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 (길)

by 걷고


길은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다. 길이 되기 전에는 길이라 불리지 않는다. 다만 산, 밭, 숲, 기타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그곳을 누군가가 지나가면서 길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한 사람이 지나가고, 뒤이어 다른 사람들이 지나가고, 동물들이 지나가며 길 없는 곳에 길이 만들어진다. 그 이후에야 우리는 그곳을 길이라 부른다. 길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과 동물들의 움직임의 흔적으로 인해 길이 만들어진다.

길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넓은 대로, 숲길, 오솔길, 산길, 오르막길, 내리막길, 골목 등. 하지만 그곳에 길이 생긴 것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어떤 목적으로든 그곳을 통해 사람들과 동물들이 다니는 곳이기에 길이 만들어진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편하기 때문에, 가깝기 때문에, 사람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일부러 멀리 돌아가고 싶어서 또는 빨리 지나가고 싶어서 등 여러 가지 목적으로 인해 길이 생기게 된다.

우리가 어느 곳을 어떤 목적으로 길을 만들어도 대지는 아무런 불평불만을 표현하지 않고 그대로 묵묵히 받아들인다. 길은 좁거나 넓다고 서로 비교하지도 않고 불평을 표현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거나 적게 다니거나 길은 서로 싸우지 않고 가만히 받아들인다. 어떤 사람들은 길 위에 쓰레기를 버리기도 하고 침을 뱉기도 하고 온갖 오물을 버려도 길은 싫다거나 좋다거나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길을 만들고, 길을 다니면서도 한 번도 길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그렇기에 자연을 마구 훼손하면서도 개발과 발전을 위한 명목을 들이대며 한치의 수치감이나 미안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도를 넘게 사람들이 길을 못살게 만들면 자연이 생존을 위해 크게 분노하기도 한다. 분노라는 표현은 틀린 표현이다. 생존을 위해 그냥 자신의 할 일을 할 뿐이다. 비, 태풍, 눈, 바람 등을 통해서 자기 정화를 시작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그런 날씨의 변화로 인한 불평불만을 털어놓는다. 자연과 사람은 부모와 자식과 같은 사이인 것 같다. 한쪽은 늘 베풀고 인내한다. 다른 쪽은 늘 받으며 투덜거린다.

길을 가는 방법과 사람들도 다양하다. 걷기도 하고 차나 기타 교통수단을 이용하기도 한다. 길을 걷는 사람들도 다양하다. 남녀노소, 활기찬 사람, 아픈 사람, 마음이 아픈 사람, 몸이 불편한 사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사람, 즐겁게 걷는 사람, 데이트하는 사람 등. 어떤 사람들이 어떤 얘기를 하고 어떤 복장을 하든 길은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들인다. 길은 차별을 하지 않는다. 길을 가는 모든 존재들을 평등하게 대한다. 길은 자신을 드러내거나 감정을 표현하거나 불평불만을 얘기하거나 다른 길에 대한 평가나 흉을 보지도 않는다. 길은 그냥 길로서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사람과 모든 존재들이 지나가게끔 묵묵히 받아들인다. 지진이 나서 허리가 끊겨도 길은 아프다는 얘기를 하지도 않고, 저 너머로 우리를 데려다주지 못해 미안해한다. 그리고 시간을 기다린다.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그 길의 모양이 바뀌더라도 다시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길이 만들어질 때까지. 길은 결코 어떤 일도 의도적으로 하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며 섭리를 따르고 있다.

우리는 길을 걷는다. 치유를 위해, 걷기를 즐기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건강을 위해. 각자 길을 걷는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하지만 길을 걸으며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던 상황들이 벌어진다. 사람들과 즐겁게 보내기도 하지만, 가끔은 사람들로 인해 상처를 받기도 하고, 걷기에 충실하기보다는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해 걸으며 스스로를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어느 순간 원래의 목적은 부수적인 것이 되고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던 일과 상황들이 주목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길을 떠나기도 한다. 그런데 길을 떠나도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길을 벗어나서는 살 수가 없다. 어느 곳이든 길이 있기 때문이다.

심신이 지칠 때 걸었다. 그리고 활력을 되찾았다. 하지만 길에 대한 감사함은 없었다. 근데 오늘은 길이 너무나 고맙게 느껴진다. 어떤 상황에서든 길은 늘 거기에 있다. 찾아가기만 하면 길은 늘 똑 같이 맞이해준다. 길이 거기에 있기에 우리는 걷는 것이다. 그러면서 길을 통해서 많은 감사함과 가르침을 받게 된다. 우리가 할 일은 그냥 걷는 것뿐이다. 길이 있기에 우리는 걷는다. 오늘도 걷고 내일도 걷는다. 죽은 후에도 영혼이 다니는 길을 걸을 것이다. 우리는 길을 벗어날 수도 없지만, 길 역시 우리를 벗어날 수가 없다. 우리가 없으면 길의 존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길은 우리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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