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저녁 식사 후 접시를 왼손으로 들어서 옮기려 하는데 접시가 심하게 떨렸다. 접시가 떨리는 것이 아니고 엄지 손가락이 떨고 있었다. 오른손으로 옮겨 들으니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다시 왼손으로 들으니 떨림이 시작되었다. 몇 번 시도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아내가 먼저 병원에 가자고 했다. 하루 이틀 지나면 괜찮을 거 같다고 얘기했지만, 나 역시 불안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손을 쥐면 떨리고 손을 펴면 괜찮다. 특히 엄지 손가락 부분 떨림이 심하다.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로 서둘러 갔다. 비가 많이 내려서 택시를 불러도 오는 데 시간이 걸리고 차를 몰고 가자니 혹시나 사고가 날 거 같다는 불안감에 버스를 탔다. 아내 발걸음이 나보다 빠르다. 불안감에 또 나의 불안감을 진정시키려고 내 손을 잡아주는데 손이 따뜻하다. 그 온기가 지금도 느껴진다. 두 개의 우산을 쓰고 가는데 우산 사이로 빗방울이 떨어져 손을 놓고 각자 걷는다. 오랜만에 잡아 본 아내의 손이 따뜻하고, 손을 놓는 순간 갑자기 허전해진다.
응급실에 들어가니 중증 분류실에서 의사가 나의 상황을 들은 후 대기실에서 대기하라고 한다. 한참 후에 침대를 지정받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후 침대에 누우니 갑자기 환자가 되었다. 아내는 침대 옆 보호자 의자에 앉아 불안감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도 하고 휴대전화로 상황을 장모님에게 보고하고 있다. 조금 후에 의사가 와서 자세한 증상을 물어본 후 검사를 해야 하니 기다리라고 한다. 간호사가 와서 피검사를 한다며 피를 뽑고, 소변 검사를 위해 소변을 받아오라고 한다. 수혈한 튜브에 식염수를 꽂는다. 탈수를 막기 위해서란다. 이해는 되지 않지만 따를 수밖에.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 긴 줄이 연결된 식염수 비닐백 주사 바늘을 팔에 꼽은 상태로 심전도 검사를 받았다. 한참 후에 CT 촬영을 한다고 침대에 누운 채 실려갔고, 다시 한참 후에 MRI를 찍는다고 실려갔다.
병원에 들어간 후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은 숨 쉬는 것 밖에 없다. 나는 하나의 피실험체가 된 느낌이다.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촬영 기사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CT는 뇌출혈을, MRI는 뇌경색을 확인하는 검사라고 한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렀다. 아내는 검사가 모두 끝났는데 아무도 오지 않는다고 조급증을 낸다. 원래 여유롭고 참을성 많은 사람인데 큰일이 생길 거 같다는 불안감에 마음이 급해진 느낌이다. 좀 기다리자고 얘기하며 호흡에 집중한다. 내가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은 숨쉬기 밖에 없으니 자연스럽게 호흡에 집중할 수밖에.
침대에 누워, 검사받기 위해 이동하며, 검사를 받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개미처럼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앞 침대의 환자가 나간 후 바로 청소원이 들어와 침대보를 벗긴 후 물티슈로 꼼꼼하게 침대부터 침대가 있는 공간 전체를 청소한다. 청소원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니 마음이 무겁다. 간호사의 바쁜 언행, 검사원들의 바쁜 움직임, 의사들의 바쁜 발걸음을 보고 세상이 이들처럼 성실한 일꾼들에 의해 정상적으로 가동한다는 사실에 고마움을 느낀다. 이들은 모두 생명을 살리는 사람들이다. 덕분에 우리는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 우리의 건강을 위해 이들의 일상은 고단하다. 누군가의 노력과 희생 덕분에 누군가는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또한 우리들 역시 열심히 살기에 돈을 내고 병원에 와서 진찰과 치료를 받고 있다. 우리의 노력 덕분에 병원 근무자 역시 살아갈 수 있다. 서로 연결된 존재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검사 후 의사가 와서 특별한 이상이 없으나 만일을 위해 신경과에 예약을 해 줄 테니 의사를 만나 검사 결과를 듣고 증상에 대해 상의를 하라고 한다. 다음 날 오전 9시 이전에 보호자인 아내 휴대전화로 신경과 예약 문자가 왔다. 시스템이 일하고 있고, 우리는 시스템의 지시대로 움직이고 있다. 병원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나오는 전 과정이 시스템에 의해 운영된다. 침대에 눕자마자 침대 위 작은 모니터에 나이, 성별, 의사의 이름이 저절로 나타난다. 앞 침대의 환자가 나가자 모니터의 이름은 저절로 사라진다. 편안하지만, 다소 두렵기도 하다. 시스템에서 우리는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집에 돌아오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일단 뇌 문제는 아닌 거 같다. 갑자기 큰 일을 치른 후 찾아온 고요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떠오른 생각이 있다. 참 인생 별거 없다. 활발하게 움직였던 사람이 갑자기 환자가 되었다. 아무 문제도 없는 것을 문제 삼아 불안감에 떨었다. 나의 문제인데 아내와 장모님, 그리고 가까운 지인이 함께 걱정한다. 연결된 존재를 다시 한번 실감한다. 병원에 들어가는 순간 그 이전의 모든 잡념과 걱정거리, 삶의 사소한 문제 등은 저절로 사라진다. 하나의 문제 아닌 큰 문제가 다른 사소한 모든 것을 녹여버린다. 병원을 나오며 남파랑길을 동료들과 함께 걷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이 떠오른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는 말은 삶의 진리다.
문제가 아니었지만,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였다. 아무 일도 아닌 것을 미리 걱정해서 큰 일 생긴 냥 응급실로 달려간 것이 문제였다. 불안감이 만든 에피소드였다. 없는 것을 있게 만드는 마음의 장난이다. 큰일이 생기거나 죽을 수 있으니 병원에 빨리 가라는 뇌의 장난에 속은 것이다. 허상에 속았다. 나이 들어 몸이 조금씩 약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무상이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 행복을 좇아 평생 헤매지만 행복은 없다. 삶 자체는 괴로움이다. 모든 것은 변하지만 이 변하는 것을 변하지 않게 애쓰려 하니 괴로움이 발생한다. 이 사실만 알아도 행복이라는 것을 찾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행복도 변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순간도 괴롭다. 그냥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면 된다. 상황이나 환경이 행복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행복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족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단 한순간도 우리를 떠나지 않고 늘 존재한다. 행복이 본래 성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수행을 하면 저절로 본래 성품이 지닌 희열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이 행복은 감각적 욕망이나 세속적 욕망을 통한 행복이 아니고, 이런 욕망에서 해방된 행복이다. 결국 욕망의 추구가 괴로움이고, 이들로부터의 해방이 행복이다. 몸이 아프지 ‘나’는 아프지 않다. 하지만 신체의 통증을 나와 동일시하며 내가 아프다고 착각하고 신체의 아픔으로 심리적 고통을 만들어낸다. ‘나’는 ‘나’가 아닌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라는 존재는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이 몸과 마음을 ‘나’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무아다.
병원 다녀온 다음 날 오후에 장모님과 아내, 나 세 명이 식탁에 둘러앉아 먹거리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약 70년 정도 살아왔으니 뇌 검사 한번 한 것은 잘한 일이라며 서로를 위로한다. 그 순간 행복이 참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부추전 만들어 막걸리 한잔 마시며 가족끼리 오손도손 얘기를 나누는 순간이 행복이다. 아침에 일어나 좌복에 앉아 명상을 한다. 평상시 명상을 방해하던 수많은 잡념들이 저절로 많이 떨어져 나갔다. 뇌에 이상이 없다는 것보다 훨씬 더 기쁜 일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큰 일인 냥 착각한 한 가지 큰 일은 수많은 작은 일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우리가 느끼는 모든 상황, 환경, 감정, 느낌, 인식은 모두 허상이고 물거품이다. 속지 않으면 된다.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하면 된다. 뇌의 장난에 속아 난리를 쳤고, 그 덕분에 허상을 바라볼 수 있는 ‘응작여시관’의 힘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에피소드에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