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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의 걷기 일기 0172]

루틴의 중요성

by 걷고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있다. ‘코로나 19’와 ‘우울감(blue)’이 합쳐진 신조어로 코로나 19 확산으로 일상에 변화가 오면서 생긴 우울감이나 무력감을 뜻한다. 코로나의 장기화로 사람들은 지쳐가고 있다. 자영업자를 포함해서 많은 분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고, 신규 채용이 줄어들면서 청년들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의료진도 지쳐가고, 코로나 외의 질병으로 고통받는 분들은 병원에 가서 진찰받기조차 어려워지고 있다. 코로나 확진자로 판명이 나면 낙인이 찍혀 심리적으로 심한 고통을 받게 되고, 사회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로 인해 경제적, 신체적, 심리적인 고통으로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정부에서는 나름대로 대책을 만들어 내기 위해 고심하고 있고, 국민들은 자발적 격리, 마스크 쓰기, 손 씻기, 세정제 사용 등 각자의 방식으로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 신경 쓰며 노력하고 있다. 가까운 사람들과의 모임도 자제하고 있고, 불필요한 외출도 삼가고 있다. 가족과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자가 격리를 하며 하루하루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홀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긴 하루를 보내야 하는가가 큰 고민거리가 되었다. 늘 바쁘게 지냈던 사람들에게 잠시의 휴식은 재충전을 위한 좋은 기회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상황에 의해 주어진 많은 시간을 홀로 지내야만 하는 것은 휴식과는 또 다르다. 마치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무인도나 독방에 갇혀있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연말에 예정되었던 일정들이 자연스럽게 취소되었다. 미황사 달마 고도 길을 길동무들과 함께 가기로 한 계획이 취소되었다. 사위와 단둘이 3박 4일간 울릉도 여행을 가기로 한 약속도 취소했다. 걷기 동호회 활동도 모두 취소되었다. 덕분에 한 해를 차분히 돌아볼 기회가 생겼다. 제법 바쁘게 지낸 일 년이었다. 심리상담, 강의, 공무원 채용 면접관, 책 발간을 위한 인터뷰와 원고 정리, 걷기 동호회 활동, SNS 활동, 글쓰기, 명상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보냈다. 매년 연말을 조용히 홀로 보내고 싶었는데, 이런저런 일들과 약속으로 정신없이 한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이하곤 했다. 한 해 바뀌는 것이 그저 하루가 지나가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 첫 날을 맞이하고 싶었다. 코로나가 차분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 해를 맞이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코로나 ‘때문’이 아니고, 코로나 ‘덕분’에 생긴 귀한 기회다. 같은 상황도 시각을 바꾸어 바라보면 다르게 보인다. 탓하는 마음이 고마운 마음으로 변한 것이다.


홀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할 일도 없고,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없어지면서 시간에 치여 하루하루 힘들고 지루하게 보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생활이 길어지면 자연스럽게 무기력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무기력을 극복하기 위한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자신만의 루틴을 만드는 것이다. 기상 시간과 취침 시간을 정해놓고 지키는 것도 좋고, 집 주변을 걷거나 좋아하는 운동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평상시에 하고 싶었던 취미 생활에 몰두하거나, 요리를 좋아한다면 가족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다. 하루 일과 중 단 한 시간만이라도 혼자 보내는 시간을 갖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함께 또 홀로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족 구성원들이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공간과 시간을 확보해주며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하다. 혼자 보내는 시간을 통해서 마음속 여유를 확보하게 되면, 그 여유 공간을 가족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공간으로 채울 수 있다. ‘따로 또 함께’는 함께 살되 각자의 독립성과 자율을 보장해주며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하는 의미 있는 말이다.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가족 간에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코로나 블루를 극복하기 위한 좋은 방법으로 ‘루틴 만들기’와 ‘따로 또 함께 살기’를 추천하고 싶다.


걷기 동호회에서 만난 슈크란님은 70세가 넘으셨지만 매일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10km를 걸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매월 40만 보, 300km를 걷는 것을 목표로 정해서 꾸준히 걷고 있다. 비가 많이 오거나 폭설이 올 경우에는 왕복 2.4km에 달하는 잠실역 지하상가를 걷는다. 동호회에서 같이 걸을 때 그의 걷는 모습을 보면 전혀 나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 발걸음이 경쾌하고 보폭도 넓다. 사회적인 책임과 가정적 의무를 모두 마친 그는 요즘도 부인과 함께 서울 둘레길을 걷거나 다양한 걷기 동호회 활동을 하며 활기차고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또한 가족, 친구, 길동무들과 ‘따로 또 함께’ 즐겁고 행복한 인생 후반기를 살고 있다.


산티아고 길을 네 번이나 다녀온 그는 2009년에 별 다른 사전 준비 없이 사리야부터 콤포스텔라 대성당까지 100km를 걸으며 첫 도전을 시작했다. 그의 도전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2011년도에 혼자 생쟝에서 출발하는 프랑스 루트 800km를 홀로 완주했고, 2013년도에는 아내의 환갑을 기념하여 생쟝에서 출발해서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지나 피니스테레와 묵시아까지 920km를 함께 걸었다. 2015년에는 친구들과 프랑스 르삐 길과 생장, 포르투갈을 잇는 1,260km에 달하는 길을 걸었고, 2017년도에 프랑스 루트를 다시 걸었다. 그는 혼자 걷기도 하고, 아내나 친구들과 함께 걸으며 ‘따로 또 함께’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히포크라테스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약은 걷는 것’이라고 했다.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좋은 약보다 좋은 음식이 더 좋고, 좋은 음식보다 더 좋은 것이 체계적인 걷기’라고 했다. 그는 걷기를 통해서 마음을 비우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삶에서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살아온 경험을 통해서 또 홀로 걸으며 성찰을 통해 삶의 지혜를 체득하게 된 것이다. 몸무게가 80kg 정도였는데 걷기 시작한 후 15년간 70kg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지켜나가고 있다. 매일 아침에 걷는 루틴을 통해서 심신의 건강을 지켜나가는 그에게 걷기는 행복한 노년을 위한 삶의 충전 배터리이다.


프로야구 선수 출신으로 현재 미국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코치로 활동 중인 홍성흔 씨는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 준 것은 바로 ‘매일 108배를 7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했던 루틴’이라고 확신에 차서 얘기했다. 그 루틴을 지키기 위해서 심지어 화장실에 수건을 깔아놓고 108배를 한 적도 있다고 했다. 108배를 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20분 남짓이다. 하루에 20분 정도의 시간으로 하루를 활기차고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런 하루가 모여 인생이 된다.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는 루틴은 삶의 균형을 잡아주고 심신의 안정을 가져다준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라는 모 대형 서점의 캐치프레이즈가 있다. ‘책’이라는 단어를 ‘루틴’으로 바꾸면 ‘사람이 루틴을 만들고, 루틴이 사람을 만든다.’가 된다. 코로나로, 은퇴나 퇴직으로, 질병으로 또는 여러 가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어 삶의 활력을 되찾고 그 활력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만들어 가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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