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052]

그리운 자연

by 걷고

일시: 2020년 4월 22일 (수요 저녁 걷기, 월드컵공원 – 문화 비축기지 - DMC역 8km)

2020년 4월 23일 (집 – 봉산 – 집 7km)

누적거리: 794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매주 수요일 걷기 동호회에서 저녁 걷기 길 안내를 맡고 있다. 이번 주에는 월드컵 공원과 문화 비축기지를 걸었다. 하늘이 마치 수채화를 그려 놓은 것 같았다. 평상시의 하늘 같지 않았고, 마치 다른 세상에 들어온 느낌이 들 정도로 생경한 푸른 하늘을 보았다. 걸으며 내내 사진 찍느라 정신없었다. 나무, 잔디밭, 하늘, 길이 어우러진 야경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몇 년간 저녁 걷기를 해왔지만, 이런 하늘은 처음 본다. 영화 ‘트로먼 쇼’의 세트로 만든 하늘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맑고 깨끗하고 선명하고, 높고, 아름다웠다. 누군가가 하늘이라는 캔버스에 하늘 그림을 그린 것 같았다. 코로나로 인해 공장이 가동을 멈추고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면서 불필요한 이동을 자제하면서 돌려받은 선물이다.


하늘이 청명하니 별이 보고 싶어 졌다. 온 국민이 단 10분 만이라도 모든 전원을 끄고, 자동차 운행을 멈추고, 공공 시설물 전등을 끈다면 이런 맑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무수한 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저녁 걷기를 한 날이 4월 22일이었다. 이 날은 ‘지구의 날 (Earth Day)’ 50주년으로 저녁 8시에 10분간 전국 소등 행사를 진행하는 날이었다. 196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발생한 해상 기름 유출 사고를 계기로 지구 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1970년 4월 22일부터 시작한 민간 주도 행사다. 10분간 소등으로 전력 4만 킬로 와트와 온실가스 약 20톤의 감축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런 행사가 월 1회, 욕심을 낸다면 주 1회 열리면 좋겠다. 전력도 아끼고, 지구 환경도 보호하며, 동시에 잊혔던 청명한 하늘과 별을 되찾을 수 있다. 이런 하늘과 별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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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어디서든 물을 떠서 마실 수 있었다. 계곡물을 마셔도 되고, 펌프로 올린 물을 마셔도 되고, 우물물을 마셔도 된다. 등산가서는 계곡물로 쌀을 씻어 밥을 해 먹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깊은 우물에 두레박을 내려서 떠 마시는 물은 시원하고 맛있었다. 넘치는 우물물에 수박이나 참외를 담아 시원하게 먹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수돗물도 거의 마시지 않고 물을 사 먹고 있다. 물 값도 각각 다르다. 와인 바처럼 물을 마시는 물 바도 있다고 한다. 산에 올라가기 위해 물 준비는 필수이다. 예전에는 물을 굳이 준비해 갈 필요조차 없었다. 산에서는 누군가에게 물을 달라고 하면 실례가 된다. 예전에는 떠서 건네며 반갑게 인사를 하기도 했다. 물을 사 먹는 시대가 온다고 얘기할 때 믿을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이미 그 얘기가 현실이 되었다. 그런 물이 그립다.


동네 어귀 작은 도랑에도 물이 흘러서 물장난을 치기도 했다. 고무신으로 배를 만들어 흐르는 물에 띄워 뱃놀이를 하기도 했고, 종이배를 만들어 띄우기도 했다. ‘도랑 치고 가재 잡고’라는 속담이 나올 정도로 어디를 가도 도랑에 물이 넘쳐나고 있었다. 지금은 산에 올라도 계곡에 물이 없어서 바위만 흉측하게 보인다. 물과 어우러진 바위는 아름다운 산수화를 만들어내지만, 물이 없는 바위는 꼴사납다. 집 앞에는 냇가가 있어서 아침에 일어나면 달려가서 세수를 하기도 했다. 저녁에는 목욕을 하기도 하고, 여름에는 등목을 하기도 했다. 홍수와 태풍이 오는데도 물은 넘쳤다가 모두 사라져 버린다. 도랑, 계곡, 냇가의 물이 그립다.


요즘 길을 걸으며 맨 땅을 밟기가 어렵다. 대부분 도로는 포장되어 있고. 심지어 인도도 보도블록으로 포장되어 있다. 집 앞까지 아스팔트가 깔려있고, 마당이 사라졌다. 산에 가도 입구까지 포장된 도로를 걸어야만 산 길에 오를 수 있다. 강변 공원을 따라 걷는 도로도 포장이 되어 있다. 심지어는 산길도 방부목 데크로 시공되어 있어서 흙냄새를 맡기도 힘들고, 흙을 밟기도 힘들다. 그래서 걸을 때에는 가능하면 같은 길을 가면서도 자투리 흙 길을 따라 걷기도 한다. 하루 종일 시내를 걸어도 흙 길 찾기가 어렵다. 맨 땅, 흙을 밟고 그 냄새를 맡으며 걷고 싶다. 그런 흙 길이 그립다.


자연적인 것들이 사라지면서 인위적인 것들이 나타난다. 변화이다. 이런 변화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다. 새로운 문물을 접하기 위해 열린 태도를 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자꾸 과거의 자연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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