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125]

진실 vs. 거짓

by 걷고

날짜와 거리: 20201116 9km

누적거리: 2,524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현각 스님과 혜민 스님의 불편한 얘기가 어정쩡하게 마무리되었다. 어제는 사기꾼이 오늘은 도반이 되었다. 상대방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참회하겠다고 한다. 둘 다 사기꾼임에 틀림없다. 말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사기꾼의 가장 전형적인 수법이다. 내려놓겠다는 것은 그간 뭔가를 들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미 마음공부와는 먼 사람들이다.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저 불쌍할 뿐이다. 공부를 할 만큼 한 사람들의 말이 이 정도라면 그 공부가 과연 필요할지 의구심이 든다. 부처님 말씀은 진리지만, 그 진리를 각자 해석하고 그 해석에 따라 행동하면서 생긴 이상 현상이다. 본질을 모르고 말 한마디 놓고 의견이 분분하고 시비를 따진다. 같은 불자로서 안타깝다. 나 역시 이런 얘기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들과 다름이 없다. 하긴 나도 늘 시비를 따지고 살고 있으니, 그들이나 나나 똑같은 가여운 중생들이다. 깨닫기 전에는 모두 중생이라는 말은 참으로 맞는 말씀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축산업의 탄소 배출은 전체 배출의 14.5%에 해당하며, 이는 에너지 섹터 다음으로 막대한 배출량이다. 소를 먹이기 위한 목초지를 확보하기 위해 엄청난 면적의 밀림을 불태우고 있고 이는 기후온난화를 부추기고 있다. 공장식 축산은 동물 복지의 사각지대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폐사를 막기 위해 남용되는 항생제는 치명적인 인수 공통 감염병의 우려를 낳는다.” (조선일보, 20201016) 오늘 신문에 나온 기사로 대체육이 앞으로 식단에 오를 것이라고 한다. 진짜와 가짜 구별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며칠 전 외식을 한 적이 있었는데, 잡채에 섞여있는 고기가 콩고기라는 사실을 식사 후 알게 되었다. 그 전에는 그 고기가 식물성 고기라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먹었다.

뉴스도 앞으로 AI 앵커가 진행한다고 하고, 노래도 AI 가수가 부르는 세상이 되었다. 진짜 사람 앵커는 AI 앵커와 경쟁해야 하고, 진짜 사람 가수는 AI 가수와 경쟁해야만 하는 세상이 온 것이다. 뉴스도 무엇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하물며 미디어를 대표하는 신문이나 TV도 진실을 알려주는 것인지, 조작을 위해 정보를 노출시키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옳고 그름의 경계가 모호해졌고, 진실과 사실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여행도 VR을 보며 즐기고, 게임 속 세상에 빠져 실제 상황으로 오해하며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 가끔 미래 세계를 그린 영화에 보면 진짜 사람인지 가짜 사람인지 구별이 되지 않아 서로 확인을 위해 싸우기도 한다. 세상이 옮음과 그름, 아군과 적군, 진짜와 가짜, 너와 나 등 이분법으로 나눠져 있고, 그 간극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 오늘의 아군이 내일의 적군이 되기도 한다.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기보다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참된 옳고 그름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대체육이 식단에 오르는 순간에도 초밥집과 한우 오마카세는 점점 더 인기를 얻어가고 있다고 한다. 부동산 정책이 잘 되어 가고 있다고 하지만 모든 국민이 집 문제로 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 고용률이 상승되고 있다고 하나, 점점 더 삶의 질은 하락하고 있다. 공항 건설이 국민을 위한 건설이 아닌 투표를 위한 선심 정책으로 변질되고 있다. 하긴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미국에서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세상이니, 민주주의의 개념 자체가 무의미하게 되었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세력은 선거 결과에 불복하며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이분법 세상의 끝은 결국 불필요한 소모전이고 승자가 없는 전쟁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일들을 자행하는 것을 보면 중생의 어리석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아마 상대방을 전멸시키고 나면 그 이후에는 자기 진영에서 또 다른 분열을 조장하여 싸우고 죽이게 될 것이고, 결국은 자신을 스스로 죽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至道無難 唯嫌揀擇 (지도 무난 유혐간택)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니但莫憎愛 洞然明白 (단막증애 통연명백)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진리는 명백히 드러난다

중국 선종의 제3대 조사인 승찬대사가 지은 신심명(信心銘)에 나오는 첫 구절이 오늘따라 절절히 떠오른다. 시비를 따지지 않는 마음이 간택함을 꺼리는 것이다. 너와 나, 이것과 저것,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는 것이 중도를 이루고 도업을 성취하는 길이라고 첫 구절에서 말씀하셨다. 그만큼 시비심을 벗어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고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신 말씀이다.

굳이 남의 얘기를 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 자신의 본성을 거울삼아 자신의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돌아보며 공부해 나가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다. 매일 매 순간 사람들에 대해, 상황에 대해, 자신에 대해 많은 시비를 하고 좋고 싫음을 반복하며 스스로를 어지럽히며 살아가고 있다. 옛 선사들이 무심하게 하루 일 하고, 먹고, 자고 하는 것이 수행이라는 말씀이 점점 더 와 닿는다. 어제 아내와 집안 페인트 칠을 하며 어설픈 노동을 하며 땀을 흘린 덕분에 꿀 잠을 잘 수 있었다. 참다운 노동은 참다운 마음을 만들어 준다. 시비를 가리고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노동의 의미를 아느냐고 묻고 싶다. 어떻게 살든 백 년도 살지 못하고 죽는다. 삼만육천오백일에 불과한 하루살이 인생이다. 신심명의 문구를 오늘 하루 만이라도 잘 간직하며 살고 싶다.

심우도 (송담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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