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과의 동거

by 걷고

네 분의 부모님 중 생존해 계신 분은 장모님 한 분뿐이다. 댁에서 혼자 지내시는 모습이 늘 마음에 걸렸고, 자식으로서 죄송한 마음도 컸다. 홀로 되신 후 씩씩하게 살아오신 분이다. 두 번의 암 투병도 잘 이겨 내셨고, 홀로 밤을 지새우며 성서를 두 번이나 필사하여 성당에 제출하기도 하셨다. 넘치는 시간이 혹시나 당신을 매몰시킬까 두려워, 작은 구슬을 이어 붙여서 그림을 만드는 밤샘 작업도 하셨다. 그 그림을 우리 집과 처남 집에 나눠주며 우리를 안심시켜 주셨다. 지역 노인 회장으로 10여 년간 지내며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베풀며 살아오셨다. 작년에 노인 회장직을 내려놓으며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가 싶었는데, 낙상하시며 갑자기 상황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장모님이 얼마 전 혼자 계실 때 의자에서 내려오다 넘어져서 거동을 못하게 되셨다. 핸드폰이 있는 곳까지 힘든 몸을 이끌고 30분 이상 이동한 후, 어머님을 잘 따르고 도와주는 지인에게 전화로 도움을 요청하셨다. 집에 도착한 지인에게 닫힌 현관문을 열어주기 위해 또다시 30분 이상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지인은 곧바로 119에 신고해서 구조대의 도움을 받아 병원으로 이동했다. 장모님은 이동하면서도 자식들에게 연락하지 말라고 하셨다고 한다. 부모님은 늘 자식 걱정을 하면서도, 정작 당신 때문에 자식들이 걱정하는 것은 불편해하신다.

고관절 부위 수술 상태를 확인한 후 병원에서 소개해 주는 요양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며칠을 잘 지내면 회복이 빠를 수 있었는데, 혼자 화장실을 가기 위해 움직이다가 침대에서 다시 넘어지셨다. 게다가 입원 중에도 답답해하며 침대에서 내려오려는 시도 때문에, 간호사나 가족들을 놀라게 만드는 상황도 있었다. 다시 넘어지신 후, 병원에서는 보호자에게 24시간 어머님 곁을 떠나지 말라고 했다. 처남 부부와 우리 부부, 네 명이 돌아가며 24시간 어머님 곁을 지켰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 미리 알아본 요양 병원으로 모셨는데, 병원의 환경이 열악하다며 아내와 처남 모두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우리 집으로 모시고 오는 것이었다.

수술 후 병원에 머무는 며칠 사이에 장모님의 인지기능이 많이 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때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말씀도 하셨고,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요양 병원으로 모신 후 가끔 찾아뵙는 것은 어머님을 병원에 방치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24시간 개인 간병인을 고용하는 비용만 월 450만 원, 게다가 물리치료와 인지치료 등 형식적인 프로그램이 병원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어머님께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양사는 화장실 가실 때 부축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할 일도 없어 보였다. 또한 어머님의 인지기능을 개선하기 위해 말 상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한 결과, 하루 만에 요양 병원에서 퇴원 수속을 마친 후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왔다.

과연 우리 부부가 잘 모실 수 있을지, 혹시나 우리 집에 머무시는 동안에 무슨 사고가 나는 건 아닌지, 많은 걱정을 안고 장모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거실에 있는 소파 침대에 등창 방지용 매트를 깔았다. 휠체어 바퀴의 공압도 채워서 집안에 놓아두었다. 재활 운동을 위해 보행 보조기인 워커를 구매했다. 어머님은 하루에 몇 번씩 워커를 이용해서 재활 운동을 하신다. 그래봤자 10분 남짓이다. 힘들어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하신다. 혹시나 밤에 우리를 깨우지 않으려 혼자 일어나다 또다시 넘어지실까 걱정이 되어 소파 침대 앞으로 안마의자를 이동해서 가구 배치를 했다. 그리고 밤에 화장실 가고 싶을 때 우리를 부르라고 부탁 말씀을 드렸다. 아내는 소파 침대 앞에서 자고, 나는 안방에서 잔다. 집안은 이런저런 물건으로 정신없다. 며칠 지나면 조금씩 정리가 되고, 분위기도 안정될 것이다.


일단 1월 말까지 우리 집에 모시기로 했다. 그 이후에는 어머님 상황을 봐서 다시 결정하면 된다. 아내와 나는 개인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아내 혼자 어머님 거동을 돕기에는 힘에 부쳐 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대부분 할 일은 아내 몫이지만, 힘을 쓰는 일은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 가실 때, 집안에서 워커를 이용해 운동하실 때, 운동을 마치고 의자나 소파에 앉으실 때 도와드리는 일이 나의 몫이다. 워커를 이용해 조금씩 움직이는 어머님을 보면 안쓰러운 동시에 조금 안심이 된다. 빨리 회복해서 예전처럼 씩씩하게 지내시고, 당신의 몸을 당신 스스로 움직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장모님, 아내, 나, 세 명이 식탁 의자에 앉았다. 혼자 또는 둘이 먹다가 세 명이 모이니 충만한 느낌이 든다. 빵에 땅콩 잼을 발라 드시고 싶다고 해서 대신 발라서 드렸더니 맛있게 드신다. 화장실을 같이 쓰는 것이 민망하고 불편하다고 하셔서 가족끼리는 그렇게 지내는 것이라고 안심시켜 드렸다. 인지기능이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주변 상황을 인식하고 여러 가지 신경을 쓰시는 것 같다. 인지기능이 조금씩 개선되는 모습을 보니 다행이다. 드라이브 갈 겸, 딸네 집 근처에서 함께 점심 식사를 하려고 했는데, 식당의 화장실 상황이 걱정되어 포기했다. 대신 집으로 불렀다. 아이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면 인지기능 개선에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세 명이 머무는 집안에 딸네 가족이 오면서 갑자기 일곱 식구가 모였다. 가족이 모두 모이니 북적대며 사람 사는 느낌이 난다. 딸네 가족은 오는 길에 가락시장에 들러 장모님이 좋아하시는 갈치를 사 왔다. 장모님 식성에 맞는 음식을 준비해 온 마음이 고맙다.


우리 집에 오신 후 장모님은 잠을 많이 주무신다. 병원이나 요양 병원에 머물면서 많이 불안하고 힘드셨나 보다. 우리 집에 오니 긴장이 풀리고 마음도 편해져서 잘 주무시는 것 같다. 장모님과의 동거가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겠지만, 잘 모시기 위해서는 나와 아내의 건강도 잘 챙겨야 한다. 아침 식사 후 나는 뒷산에 올라 두 시간 정도 등산을 하고 왔다. 아내도 운동하거나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에는 내가 장모님 곁을 지키면 된다. 걱정이 앞섰지만, 지난 이틀 동안 동거해 보니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가족이다. 편안함도, 불편함도, 행복도, 불행도 함께 안고 살아가는 것이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