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나로 태어나는 길, 산티아고"
https://www.youtube.com/watch?v=7UDxu2Ga3Ds&t=4s
2017년도에 환갑을 맞이하여 산티아고를 다녀왔습니다. 약 10여 년 전에 한 후배가 제게 산티아고 여행 책 한 권 선물하였고, 그 책을 통해서 그런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 길을 걷겠다는 생각 없이, 그냥 한 권의 책으로만 생각하고 읽었습니다. 그 책에 이어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를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처음으로 걷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저자처럼 저도 걷기를 통해 심리적, 신체적,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걷기 동호회를 검색하여 그중 한 곳에 가입을 하였습니다. 동호회원들이 가입 이유를 물었을 때 저는 무심코 ‘산티아고 가려고요’라고 말을 했고, 그 말이 씨가 되어 다녀오게 된 것 같습니다.
제가 왜 산티아고를 가고 싶은지 그 이유를 글로 정리했던 적이 있습니다. 지난 60년 삶의 중간 정산과 준비하고 있는 인생 2막의 방향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또한 살아오면서 받은 상처 치유와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에게 참회와 용서를 빌고 싶었습니다.
총 45일간 다녀왔습니다. 생쟝에서 꼼뽀스뗄라 성당까지 800km, 성당에서 피니스테라까지 90km, 피니스테레에서 묵시아까지 30km, 총 920km를 37일간 두 발로 걸었습니다. 많은 순례자들이 이용하는 donkey service라는 배낭 운반 서비스를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온전히 제 몸으로 10kg의 배낭을 메고 걸었습니다. 메세타 평원의 지루한 길도 점프 한 번 하지 않고 묵묵히 걸었습니다. 알베르게 숙소를 잡지 못해 40km 이상 걸었던 날도 몇 번 있었고, 억수 같은 비로 흠뻑 젖어 추위에 떨며 걸은 적도 있었습니다. 꼼뽀스텔라 성당에서 순례를 마치고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피니스테레와 묵시아까지는 버스나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관광차 방문을 하지만, 저는 그 길 역시 배낭을 짊어지고 두 발로 걸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야만 한다는 일종의 강박적 사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덕분에 오히려 모든 일정을 마친 후의 보람은 그만큼 더 컸고, 심리적 만족감도 훨씬 더 많이 충족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녀온지 2년이 지났습니다. 산티아고 다녀온 후에 ‘산티아고 특강’을 여러 번 하였습니다. 그 준비를 위해 자료와 생각을 정리하였고, 무엇을 얻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세 가지 중요한 점을 몸으로 직접 느끼며 배웠습니다. 첫 번째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삶의 철칙입니다. 이 진리는 ‘Hospital de Peregrinos’라는 성당 겸 알베르게에서 봉사하고 계신 신부님과 두 분의 자원 봉사자들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열두 명만 머물 수 있는 비좁고 전기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매일매일 다양한 순례자들에게 정성스럽게 잠자리와 식사를 준비해 주시고, 세족식을 엄숙하게 진행하시는 분들입니다. 순례자들은 머물다 떠납니다. 그분들은 각기 다른 모습의 순례자들을 지극한 정성으로 맞이하시고 보내드립니다. 너무나 다양한 순례자들에게 차별 없는 사랑을 베푼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또한 그분들은 어떤 상황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들이 할 일만 할 뿐입니다. 마음에 드는 순례자들이라고 하루 더 머물라고 붙잡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순례자들이라 하여 거부하지도 않습니다. 그분들을 보며 페르시안 시인인 루미의 ‘여인숙’이라는 시구가 떠올랐습니다. “누가 오든지 고맙게 여겨라, 그들 모두 저 너머에서 보내온 안내원들이니.” 하루 머물다 떠나는 손님, 즉 삶의 행복과 불행, 을 차별 없이 대하고, 오직 자신들의 할 일에 충실하며, 시간을 기다리는 마음이 바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행복의 열쇠입니다.
길에서 또 알베르게에서 만나는 다른 순례자들은 저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고, 그 거울을 통해서 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제가 타인의 시선과 잣대를 많이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실상으로 살아가기보다는, 타인에게 비치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몸에 익숙한 순례자들을 보며 저의 경솔함을 탓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삶의 주도권을 유지하며 동시에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함께 사는 세상에서 반드시 필요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태도입니다. 저는 실상보다는 저를 둘러싸고 있는 허상에 더 관심을 갖고, 그 허상을 꾸미려고 노력하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남의 평가와 기준에 맞추려고 살아왔고, 그들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제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길을 걸으며 제 삶의 주인이 ‘저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동시에 다른 분들 모두 각자 삶의 주인으로 당연히 존중받아야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배운 내용은 사람들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을 갖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피니스테레에서 온 몸에 문신을 한 노인과 저녁 식사 자리에 합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분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처음에는 꺼림칙하였습니다. 하지만 대화가 시작되면서 동서양의 종교,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심오한 식견을 풀어내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거나, 자신의 잣대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산티아고 여정을 일정보다 빨리 마칠 수 있어서 포르투갈 제2의 도시인 Porto (영어로는 Oporto)에 삼일 간 머물며 저의 과거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 뿌리 깊은 두려움과 관련된 내용으로 고인이 되신 아버지와 연관된 일입니다. 과거를 떠올리며 보이지 않는 두려움으로 인해 온 몸에 소름이 끼치는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과거의 기억을 억지로 불러들여 다시 재경 험하며 그 기억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졌습니다. 그 경험은 제게 의미 있는 경험이었고, 오랜 기간 지니고 있었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Porto에서의 3일은 휴식을 취하며 과거와의 만남을 통해 과거가 더 이상 현재를 힘들게 만들지 않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과거의 사슬을 풀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불필요하게 소모했던 저의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Porto 일정을 마친 후에 프랑스에서 베르나르 올리비에를 만났습니다. 산티아고 출발 전 미리 약속을 하고 찾아가서 만난 것입니다. 제가 프랑스에 간 이유는 오로지 이 분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걷는다’의 저자이고, 책으로 제게 많은 힘을 주신 ‘걷기의 달인’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걷는다는 것은 다리가 걷는 것이 아니고 뇌가 걷는 것입니다. ‘걷기의 달인’은 실은 ‘삶의 달인’입니다. 약 50분 정도의 만남을 통해서 그분 역시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동시에 한 사람의 삶의 태도와 방식이 주변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걷기를 통한 청소년 교화 프로그램인 ‘쇠이유’를 만든 분입니다. 89세의 연세이지만 저보다 손아귀 힘이 더 강했고, 목소리에 힘도 있었고, 사무실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실 정도로 건강을 잘 유지하고 계셨습니다. 폐암으로 폐 한쪽을 잘라냈고, 오른쪽 시력을 잃었지만 지금도 ‘은퇴자를 위한 학교’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분의 말씀 중 기억에 남은 말이 있습니다. “은퇴자들은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경험이 많고, 전문 지식을 갖고 있으며, 경제적 여유와 시간적 여유를 갖고 있기에 그들은 결코 사회에 폐기 처분된 사람들이 아니고, 오히려 스스로 가진 자원을 활용하여 자신의 방식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찾아서 해야 한다.” 그 말은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는 제게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산티아고를 다녀온 후에 자전적 에세이인 ‘새로운 나로 태어나는 길, 산티아고’를 발간하였습니다.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시점에 잘 다녀왔고, 그 길과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서 저는 새로 태어났습니다. 제가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한 확신을 얻었고 그 길을 가는데 필요한 삶의 철칙을 체득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저는 그 길로 꾸준히 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 길은 ‘상담, 명상, 걷기를 활용하여 심신이 지친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 그 일 자체가 제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