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기억 지우개

by 걷고


우리가 살아온 과거를 모두 지울 수 있다면, 그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이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어릴 적 미술 시간에 그림을 그리는데 워낙 소질이 없는 나는 잘못 그린 스케치 북 한 장을 떼어내고 다시 그려도 역시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잘못 그린 그림을 찢어버리고 다시 그린다고 해서 그림이 잘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워낙 그림에 관심도 없고 소질도 없어서 좋은 그림을 기대할 수는 없다. 대신 내가 잘하는 것에 집중함으로써 한 분야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나가며 자신의 길을 갈 수는 있다. 사람마다 얼굴 모양이 다르듯 타고난 재능과 기질이 다르다.


최근에 읽은 책 ‘나쁜 기억 지우개’는 나쁜 기억을 지우라는 의미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나쁜 기억을 토대로 지금의 삶을 온전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가 가장 중요시 여기는 점은 삶의 가치이다. 어떤 가치관을 갖고 어떤 삶을 살아갈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원칙을 만들고, 그에 맞는 삶을 살아가라고 얘기하고 있다. 또한 과거의 실수를 토대로 과거에 묶이지 않고 ‘지금-여기’에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나가라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과거를 바꿀 수도 없고, 미래를 예측해서 살 수도 없다. 오직 ‘지금-여기’에서만 자신이 원하는 삶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가치관을 만들고 유지하며 ‘지금-여기’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가자는 얘기를 소소한 일상의 경험을 통해서 이해하기 쉽게 안내하고 있다.


“마음에도 뼈가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첫 번째로 삼는 가치. 경험으로 인한 인식과 사고가 차츰 마음의 뼈를 만들고, 서서히 굳게 한다. 그곳에 무수한 가치의 근육이 붙어 뼈를 세우면, 그때 하나의 철학이 된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만들어진 ‘마음의 뼈’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본문 중에서)


저자는 ‘마음의 뼈’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원래 자신의 모습은 사라지고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을 만들고 가꾸다 보면 자신의 실체가 사라져 버린다. 게다가 상대방의 다양한 기호에 따라 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애쓰다 보면 가면만 있고, 실제 얼굴은 점점 더 작아지고 사라져 버려서 가면을 얼굴로 착각하며 살아가게 된다. 속 빈 강정이 되는 것이다. ‘마음의 뼈’는 속 빈 강정의 속을 가득 채우는 것으로 보여주는 삶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이 바로 자신의 가치이다. 사람마다 가치를 두는 부분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부귀를, 어떤 사람은 봉사를, 어떤 사람은 가장 평범한 일상을, 어떤 사람을 권력을 추구한다.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을 하는 것이 ‘마음의 뼈’를 단단하게 만드는 출발점이다.


저자는 삶의 수용에 대해서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살기 위해 때로는 참기도 하고 때로는 감정과 의견을 표출하기도 한다. 직장에서 또는 생활 현장에서 참는 이유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참는 것에 대한 보상이 참지 못하고 표출하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수많은 사람들과 상황을 겪게 된다. 그때마다 만약 참지 못하고 감정을 표출한다면 사회생활을 하기에 무척 힘들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 부적응자가 될 가능성도 높다. 우리는 매 상황을 맞이할 때마다 자신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참거나 견디고, 아니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해서 다른 방법을 모색하기도 한다. 삶의 가치에 대한 기준이 확실히 확립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말조심에 대해서 한 말은 가슴에 많이 와닿는다. “입으로 삼키지 않지만, 입으로 뱉는 것, 말을 만들어내뱉는다. 내보내며 뱉지도 않고, 들이쉬며 삼키지도 않는 게 하나 있다. 척추가 뼈대라면 혀는 사람의 심지다.” (본문 중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상처를 많이 주는 것이 바로 ‘말’이라고 생각을 한다. ‘구화지문 (口禍之門)’이라는 말이 있다. 입이 모든 재앙의 문이라는 의미다.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이 상대방에게는 큰 상처로 각인되는 경우도 많다. 눈, 귀, 콧구멍이 두 개인데 반해 오직 입은 하나밖에 없다. 듣고 보고 냄새 맡은 것의 반 정도만 얘기하라는 조물주의 의도일 것이다. 그만큼 말은 다스리기가 힘들다. 뱉어낸 말은 화살이 되어 반드시 되돌아온다. 불교에서는 입으로 짓는 죄를 의미하는 구업(口業)이라는 말이 있다. 불교의 천수경 첫머리는 ‘정구업진언 (淨口業眞言)’으로 시작된다. 입을 청정하게 한 후에 염불을 시작하라는 의미다. 말조심하고 청정한 말을 하는 것이 ‘마음의 뼈’를 세우는 가장 기본적이 작업이 될 수도 있다.


우리의 하루하루가 모여 삶을 이룬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우리 ‘마음의 뼈’를 만들어 나간다. 일단 ‘마음의 뼈’가 세워지면 그 힘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삶의 가치관을 지니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삶의 생기가 살아나는 것이다. “내가 두려워한 것은 단순히 나이가 들고, 더 늙어 보이는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생기’를 잃는 것. 생기란 굳지 않은 상태이며, 어디로든 흘러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딛고 일어날 수 있는 체력과 의지, 이견을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함과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다.” (본문 중에서)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적응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세상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갖고 세상에 나가 자신의 꿈을 펼치는 것이다. 고정관념을 버릴 줄 아는 용기와 지혜로 세상을 유연하고 수용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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