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247]

양평 물소리 길은?

by 걷고

날짜와 거리: 20210704 – 20210705 25km

코스: 양평 물소리길 (양수역에서 국수역까지) 외

평균 속도: 3.8km

누적거리: 4,352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양평 물소리 길이 걷기에 좋은 길이라는 얘기를 주위에서 여러 번 들었다. 완주하면 받게 되는 배지 모양이 보기 좋아서 받고도 싶었다. 언젠가는 한번 가리라고 마음만 먹고 있다가 우연히 시간이 되어 걷게 되었다. 길동무 세 명이 동참해서 같이 걸었다. 전화로 문의 시 양서면 사무소에서 안내 책과 스탬프 북, 리본 등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양수역 1번 출구에서 면사무소를 들려 다시 양수역으로 돌아오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양수역 2번 출구에서 걷기 코스가 시작된다. 가는 길목에 있는 안내소에서 책자를 받을 수 있다는 블로그를 보고 양수역 2번 출구에서 걷기 시작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안내소가 철수했는지 길을 걸으며 유심히 봤는데도 찾을 수 없다. 길동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거꾸로 가서 면사무소에 들려 다시 이 길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양해를 구하고 스탬프와 선물을 포기하기로 하고 걸었다.


길동무 중 한 분은 늦게 도착할 것 같다며 먼저 출발하면 뒤따라 오겠다고 전화를 했다. 조금 후에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오늘 도착지인 신원역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으니 몸 잘 챙기고 다음 길에서 걷자고 얘기해도 미안한 마음에 인사라도 하고 싶다고 했다. 여운형 생가 기념관으로 가는 길목에서 반대편에서 한 여성이 걸어오고 있었다 신원역에서 기다리기로 했던 길동무가 몸이 조금 회복되어 거꾸로 걸어오다 만난 것이다. 놀랍고, 반갑고, 고마웠다. 예상 못했던 일이 발생해서 놀랐다. 길 중간에서 만나니 더욱 반가웠다. 몸이 회복되어 씩씩하게 걸어오는 모습을 보니 고마웠다. 양평 물소리 길을 지금은 고인이 되신 아버님과 걸었던 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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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 함께 걷는 길동무지만, 우리 넷은 길을 통해 모두 친구가 되었다. 그런 면에서 양평 물소리 길은 소통의 길이고, 친구의 길이며, 나눔의 길이다. 굳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자의 얘기를 자연스럽게 하기 시작한다. 나와 한 친구는 할 줄 아는 것이 걷기와 숨쉬기 밖에 없다고 했다. 솔직한 얘기다. 그 친구와 나는 심지어 자전거도 탈 줄 모른다. 오늘 얘기하며 알게 된 사실이다. 작물 이름도 모르고, 꽃 이름도 모르고, 오직 걷기만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너무 허당이 된 자신이 민망해서 걷기마당이라는 동호회에서 활동하며 후기를 쓰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책 한 권도 발간하게 되었다고 자랑거리를 늘어놓기도 했다. 다른 친구는 딸과 함께 리스본에서 위험한 순간을 벗어났던 추억을 얘기했다. 그 얘기를 듣고 있던 다른 친구들은 그녀를 부러워했다.


한 친구 전화기는 연신 카톡이 울려댄다. 두 아들들이 보내오는 도움 요청 신호이다. 공부만 할 줄 알고, 두 명 모두 의대 졸업반에 있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들이라 엄마 입장에서는 할 일이 많다고 했다. 그 ‘공부만’이 내게는 무척 부럽게 들렸다. 나는 ‘공부도’ 못했다. 정말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늦게 합류한 친구는 아버지 간병과 직장생활을 하는 동시에 아이를 키웠다고 했다. 아버지 존재가 사라지면서 갑작스럽게 찾아온 허탈감과 허전함, 그리고 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면서 쌓인 무리로 인해 병을 얻게 되었고, 지금은 조금씩 회복 중에 있다고 했다. 간병 한 가지 일만으로도 힘에 부치는 일인데, 20년 이상 간병하며 직장인으로 또 엄마로 역할에 최선을 다한 그녀의 빠른 회복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녀는 신원역에서 식사 후 귀가했고, 우리 셋은 ‘뱃속 허기’는 채웠지만 ‘걷기 허기’가 채워지지 않아 국수역까지 더 걷기로 결정했다. 세 명의 공통점 한 가지를 발견했다. 나무, 꽃, 작물 등의 이름은 몰라도 걷기는 무지 좋아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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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한 분이 밭에서 일하고 있다. 무슨 작물이냐고 물었더니, 강낭콩이라고 했다. 얼굴에는 맑은 미소가 가득하다. 심지어 주름살조차도 웃고 있다. 나는 수확이 좋으냐고 세속적인 질문을 했고, 노인은 좋다는 탈속적인 답변을 했다. 어떤 환경에서도 그 노인은 아마 그렇게 말씀할 것이다. 한 평생 살아오며 좋은 일, 나쁜 일을 많이 겪은 분이기에 작황의 좋고 나쁨은 전혀 그분의 마음을 흔들어 놓지 못할 것이다. 인사를 마치고 길을 걷다가 중간에 길이 보이지 않았다. 툇마루에 앉아있던 노부부가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르쳐 주었다. 노부부는 툇마루에 앉아 별 할 일 없이 그냥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그분들의 일이다. 어떤 의도조차 남아있지 않은 그냥 삶 그 자체이다.


왜 ‘양평 물소리 길’로 명명했을까? 물은 흐르며 사람과 자연, 모든 존재들에게 생명을 전달한다. 물속에 수많은 존재들이 살아가고 있다. 인간도 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물은 생명의 원천이다. 양평 물소리 길은 생명의 길이다. 세상사에 지친 사람들은 걸으며 생명력을 회복해 갈 수 있는 길이다. 상처 받은 사람들은 치유받고, 마음을 닫은 사람들은 물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열게 된다. 물소리를 평생 들으며 살아오신 분들을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길이다. 또한 길동무들을 통해 자신을 볼 수 있는 거울 같은 길이다. 아직 다음 일정을 잡지는 못했지만, 남은 길을 걸으며 ‘물소리 길’의 의미를 좀 더 깊게 알아가고 싶다. 물소리 길을 걸으며 충만한 하루를 보냈다. 충만? 의미 없는 말이다. 그냥 하루를 보냈고, 하루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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