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의 즐거움
늪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빠져나올 수 있을까?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욱더 늪에 깊게 빠지게 된다. 이때는 빠져나오려는 모든 행동을 멈추고 힘을 뺀 뒤에 가능한 한 엎드려 몸을 최대한 넓은 면적으로 만들며 서서히 기어 나오면 된다고 한다. 어떤 역경에 처해 있을 때 사람들은 빨리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지만, 그런 노력은 오히려 자신을 더욱더 큰 역경으로 몰아가고 결국 자신을 지치게 만들어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주어진 환경에서 벗어나려고 어지간히 나를 못살게 굴었다는 생각이 든다. 늘 뭔가를 해야만 했고 그렇지 않으면 퇴보하고 생존하지 못한다는 강박적인 사고로 인해 늘 나를 몰아붙였었다. 계획만 거창하고 꼼꼼하게 수립하고 그 계획에 치여서 늘 힘들어하기도 하였고, 자투리 시간은 아주 소중하게 사용한 듯 보이지만 정작 시간이 여유로운 연휴나 주말에는 TV를 보거나 시간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수많은 시간들을 낭비하며 지내기도 하였다. 또 그런 나의 모습에 실망하고 자책을 반복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아왔다.
터널을 통과하는 프로그램에 동참한 적이 있었다. 통과 전 자신의 꿈을 큰 소리로 외친 후 긴 포대자루를 통과하는 프로그램으로 중간중간에 사람들이 포대자루 양 옆에 앉아서 격려하고 도와주고, 반면에 진행자는 나아가지 못하게 막으며 참가자를 힘들게 만든다. 갈 길이 막힌 포대자루 안의 참가자는 앞으로 나아가려 발버둥을 치기도 하고 숨을 몰아 쉬기도 하며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비록 직접 체험하지는 않았지만, 그 프로그램은 내게 힘든 상황에서 자신을 낮추는 모습과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려는 생각을 내려놓고 잠시라도 쉬는 것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었다.
요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연습을 하고 있다. 아침에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데 1시간 30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처음에는 엉덩이는 저리고 몸도 뒤틀리며 그 시간이 아까워 뭔가를 하려고 시도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법문을 듣거나, 상담 관련 공부를 하거나, 아니면 휴대폰으로 기사를 검색하거나, 동호회 카페 활동을 하기도 하고, 호흡명상도 하고, 그러다 잠에 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요즘은 출근길에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밖을 쳐다보거나, 눈을 감고 쉬기도 하고, 생각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그냥 흘려보내기도 하며 굳이 뭔가를 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으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누군가를 만나기로 약속이 된 날에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일찍 근처에 도착하여 찻집에서 차 한잔 마시는 소박한 사치를 누리기도 한다. 예전에는 출발 전 꼭 책을 챙기거나 뭔가 할 일을 준비하여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려고 애를 쓰기도 하였지만, 이제는 그 조차도 하지 않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변을 쳐다보거나 하며 짧은 시간이나마 편안하게 쉬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런 시간이 늘어나면서 내 안에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선 마음이 많이 편안해지고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희열이 저절로 샘솟듯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치 메마른 웅덩이에 물이 조금씩 스며들어 고이는 느낌처럼. 물이 모이기도 전에 바가지로 퍼내어 쓰느라 고일 틈이 없었는데 퍼내는 행동을 멈추니 물이 저절로 차올라 고이게 된다. 비록 처한 환경의 변화는 전혀 없지만, 내려놓고 쉬는 시간을 통해 외부 환경의 변화와 상관없이 내면에는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으며, 그런 변화는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변화시켜주며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그런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서 아무에게도 통제를 받지 않고, 아무도 내게 신경을 쓰지 않는 상황에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거나 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시간이 내게는 점점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연말이 다가온다. 한 해 마무리를 잘 하라는 인사를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 마무리를 한다는 행동 역시 내면의 물을 퍼내는 행동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 마무리를 잘 하라는 말 대신, ‘한 해 지내시느라 애 많이 쓰셨으니 편히 쉬는 시간을 가져 보세요.’라고 인사를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한 해의 모든 희로애락을 내려놓으시고, 아무것도 하시지 않는 참다운 휴식의 시간을 보내시며 지난해를 마무리하시는 것은 어떠신가요? (2016년 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