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인연
날짜와 거리: 20220208 - 202202011 27km
코스: 일상 속 걷기
평균 속도: n/a
누적거리: 6.087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지난 사흘간 기간제 공무원 채용면접관으로 경기도 내 두 곳의 시청에 다녀왔다. 갈 때마다 늘 최소한 한 시간 이전에 도착해서 주변을 여유롭게 걸은 후 면접장에 도착한다. 대부분 시청 주변에는 산책을 하기에 아주 좋은 강이나 낮은 산이 있다. 점심 식사 후 오후 면접 전까지 한 시간 이상의 시간이 남을 때에도 걷는다. 답답한 면접장에 있는 것보다 걸으며 소화도 시키고 오후 면접을 진행할 에너지를 회복하기 위해서이다. 왜 시청의 위치가 산을 등지고 있거나, 강 주변에 있을까? 부지를 정하기 위한 여러 가지 상황들이 있었을 것이다. 오늘 아침에 나는 홀로 나만의 결론을 내렸다. 산의 공기는 늘 맑고 깨끗하고 상쾌하다. 강물은 모든 것을 수용하되 강의 본질을 잊지 않는다. 자연을 통해서 청렴하고 공정한 공무원의 정체성을 유지하라는 배려 깊은 이유 때문에 산과 강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 오후에 기분 좋은 카톡을 받았다. 그저께 면접을 같이 진행했던 전직 공무원께서 함께 면접을 진행해서 좋았다고 카톡을 보내왔다. 몇 년간 면접위원을 하고 있지만, 이런 연락을 받은 일은 처음이어서 기분이 좋았다. 연락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과 함께 다음에 다시 볼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며 답을 보냈다. 처음 인사를 나눌 때 그가 최근에 정년 퇴임한 분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미 5년 전에 퇴임했다는 얘기를 듣고 많이 놀랐다. 그다지 연세가 많아 보이지도 않았고, 몸 관리를 잘하셔서 군살도 없고 몸이 매우 가벼워 보였다. 얼굴은 맑아 보였고 표정은 미소가 가득하고, 유쾌하며 기분 좋은 에너지를 전해주는 사람이다. 5년 전에 퇴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후배 직원들이 반갑게 인사를 드리러 오고 허물없이 얘기를 나누는 모습도 여러 번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식당에 갔을 때에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사람도 볼 수 있었다.
그의 모습, 그를 대하는 후배들의 모습을 보며 그가 훌륭하고 성실하게 공직생활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일반적으로 퇴임을 한 전직 상사를 반기는 경우가 별로 없을 것 같다. 퇴직한 사람들끼리 회사 단톡방을 만들어도 활성화되지도 않고 심지어 탈퇴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하지만 그를 대하는 후배 공무원들의 태도는 사뭇 달랐다. 심지어는 후배들이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면접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퇴직한 사람이 후배들을 찾아가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어서 먼저 찾아가지 않는다고 하는데, 후배들이 인사를 하기 위해 먼저 찾아온다. 흐뭇하고 기분 좋은 풍경이다.
점심 식사를 함께 하며 그의 동장 근무 시절 에피소드를 들을 수 있었다. “행패가 심한 어느 민원인이 있었다. 민원인이 직원에게 욕까지 하자 화가 나서 강하게 항의를 하며 마무리를 했다. 피해를 입은 직원에게는 영화를 보거나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며 잊어버리라고 다독인 적이 있다.” 그는 직접 나서서 민원을 해결하고 직원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했다. 일반적으로 기관장들은 민원에 휩싸이고 싶지 않아 피하거나, 심할 경우에는 무조건 사과하라고 직원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성가시고 피곤한 민원을 억지로 무마시키려는 안일한 대처방식이다. 진상 고객들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는 매장 직원들의 모습을 TV나 신문을 통해서 보며 분노를 느낀 적도 있었다. 몰상식한 고객의 ‘갑 질’ 습관과 잘못된 대처방식이 만든 매우 불합리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의 경우는 달랐다. 비겁하게 숨거나 뒤에 앉아서 방관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멋지게 수행했다. 공무원의 역할은 공정한 민원 처리와 함께 부하 직원에 대한 공정한 상벌과 보호이다. 직접 나서서 민원인의 불합리한 요구에 항의하고 거친 태도에 적절한 대응을 하며 직원들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후배 직원들은 자신의 미래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면접 중에도 그는 매우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며 면접 지원자들의 태도를 신중하게 검토하고 판단하고 있었다. 기간제 직원들과 함께 근무했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적합한 인재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가 보내온 카톡 메시지에는 “재방문 시, 더욱 우수한 인력을 선정하여 주시길 고대합니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비록 퇴임한 공무원이지만, 그는 여전히 지금도 공무원이고, 앞으로도 영원한 공무원이다. 공직 생활 내내 원칙과 공정을 화두로 삼아 한평생 내내 근무했던 그는 그간 아내와 함께 보내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가능하면 아내와 함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나가며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의 얼굴, 모습, 체형, 몸에서 풍겨 나오는 이미지, 말투,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서 그가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밝게 대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멋진 인생 2막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오랜만에 좋은 사람을 만났고, 즐거운 연락을 받아서 기분이 좋다. 오랜만에 비슷한 연배의 사람을 만나 반가웠고, 그가 사는 모습이 보기 좋아 더욱 기분이 좋아진다. 기분 좋은 인연이다. 언제 기회가 되면 같이 소주잔을 기울이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와 같은 공무원들이 있기에 우리나라는 건강하다. 비록 최근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일부 고위 공무원들의 태도나 행정 지침을 보면서 실망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와 같은 공명정대한 공무원들이 있기에 희망을 느낄 수 있다. 미꾸라지 몇 마리가 도랑을 흐리게 하더라도 큰 강과 바다 전체를 흐릴 수는 없다. 시청이 산과 강 근처에 있는 이유를 생각하며 나옹화상의 시가 떠오른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