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세종시에 보금자리를 준비한 조카 집에 들렀다. 딸 집에 들러서 딸과 손녀를 태우고 장모님 댁에 들렸다. 처남 식구와 장모님 댁에서 만나 함께 다녀왔다. 손녀를 태우고 이동하는 차 안에서 아내와 딸은 뒷자리에 앉아 손녀와 노래도 부르고 손뼉도 치며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운전하며 백미러를 통해 손녀가 가족들과 함께 즐겁게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며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사소한 즐거움이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갓 입주한 아파트에 들어서며 마음이 놓였다. 동시에 같은 젊은이들이 집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기도 했다. 요즘 우리 국민들 모두가 전세든 매매든 집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렵게 되었다. 젊은 사람들은 집 구하는 것이 어렵고 살림 꾸리는 것이 두려워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이런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이런 상황에서 보금자리를 만든 조카와 조카며느리를 보며 안심이 되었던 것은 그들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집 문제로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조카 부부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기가 미안하다고 했다.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도 역시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지닌 조카 부부가 예쁘게 보였다.
외식을 하러 나가서 맛있게 식사를 하며 장모님께 기분 좋으시냐고 여쭤보았다. 손주들이 모두 자신이 살 집을 갖게 되었고, 자식들은 모두 큰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고, 어느 자식이나 손주들도 속 썩이지 않으니 장모님께서 기쁘셨을 것이다. 게다가 외 증손녀를 보셨고, 내년 2월이면 외증손 자를 보시게 되니 좋으셨을 것이다. 한 사람이 잘 살아왔는지를 알려면 삼 대(代)를 보아야 한다는 옛 말이 있다. 나와 자식까지는 어떤 면에서 어느 정도 통제와 관리가 가능할 수도 있지만, 손주 세대까지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운 일이다. 부모가 잘 살아야 자식이 부모를 보며 배울 수 있을 것이고, 그 부모의 삶을 보며 손주들이 배우게 된다. 물론 각자의 노력 여부에 따라 삶의 모습이 변화무쌍하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일상 속에서 배운 대로 행동하게 된다. 뿌린 만큼 걷는 것이고, 일종의 되물림이다.
장모님을 뒷자리에 모시고 운전을 하며 장모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장인어른의 자수성가는 장모님의 헌신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집 안에서 가내 수공업으로 스웨터 짜는 일을 하시면서 직원들과 밤샘을 하시기도 했고, 연탄불을 가느라 늘 머리가 어지럽고 무거우셨다고 했다. 파킨슨씨 병으로 고생하시다가 7년 전에 장인어른께서는 세상을 떠나셨다. 그 후에 장모님은 갑상선 암, 대장암, 뇌종양 등 많은 질병에 시달렸다. 그간 장인어른 병치레하시느라 돌보지 못했던 몸이 아우성을 쳤던 것이다.
다행스럽게 장인어른께서 준비해 놓으신 경제적 기반 덕분에 편안하게 생활하시고 우리들과 손주들에게 가끔 경제적인 도움을 주시며 살고 계신다. 노인회 회장 역할을 하시며 시장 상도 여러 번 수상하셨고, 당신에게 주어진 자원을 잘 활용하시며 하루하루 바쁘고 활기차게 살고 계신다. 자식들도 모두 큰 어려움 없이 장모님 속 상하게 해 드리지 않고 지내고 있다. 손주들도 자그마한 보금자리를 갖고 있고 부부들이 모두 직장 생활을 하고 있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도 없고 소리 나지 않게 살아가고 있으니 좋은 일이다. 외 증손녀와 외 증손주까지 보실 수 있으니, 4대를 살고 계신 것이다. 참 잘 살아오셨고 지금도 잘 살고 계신다. 고생도 많으셨지만, 지금은 남 부럽지 않게 편안한 삶을 살고 계신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한 사람이 일생을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가정을 이루고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 살며 울고 웃고 살아가는 것이 일생이다. 늘 좋을 수만도 없고, 늘 불행할 수만도 없다. 삶은 행복과 불행이라는 씨줄과 날줄로 만들어진다. 불행이라는 날줄을 빼버리면 삶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행복이라는 씨줄을 빼버려도 삶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행을 거부할 수도 없고, 행복을 움켜잡을 수도 없다. 불행을 거부한다는 것은 씨줄을 빼버리는 것이고, 행복을 움켜쥐는 것은 날줄을 빼버리는 것이다. 옷을 만들려면 씨줄과 날줄이 모두 있어야만 한다. 그 옷이 우리네 삶이다.
영화 ‘오베라는 남자’의 장면 중 오베가 동네 아이들과 드라이브하는 장면이 있다. 아이들의 웃는 얼굴과 웃음소리를 들으며 ‘이것이 인생이구나’라고 오베는 웃으며 소리친다. 그렇다 어제 차 안에서 들었던 손녀의 웃음소리와 웃는 얼굴을 본 것이 인생이고, 장모님께서 4대와 함께 식사를 하며 웃는 것이 인생이다. 한 평생 산다는 것은 그다지 심각한 일도 아니고 즐거운 일도 아니다. 어쩌면 삶은 물 맛이 아닐까? 물은 아무 맛도 색도 냄새도 없지만, 물 없이는 살 수 없다. 우리는 매일 물을 마시고 살아간다. 어떤 날은 물 맛이 쓸 수도 있고, 어떤 날은 물 맛이 달 수도 있다. 쓴 맛을 알아야 단 맛을 느낄 수 있다. 인생이라는 것은 씨줄과 날줄로 이루어진 그냥 그런 것이다.
*** 현각 스님이 혜민 스님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혜민 스님은 머물고 있는 곳이 자신의 집이 아니라고 한다. 숭산스님께서 타인에 대해 비난하라는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선승은 암자에서 공부한 후 떠날 때에는 뒤에 오는 수좌들을 위해 쌀과 나무 장작을 만들어 놓고 바랑을 메고 훌쩍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