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297]

빨리 송금해 주실 거죠?

by 걷고

날짜와 거리: 20211111 - 20211114 48km

코스: 서울 둘레길 수서역에서 고덕역까지 외

평균 속도: 4km/h

누적거리: 5,343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https://m.tranggle.com/istory/myviewer/story/post_id/321985/20219286361?tp=pcno

나이 들어가며 여러 가지 불편한 일들이 생활 속에서 발생한다. 최근에 있었던 몇 가지 일들이 나이 들어감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렇다고 이런 변화가 불편하다고 불평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변화에 맞춰 적응해 나가기도 하고, 어떤 일들은 무시하기도 하며 살아간다. 상황에 맞춰 살아가는 적응과 변화에 대한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를 쓴 지 벌써 2년 정도가 지나간다. 이제는 마스크 쓰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외출 시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불안하기도 하다. 혼자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니면 외계인 쳐다보듯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야만 한다. 마스크를 쓰지 않던 시절에는 마스크를 쓰는 사람들을 보면 유난 떤다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고 적응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그럼에도 굳이 적응과 변화를 하지 않고 불편을 감수하며 살아가겠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각자 살아가는 방법의 차이일 뿐이다.


아침에 등산화를 신기 위해 현관에 앉아서 끈을 묶은 후 일어나려는데 바닥에 손을 짚지 않고는 일어설 수 없다. 손을 바닥에 짚으며 몸에 힘을 주어 일어서려니 끙끙 거리는 소리가 저절로 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가 안쓰러운 듯 쳐다보며 낮은 의자를 하나 현관 입구에 놓아주었다. 그 의자에 앉아서 신발 끈을 묶고 풀고 하니 편안하다. 몸의 노화에 따른 변화를 인정하고 그에 맞는 적응 방식을 찾아가며 살아가고 있다. 변화에 대한 적응법이다. “살아남는 종(種)은 강한 종이 아니고, 변화에 적응하는 종”이라고 얘기한 진화론자의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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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가 제주도 항공권을 보내 주었는데, 좌석까지 배정받은 상태에서 보내 주어서 신기했다. 모바일 티켓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좌석 배정까지 되어 있었다. 스마트 폰을 이용해서 사전에 좌석 배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면 공항 내 기기에서 예약번호로 좌석 배정을 받아야 한다. 만약 항공사 카운터에서 좌석 배정을 받겠다면 수수료를 내야만 한다. 많은 것이 너무 급박하게 변해가고 있다. 제주도에 머물고 돌아오는 항공권을 사위가 예약해 주었다. 혼자 끙끙거리며 좌석 배정을 시도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좌석 배정을 받는 데 성공했다. 사위와 딸에게 마치 개선장군이 된 것처럼 큰소리치며 자랑을 했다. 아이들에게 일상이 우리에게는 매우 특이한 일이 되어버렸다. 같은 하늘, 같은 세대를 살면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변화에 대한 적응을 위한 노력 덕분에 한 가지 기술을 습득한 것이다.


휴대전화와 작은 지갑을 들고 다니는 것이 불편하다. 지갑에는 신용카드와 도서관 카드, 소액의 현금과 명함이 들어있다. 간단히 외출할 때에도 이 두 가지는 늘 들고 다녀야 하는데 은근히 불편하다. 사위에게 얘기했더니 신용카드를 뒷면에 넣을 수 있는 휴대전화 케이스를 구입해 줬다. 기분 좋게 휴대전화 뒷면에 꼽혀있는 신용카드를 지하철 입구에서 태그 했는데 ‘두 장 이상의 카드 또는 잔액 부족’이라는 문구가 뜬다. 결국 신용카드를 휴대전화 케이스에서 빼서 태그를 하고 입장했다. 주위에 물어보니 NFC 설정에 대해 설명을 해주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내와 둘이 머리를 맞대고 이리저리 시도를 하다 NFC 설정을 변경시켰다. 지하철 입장 시 신용카드를 빼지 않고 휴대전화 뒷면을 태그 해서 입장할 수 있게 되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쾌재를 부르는 내 모습을 젊은 세대들은 이상하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너희들이 ‘국제극장’과 ‘신신백화점’을 아느냐고, 또 백 원짜리 지폐‘를 본 적 있느냐고 괜히 혼자 속으로 큰소리쳐 본다.


최근에 후배가 책을 무료로 받아볼 수 있는 카페를 소개해 주었다. 이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책 한 권 무료로 읽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어야만 했다. 책을 읽고 싶은 이유와 기대평, 그리고 서평 이벤트를 개인 SNS에 여러 곳 올려야만 한다. 그리고 올린 내용을 URL 복사해서 다시 카페에 올려야만 한다. 올렸다는 확인을 받는 것이다. 책을 읽은 후에는 서평을 써서 개인 SNS와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서 서평을 올려야 하고, 그 내용을 URL 복사하여 다시 카페에 올려야만 한다.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다. 이 수고를 하느니 책을 사 볼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불편함과 번거로움으로 인해 물러서고 싶지 않다는 괜한 오기가 발동한다.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자신에게 증명하고 싶고, 이런 불편함을 즐길 줄 아는 노익장을 과시하고 싶기도 했다. 책 한 권은 서평까지 마무리했고, 오늘 아침에 다시 다른 책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당첨 확인을 확인했다는 내용과 필요한 내용을 쪽지로 담당자에게 다시 보내야 한다. 어떻게 하는지 방법을 몰라 고민 끈에 겨우 마무리했다. 번거로움과 불편함을 피하기보다 가끔은 즐기는 것도 변화에 적응해 가는 방법 중 하나이다. 사람이나 상황이 불편하다고 피하면 결국 홀로 독수공방 할 수밖에 없다. 불편함을 마주하고 이겨내며 변화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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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모임에서 친구 서 너 명이 만나 같이 걷고 뒤풀이를 한다. 40대, 50대, 그리고 60대가 모여 있다. 가장 젊은 친구가 뒤풀이 비용을 계산하고 나중에 1/n로 정산해서 보내주면 송금해 주는 더치 페이 방식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더치 페이가 점점 더 편해진다. 근데 이 친구가 카톡으로 정산 금액을 보내 주면서 늘 “빨리 정산해 주실 거죠? 우리 정산해요”라는 문구를 써서 보낸다. 집에 있는 태블릿 PC에서 송금하는 나로서는 외출 시 마음이 급할 때가 있다. 며칠 전 함께 걸으며 그 진상을 알게 되었다. 카톡으로 정산을 하는 방식이 있고, 메시지도 카톡이 보낸 것이지 자신이 보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언젠가부터 걷기 동호회에서도 뒤풀이할 때 정산을 위해 현금이 오고 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모두 이런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졸지에 시대에 뒤떨어진 노인네가 되었다. 카톡으로 이제는 바로 송금할 수 있다고 말한 덕분에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었고, 동시에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당분간 “빨리 송금해 주세요”라는 문구에 대한 놀림은 계속될 것 같다. 덕분에 하나 배운 것이다.


제주도에 내려가 있는 동안 사위와 딸이 아내 생일 선물로 휴대전화를 주문해서 선물했다. 그리고 전에 사용했던 휴대전화의 모든 자료를 새로 구입한 휴대전화로 이동시켜주었다. 휴대전화는 무조건 가게에서 구입하고 전문가들만이 자료를 이동시켜주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사용 중이던 휴대전화기 위에 새로 구입한 휴대전화를 올려놓으니 저절로 자료가 이동되었다. 신기한 일이다. 무슨 조치를 취했느냐는 묻지 못했다. 얘기를 들어도 이해가 잘 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사용 중이던 휴대전화의 초기화 작업도 할 수 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일상이 우리에게는 매우 특별한 마법이나 능력으로 보인다. 우리의 어떤 모습이 아이들에게 멋진 능력으로 보일지 궁금하기도 한다.


최근에 일어난 사건(?)들을 돌이켜보며 글로 정리하니 사람들은 각자 같은 세상 속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나이의 차이일 수도 있고, 적응력의 차이일 수도 있고, 노력의 차이일 수도 있고, 생각의 차이일 수도 있다. 어떤 차이이든 그 차이로 인해 편함을 추구할 수도 있고 불편함을 감수할 수도 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면서 한 가지 떠오는 중요한 생각이 있다. 나의 불편함이 나 혼자만의 불편함으로 끝나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혹시나 주변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 피해나 불편함을 주는 일은 가능하면 피하고 싶다. 그래서 할 수 있는 한 불편함과 번거로움을 즐기며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기로 했다. 시간도 많고 별로 할 일도 없기에 불편함이 즐거운 놀이가 될 수도 있고, 번거로움이 시간을 보내는 놀 거리가 되기도 한다. 늙어감이 반드시 불편한 것만은 아니다. 불편함이 즐거움으로 변하는 순간 늙어감은 행복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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