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욕구 vs. 자율 욕구
날짜와 거리: 20201213 14km
누적거리: 2,719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어제 코로나 확진자 수가 천명을 넘어섰다. 이번 주말에 1박 2일로 미황사 달마 고도 길을 가기로 예정되어있어서 신경이 쓰인다. 렌트 한 미니 버스를 타고 열세 명이 5시간 이상 이동해야 해남에 도착할 수 있다. 며칠 전부터 확진자 수가 증가하여 고민하고 있었는데, 어제 천 명을 넘어서자 아무래도 참석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와 아내, 딸과 사위, 손녀, 그리고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까 많이 두렵다. 또한 함께 가는 사람들의 가족도 신경이 쓰인다. 만약 그중 한 명이라도 확진자가 나온다면 문제가 커진다. 이 모임을 준비했던 리더에게 불참 의사를 카톡으로 표현했다. 코로나로 신경이 쓰인다고 솔직하게 얘기하고 양해를 구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전화를 다시 걸었다. 다행스럽게 참석자 투표를 통해서 당분간 연기를 하기로 결정이 되었다고 한다. 그 결정이 너무나 고맙다. 리더에게 미안했던 마음과 불참 의사를 밝힌 후 불편했던 마음이 마치 체증 내려가듯 사라졌다.
살아오면서 늘 고민했던 점이 바로 ‘관계 욕구’와 ‘자율 욕구’ 간의 갈등이었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홀로 살아갈 수 없다. 동시에 모든 결정을 스스로 내리고 행동해야 하기에 자율성도 중요하다. 결정에는 책임이 따르고, 그 결정의 초석은 자율성이다. 그 갈등 사이에 있을 때에는 결정을 내리기가 결코 쉽지 않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만 선택해서 할 수도 없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관계에 의해 강요되는 삶을 사는 것 역시 편하지 않다. 나 역시 살아오면서 대부분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주변의 뜻을 따르며 살아왔고, 내 주장을 펼치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오지 ‘않은 것’이 아니고 ‘못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고, 가끔은 그런 인해 억울하고 자신과 상대방에게 화가 나기도 했었다.
홀로 있으면 외롭지만 동시에 편안하다. 함께 있으면 즐겁지만 불편하기도 하다. 내 뜻과 상관없이 대중의 뜻을 따라야 하는 것이 가끔은 강제적으로 느껴지기도 해서 더욱 불편하다. 함께 지내면서 홀로 살아가는 법은 없을까? 살아가는데 관계 욕구와 자율 욕구가 모두 필요하다. 관계 욕구는 가정과 사회생활을 하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욕구다. 누군가의 사랑과 인정을 받으며 성장하고 자신감을 획득하게 되면서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 견강한 관계 기반 위에서 자율성이 성장할 수 있다. 스스로 설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으면 자율 욕구가 저절로 올라오고 독립된 삶을 살고 싶어 하며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 간다.
세상은 마치 그물처럼 얽혀있다. 그물 한 코를 들어 올리면 주변의 그물이 따라 올라온다. 하나의 그물코가 제대로 유지되기 위해서 다른 그물코가 필요하고 중요하다. 관계 욕구가 필요한 이유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는 배우고 성장하며 삶의 자양분을 얻을 수 있다. 주위의 그물코가 부실하면 나의 그물코 역시 부실할 수밖에 없다. 물론 예외도 있을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다. 동시에 나의 그물코가 건강해야 주변의 그물코도 건강해질 수 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된 존재이면서 동시에 각각 독립된 존재다. 각자 또 함께 살아야 할 이유다. 방법은 무엇일까?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과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지금까지 내가 찾아낸 방법 중 하나이다. 진솔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오늘 같은 경우도 만약 내가 다른 핑계를 댔다면 스스로 떳떳하지 못해서 리더와 다른 참석자들을 만날 때 스스로 불편함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솔직한 이유를 얘기했기에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떳떳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리더와 다른 참석자들의 눈초리와 불편함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처음에는 불신감이 생길 수도 있고 만나면 껄끄러운 관계가 될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며 더욱 깊은 신뢰를 쌓아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또 다른 방법은 가끔 홀로 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을 충전하기 위해 스스로 자가격리를 하는 것이다. 하루에 단 한 시간만이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자신을 성찰하고 소모된 에너지를 충전하고 내면의 건강을 다지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명상, 홀로 걷는 것, 조용히 책을 읽거나, 자신만의 취미활동을 몰입해서 하는 것 등이 좋은 방법이다. 내면이 건강해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낼 수 있다. 가끔은 불편함도 감수하고, 다투기도 하고, 양보도 하고, 타인에 대한 이해를 억지로라고 하기 위한 노력도 하며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나의 의견이 중요한 만큼 타인의 의견 역시 존중받아야 된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또한 자신과 다른 의견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건강한 관계의 기본은 자신 내면의 건강함에서 출발한다. 동시에 내면의 건강함은 관계, 사랑과 인정 등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관계와 자율은 서로 다르지만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어제 눈 구경을 하기 위해서 홀로 난지천 공원과 노을 공원을 걸었다. 약 3시간 반 정도 걸려 14km를 걸었다. 홀로 걷는 것이 점점 더 편안하고 좋다. 공원 안 벤치에 누군가가 눈사람을 만들어 올려놓았다. 어른과 아이를 표현한 듯 하나는 크고, 다른 하나는 작다. 한 벤치에 나란히 올려놓지 않고, 벤치에 각각 하나씩 올려놓은 것을 보고 조금 의아했다. 왜 사이좋게 가깝게 앉히지 않았을까? 이제 그 답을 나름대로 해석해서 찾은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가족 간에도 유지하라는 무언의 표현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두 개의 눈사람이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등을 돌리고 있지 않고 각자의 벤치에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이 작품의 작가는 ‘따로 또 같이’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눈사람을 통해서 전해주고 있다. 재치 있는 표현에 감사를 표한다.
이 글을 쓰기 전 사위에게 카톡을 보냈다. 3박 4일간 사위와 단 둘이 울릉도 여행을 하기로 되어 있는데, 신경이 쓰여서 연락을 먼저 취했다. 사위도 고민을 하고 있었던지, 조심스럽게 미루고 싶다는 의견을 얘기했다. 서로 통화를 하며 흔쾌히 여행을 연기하기로 합의했다. 내년 2월에 둘째 아이가 태어나니, 그 이후가 될 것이다. 사위와 둘 만의 여행을 많이 기대하고 기다렸는데 시절 인연이 닿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족의 안녕이 최우선이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둘만의 여행을 연기했다. 잘 내린 결정이다. 덕분에 시간이 많이 남게 되었다. 책 출간 기획서도 작성하고, 명상도 하고, 걷고 글 쓰며 한 해를 홀로 조용히 마무리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