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와 거리: 20210629 - 20210701 28km
코스: 안산 자락길 외
평균 속도: 4km
누적거리: 4,314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손주들과 딸이 이틀간 머물다 갔다. 정신없는 시간이었지만, 그만큼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우리 부부에게는 추억이 삶의 힘이 될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우리들의 사랑이 삶의 힘이 될 것이다. 두 명의 손주들을 돌보며 딸아이 생각을 하니 마음이 짠하다. 두 명의 아이를 양육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옆에서 지켜보며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물론 사위도 많은 역할을 하곤 있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의 엄마인 딸의 수고스러움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잠시라도 딸아이에게 도움이 되어주려고 모든 노력을 쏟는 아내를 보며 ‘엄마의 일생’이란 참 고된 일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나도 뭔가를 하며 도우려 하지만, 그다지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아이들이 떠나고 나니 집안은 다시 절 집 분위기가 된다. 허전함과 약간의 무료함, 텅 빈 느낌이 든다. 환청처럼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 울음, 말소리와 잔영들이 그립다.
사위는 회사에서 보내주는 ‘서울대 MBA’ 과정에 선발되어 작년 초부터 금년 말까지 2년 간 업무는 하지 않고 공부만 하고 있다. 대부분 수업이 온라인으로 진행되어 집에서 공부하고 있다. 원래 마지막 한 학기는 외국에 가서 수업을 받기로 되어 있는데, 코로나로 인해 외국에 나가는 것이 여의치 않아 사위는 ‘제주살이’를 하며 온라인으로 마지막 학기를 마칠 생각이다. 어제 사위, 딸, 두 손주들이 모두 제주도로 떠났다. 약 6개월 정도 살아야 하니 이사와 다르지 않을 정도로 옮길 짐이 많다. 차에 짐을 잔뜩 실어 미리 보냈고, 별도의 짐은 택배로 발송했고, 다른 짐도 어깨에 메거나 여행용 가방에 잔뜩 싣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우리 부부는 운전기사와 보모 역할을 하며 서울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있었다. 부모의 역할이자 즐거움이다. 멋진 추억을 쌓는 ‘제주 살이’가 되길 바란다.
사위는 수업이 없는 날에는 큰 아이를 데리고 지방에 자주 1박 2일 또는 2박 3일간 다녀온다. 부녀간의 좋은 추억을 쌓고자 하는 마음도 있고, 그 시간 만이라도 딸아이가 둘째 아이와 조용하게 보내며 쉬는 시간을 만들어 주기 위한 배려이다. 딸아이는 가끔 이런 얘기를 한다. “둘째 아이 한 명만 돌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라고. 한 명의 아이를 돌보는 것과 두 명의 아이를 돌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다. 한 명의 아이에게 한 명의 어른이 필요하다면, 두 명의 아이에게는 세 명 이상의 어른이 필요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에, 딸아이의 얘기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사위는 직장인으로, 아빠로, 남편으로, 가장으로, 아들로, 사위로 수많은 역할을 해내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다. 딸아이 역시 지금은 출산 휴가로 쉬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사회로 복귀할 것이고, 아내, 엄마, 직장인, 며느리로 삶을 살아갈 것이다. 아이들의 역할과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아빠로서 마음이 짠하다. 결혼 36년 차인 우리 부부는 지금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많은 갈등과 힘든 고비의 시간도 있었지만, 잘 극복하며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가족’때문이었다. ‘가족’은 희망이면서 동시에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 부담은 책임으로 변환되고, 책임을 어느 정도 마친 후에는 여유로운 휴식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책임의 시간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다면, 휴식의 시간 역시 제대로 맞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삶의 무게’는 책임과 불안을 견디는 힘을 만들어 주는 ‘자기 단련’의 기회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 부부간의 갈등, 형제와의 갈등, 사회조직 구성원들과의 갈등,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갈등, 불안한 미래에 대한 갈등,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의 갈등 등 수많은 갈등은 삶 속에 지뢰처럼 숨어있다가 불쑥 나타난다. 지뢰밭을 지나야 편안한 대지를 밞을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뢰밭이 나타나지 않기를, 또는 지뢰를 무시하거나 지뢰가 없는 곳을 찾아 헤매기도 한다. 지뢰는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숙명이다. ‘삶은 고해와 같다.’라는 불교의 말씀을 우리는 직접 몸으로 체득하며 살아간다. 채득 하는 과정은 매 순간이 고통이다. 고통의 시간을 지나면 삶의 굳은살이 만들어진다. 그 굳은살로 앞으로 다가 올 고통을 견디고 버티며 살아가게 된다.
어제 오랜 친구들과 우리들의 오랜 단골 식당인 ‘충정각’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각자 자신만의 힘든 사연들을 갖고 있다. 그 사연들을 극복해가며 만들어진 근육과 굳은살로 앞으로 다가올 불안과 역경을 견뎌낼 수 있다. 지금의 과정을 겪어내며 만들어진 근육이 있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지금 겪고 있는 힘든 일들은 예방접종 같은 매우 고마운 일이다. 같은 과정을 겪으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연스럽게 극복해 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 둘의 차이는 단 한 가지밖에 없다. 주어진 삶에 대한 ‘수용’ 또는 ‘거부’. 거부나 저항은 우리의 에너지를 쓸데없이 소모시킨다. 거부나 저항에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활용하여 지금-여기를 수용하며 살아가는 것이 내가 삶을 살아가며 배운 것이고, 배운 것이 나의 삶이 된다. 몸과 마음은 굳은살로 뒤덮일 것이고, 굳은 살은 나를 보호해 줄 것이다. 굳은살이 내가 되는 것이다.
‘충정각’ 입구에 들어서면 한쪽 벽에 쌓인 수많은 와인병을 볼 수 있다. 모두 사람들이 마시고 남긴 빈 병들이다. 그 병 하나하나에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사연들이 담겨있다. 와인병들이 쌓여 멋진 벽을 만들어냈다. ‘충정각’의 ‘Accent Wall’이 된 것이다. 이 집을 찾는 손님들은 그 벽에 쌓인 빈 병을 보며 역사와 다녀간 손님들과, 손님들의 사연을 짐작하며 자신들의 사연도 쌓아놓는다. 그리고 몇 년 지난 후 와인병을 통해 자신을 과거를 돌아보며 ‘별 일 아닌 일에 너무 많은 애를 썼구나’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과거의 추억을 돌아보며 자신의 성장과 굳은살을 보고 만질 수 있게 된다. 삶의 무게를 견디며 우리는 그렇게 익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