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상담 슈퍼비전을 받기 위해 상담센터로 갔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슈퍼비전이다. 가끔 내담자와 상담 진행이 잘 풀리지 않거나 고착상태에 있을 때 슈퍼비전을 받으며 상담 방향을 수정하기도 하고, 상담사의 잘못된 시각을 수정 및 보완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슈퍼비전은 아주 좋은 제도이다. 나와 슈퍼바이저가 내담자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다. 슈퍼바이저의 오랜 경험을 통한 시각은 나의 시각을 넓혀준다. 같은 상황도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슈퍼바이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고, 슈퍼비전을 통해서 상담사는 진일보하게 되고, 내담자는 좀 더 안전한 환경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함께 슈퍼비전을 받은 상담사는 매우 진지하고 깊이 있게 공부에 임하는 사람이다. 그 상담사가 쓴 슈퍼비전 자료를 보며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상담 축어록 마지막 부분에 상담사가 ‘오늘 상담을 마치게 된 것이 아쉽다.’는 의미로 전달하는 따뜻한 말씀을 한 것이 인상에 많이 남는다. 내담자를 진심으로 아끼는 상담사라는 인상을 받았다. 돌이켜보니 나는 상담 끝날 시점에 단 한 번도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좀 더 내담자에 대한 마음가짐을 따뜻하게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 좋은 계기가 되었다. 슈퍼비전 마치고 나오면서 그 상담사에게 ‘자극을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기분 좋게 헤어졌다.
슈퍼비전 마치고 난 후 슈퍼바이저 선생님이 해파랑길에 대해서 여쭤보셨다. 금년 목표가 해파랑길 완주라고 한다. 그 얘기를 들으니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내 마음이 들뜬다. 해파랑길을 여름과 겨울에 10일 정도 장기 도보로 진행하는 카페를 알려드렸다. 그 슈퍼바이저 선생님은 걷기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으로 예전에는 서울 둘레길도 물어보았던 기억도 있다. 선생님은 요즘 신체의 변화를 느끼고 있고, 면역력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다고 했다. 아마 걷기 역시 자신의 건강과 면역력을 키우고 동시에 마음 수양을 하는 방편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점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분의 해파랑길 완주를 응원한다.
슈퍼비전이 끝나고 전철을 타고 상담이 예약된 마음 복지관으로 이동했다. 보문역에서 복지관까지는 버스로 두 정거장 정도의 거리에 있지만, 그 정도 거리는 늘 걸어 다니는 편이라 여유롭고 편안하게 걸었다. 마음 복지관 상주 임직원분들에게 커피 대접을 하는 날이어서 사전에 커피 예약을 받아 놓았다. 네이버 밴드 활동을 열심히 해서 애드포스트에서 적은 광고료가 입금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커피를 쏘겠다고 약속을 했다. 세 분이 각자 다른 커피를 주문했다. 개성이 다양하고, 그런 다양성이 경쾌한 즐거움을 준다. 만약 모두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면, 나의 기분이 무채색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기분 좋은 일이다.
아무리 사소한 물건이나 차 한잔이라도 줄 수 있는 대상이 있고, 그 대상이 원하는 것을 사서 들고 가는 재미는 삶의 활력이 된다. 받는 즐거움도 있지만, 주는 즐거움은 받는 즐거움의 최소한 두 배 이상은 되는 것 같다. 자주 하는 일은 아니지만, 카톡으로 친구들에게 커피나 작은 선물을 보내면 괜히 내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작은 선물로 상대방과 나 자신이 기분 좋아진다면, 굳이 안 할 이유가 없다. 서로의 즐거움이 모이면 우리의 행복이 된다. 행복은 사소한 것들의 교류를 통해 만들어진다. 따뜻한 말 한마디, 웃는 얼굴, 친절한 배려, 상대방을 걱정하고 위로하는 마음, 작은 것을 나누는 마음들이 모여 행복을 만든다. 커피 선물은 상대방에게는 즐거움을, 내게는 더 큰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상담 마치고 다시 전철역까지 걸어와서 탑승한 후 마포구청역에서 내려 한강변으로 나갔다. 비록 걷기 복장은 아니지만 걷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편한 옷을 입었고 신발을 신었다. 한강변에서 월드컵경기장으로 진입하는 보행자용 육교는 매우 아름다운 S자형 곡선으로 만들어져서 아주 좋아하는 길이다. 데크로 만들어진 육교 위에서는 한강변을 볼 수가 있고, 육교 아래 강변도로를 질주하는 차들의 행렬을 볼 수 있다. 질주하는 차 위를 걷고 있다. 가끔 도로에 차가 막혀서 속도가 느려지면, 그 위를 걷는 나는 홀로 휘파람을 불며 속으로 즐거움을 표현한다. 타인의 괴로움이 나의 즐거움이 되는 순간이다.
육교 위에서 노을을 보았다. 한강으로 넘어가는 노을은 그 빛이 너무 강해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강렬함은 서서히 빛을 잃고 조용히 사라져 간다. 한강에 비친 붉은색도 점점 옅어지며 하루가 끝나간다. 육교를 지나 월드컵 공원으로 진입하는데, 공원 앞에 볼록 거울이 세워져 있고, 그 거울에 노을이 비치고 있다. 마치 어린아이가 보물찾기 놀이에서 보물을 찾듯 혼자 환호성을 속으로 지르며 그 모습을 보고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자신의 사진 솜씨에 취해서 그 사진을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대답은 시큰둥했지만, 그래도 보낼 친구가 있고,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비록 그들에게는 공해가 될지라도 말이다. 가끔은 친구들의 감정을 살피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도 정신건강에도 좋을 것이다. 그 친구들에게는 아주 사소한 스트레스 거리가 될 수도 있지만. 친구들의 괴로움은 이 경우에도 나의 즐거움이 된다.
집으로 돌아와서 오늘 걸은 거리를 보니 10.2km를 걸었다. 일상 속에서 한두 정거장 미리 내려 걷거나 바쁘지 않으면 조금 돌아서 걸으면 하루 운동량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걷기나 운동을 하기 위해 별도로 시간을 낼 필요가 전혀 없다. 일상 속 걷기는 일단 습관화만 되면 일상 속에서 얼마든지 실행할 수 있다. “사람이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사람을 만든다.”는 대형 서점의 캐치프레이즈를 보고 흉내를 내어 만들었지만 잘 만든 문구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우쭐해한다. 집에 귀가해서 아내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칭찬받았다. 오늘 할 일을 마친 것이다. 내일은 내일 일을 하면 된다. 노을이 지고, 내일 해가 다시 뜨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