람들은 나와 같지 않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다면 이는 공장에서 만들어낸 직사각형 벽돌처럼 지루하고 재미없을 것이다. 각자 다른 모습을 지니고 살아가기에 살아갈 맛도 나고, 삶의 희로애락도 펼쳐진다. 이 자체가 고통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행복이 되기도 한다. 날씨나 기온이 365일 똑같다면 금방 지치거나 무료해지지 않을까?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의 방식이 반드시 옳지 않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고, 주어진 사람과 환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이 삶의 지혜가 아닐까?
아내와 40년 이상을 같이 살고 있다. 특별한 일 없이 무탈하게 긴 세월을 함께 살아왔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만 가득하다. 늙어가며 점점 더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언젠가부터 우리 부부는 말다툼을 하지 않는다. 그동안 다툼의 원인은 아마 대부분 나 때문일 것이다.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이상하게 나의 언행을 아내는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 과정을 통해 스스로 터득한 삶의 지혜가 한 가지 있다. 아내가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고, 아내가 하는 일은 무조건 지지하는 것이다. 참 쉬운 일인데 이 쉬운 일을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 그리고 이 쉬운 진리를 깨닫는 데 40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다. 참 어리석은 중생이다.
사랑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베푸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상황과 시기적절하게 베푸는 것이 사랑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를 수도 있다. 그래서 상대방이 싫어하거나 불편해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된다. 무척 소극적인 사랑일 수도 있겠지만, 더 이상 좋은 사랑 표현법도 없어 보인다. 이 나이에 들어선 나로서는. 나 자신에게도 내가 싫어하는 언행을 하지 않는 것도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물새가 떼를 지어 이동하는 그 모습과 물결이 무척 아름답다. 같은 방향으로 나가는데 서로에게 걸림이 되지 않는다. 물결이 서로 엉키지만, 물새들의 이동을 방해하지도 않는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향해 가면서 서로에게 걸림이 되지 않는 것이 사랑 아닐까? 이제는 ‘사랑’이라는 단어보다 ‘싫어하는 언행 안 하기’를 사용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