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185]

철인 7호 홍대점

by 걷고

날짜와 거리: 20210302 12km

코스: 불광천 – 한강공원 – 메타세쿼이아 길 – 월드컵공원 – 불광천

누적거리: 3,308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딸이 산후 조리원에서 퇴원해서 집에 있고, 우리 부부는 손녀를 어린이 집에서 하원 시켜서 딸네 집에 데려다주었다. 손녀는 남동생이 태어난 것을 인지하고 있으나 엄마의 사랑을 약 3주간 받지 못한 여파로 인해 엄마 곁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우리 집에서 지낼 때에는 아내에게 안아 달라는 요구를 많이 했다. 사랑이 필요한 아이다. 아이들은 누구나 사랑을 필요로 한다. 어른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 사랑과 인정을 필요로 하고, 그 바탕 위에서 건강하게 자립할 힘을 키워나간다. 손녀가 아내 품에 안기며 기어오를 때, 아내는 ‘할머니는 너의 산이다. 언제든 기어올라도 된다.’라고 말을 한다. 그 말을 만 세 살도 되지 않은 아이가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무턱대고 밟고 올라가고 안기며 할머니의 사랑을 확인하며 심리적 안정을 얻는다.


아내가 얘기한 ‘나는 너의 산이다.’라는 말이 무척 따뜻하고 듬직하게 느껴진다. 비빌 언덕을 보고 눕는다고 했다. 어딘가 의지처가 있으면 용기를 내어 세상 밖으로 나가 자신감과 활력을 갖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 손녀는 다행스럽게도 그런 듬직한 산을 여러 개 갖고 있다. 손녀가 타고 난 복이다. 아내의 얘기를 들으며 내게도 산이 있었는지 자문하게 된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결혼 후 아내가 나의 산이 되어주었다. 딸이 태어나면서 딸이 나의 산이 되었다. 내 가족이 나의 산이 된 것이다. 그 산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지만, 그 산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산은 나를 지켜주었고, 나는 산을 지켜주었다.

20210302_181047.jpg

산은 지치고 힘들고 좌절할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다. 잠시 쉬었다가 회복한 후에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 자신의 삶을 활기차게 살아가야 한다. 산속에 묻혀 살거나 평생 의지하고 산다면, 그 산은 오히려 버팀목이 아니고 자신을 나약하게 만들어 주는 해악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산은 지혜로워야 한다. 힘들 때 품어주고 위로해 주며, 홀로서기를 할 때 지지를 해 주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홀로서기를 시도할 때조차 품으려 한다면, 그 사람의 손과 발을 묶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건강하고 지혜로운 버팀목을 통해서 삶의 방법을 배울 수 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어가기도 한다.


오늘 신문에 철인 7호 홍대점의 미화가 소개되었다. 소년 가장이 치킨을 먹고 싶다고 칭얼대는 동생을 데리고 단돈 5,000원을 들고 치킨 집을 찾았지만, 대부분 문전박대를 당했다. 철인 7호 홍대점의 주인은 그 형제를 따뜻하게 맞이하고 무료로 맛있는 치킨을 대접했고, 심지어는 나중에 홀로 찾아오는 동생에게 치킨을 대접하고 주변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아 주기도 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형이 본사로 손 편지를 써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마음 따뜻한 미담이다. 더군다나 요즘 코로나로 인해 그 주인 역시 월세 내기도 힘든 상황에서도 이런 선행을 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유진 박이 친구 S를 찾는 TV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S는 유진 박 어머니 덕분에 쥴리아드 음대에 입학했고, 지금도 플루트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플루트 연주자가 되는 것을 반대하는 S의 어머니를 설득시키기도 했으며, 레슨도 싸게 받을 수 있도록 주선까지 해 주셨다. 친구의 재능을 발견한 혜안과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셨던 따뜻한 마음을 지닌 유진 박 어머니 덕분에 훌륭한 연주자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S는 요즘도 힘든 상황에 처한 분들을 위한 연주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 사람의 든든한 버팀목이 있었기에 그는 훌륭한 연주자가 되었고, 그 연주자는 지금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아름다운 영향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혼자 상상을 해본다. 어쩌면 치킨 집주인도 어릴 적 배고파 힘들었던 적이 있지 않았을까? 그때 누군가가 따뜻한 밥 한 끼를 제공해 주었고, 그 영향을 받아 자신도 앞으로 누군가에게 그런 따뜻함을 전하겠다는 마음을 다지지 않았을까? 고마움을 잊지 못한 형 역시 언젠가는 힘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S의 경우도 아직도 유진 박 어머님의 은혜를 잊지 못하고 선행을 베풀며 감사함에 대하 보답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버팀목을 통해서 견뎌내고, 자신이 성장해서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어가는 것이다. 세상을 살만한 곳이다. 이런 아름다운 일들이 벌어지는 아름다운 곳이고, 그런 사람들이 살고 있는 멋진 곳이다.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준 모든 버팀목 역할을 하시는 분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어제 한강변을 걸었다. 노을이 무척 아름답다. 어제 우울했던 마음을 노을이 달래주었다. 이 글이 힘든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여 주고 용기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글을 통해서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미담이 알려지면서 치킨 집 사장은 주문이 몰려서 힘드시다고 한다. 한 달쯤 후에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찾아가서 맥주와 치킨을 따뜻한 마음과 함께 먹어보고 싶다.

20210302_180611.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걷고의 걷기 일기 0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