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329]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by 걷고

https://m.tranggle.com/istory/view/20221104700?tp=pcno

날짜와 거리: 20220202 - 202202013 16km

코스: 광명 누리길 외

평균 속도: 3.2km

누적거리: 6.103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오랜만에 나들이님이 이끄시는 길을 다녀왔다. 길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과 한결같은 모습으로 길을 열고 안내를 하며 참석자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눈다. 늘 그렇듯 그는 모임 시간 이전에 도착해서 주변을 걸으며 사진을 찍는다. 길을 걸으며 사진을 찍고, 사진을 정리해서 개인 블로그와 걷기 동호회 카페에 올린다. 걸으며 찍는 순간적인 사진임에도 오랜 경험에서 나온 사진은 보기 좋다. 사진을 평가할 수 있는 눈이 없는 사람이 표현할 수 있는 최대의 찬사가 바로 ‘좋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이 가끔은 답답하고 안타깝다.

광명 누리길은 산책하기에 아주 편안한 길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소로이며 흙길이다. 큰길보다 소로(小路)를 더 좋아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한 사람 정도 지나갈 수 있는 길을 조용히 걸으며 마음속 소로를 걸을 수 있다. 평상시 산만한 마음의 소로와는 다른 평화로운 마음의 길을 걸을 수 있다. 함께 걸으며 동시에 홀로 걸을 수 있는 것도 소로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이런 길은 밤새껏 걸어도 좋을 것 같고 오래 걸어도 지치지 않는다. 길이 주는 편안함 때문이다. 이 길을 걸으며 티베트 차마고도를 넘는 나귀와 차(茶) 상인들의 대열이 연상된다.


길을 걸으며 길동무들과 얘기를 나눈다. 중년의 고민은 대동소이하다. 부모님 건강, 자식들 결혼과 취업, 그리고 자신과 배우자의 건강과 평안이다. 한평생 살아간다는 것은 좋은 일의 추억으로 힘든 일을 견디고 극복하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늘 좋은 일만 있다면 마음이 들뜰 것이고, 늘 나쁜 일만 있다면 마음이 우울해질 것이다. 이 둘, 들뜸과 우울, 의 적절한 균형을 잡아가며 살아가는 것이 삶이다. 그렇기에 힘들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고, 좋은 일 생겼다며 춤추고 노래 부를 필요도 없다. 삶의 좋고 나쁜 일들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하늘의 선물이다. 이 두 가지가 있기에 우리는 살아 낼 수 있고, 또 자신을 낮추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세상살이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신을 저절로 낮추게 되고,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면서 삶의 활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두 가지를 적절하게 조화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걷기’다. 걸으며 자연을 통해 배울 수도 있고, 내면을 다스릴 수 있다. 또한 함께 걷는 길동무들을 위한 기도도 할 수 있고, 대화를 나누며 서로 배우고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다. 함께 걷되 동시에 홀로 걷는다. 힘들 때에는 서로에게 힘이 되고, 좋은 일을 나눔으로써 기쁨을 공유한다. 걷기는 단순한 신체 활동이 아니고 심신의 건강을 다지는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자 최선의 방편이다.


광명동굴은 몰라 볼 정도로 바뀌었다. 약 7, 8 년 전 걷기 동호회에서 방문했을 때에는 덜렁 동굴 입구만 있었고, 주변에는 흙먼지가 가득했었다. 지금은 유명한 관광지로 조성되어 예전의 그곳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바뀌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가족들과 함께 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성수기에는 사람들에 치여 구경하기조차도 힘들 것 같다. 변화는 활기를 불어넣어 주지만 동시에 과거의 추억을 기억 뒤편으로 몰아내기도 한다. 사람이 많이 모인 관광지는 걷기에 그다지 좋은 길은 아니어서 빨리 지나쳐 간다.

기형도 문학관을 들렸다. 한 시인의 삶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곳이다. 시인 이름은 들어 본 적은 있지만 그에 대해 아는 바는 전혀 없다. 30세의 나이에 삶을 마감했으니 그리 오래 산 것은 아닌데, 그의 문학관이 있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웠다. 비록 30년의 짧은 세월을 살아온 사람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는 매우 오랫동안 살아갈 것이다. 문학관을 나오며 어느 전직 대통령의 이름이 떠올랐다. 80대 후반에 죽음을 맞이한 그의 이름을 사람들은 밟고 지나가고 있고, 30년 간 삶을 살았던 시인은 문학관으로 부활되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얼마나 살았느냐가 아니고,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한 이유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 걷는 것은 아닐까?


기형도 문학관에서 광명역으로 가는 마지막 길에 난코스를 만났다. 어쩌면 길을 안내하는 나들이님이 참석자 모두에게 강한 추억을 심어주기 위해 준비한 선물일 수도 있다. 덕분에 이 길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길을 걸으며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걸을 때도 있다. 생각 없이 걷는 것을 무념의 상태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생각 없는 것은 대부분 망상 속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무념무상의 상태는 맑고 투명하며 동시에 매우 고요한 상태이다. 오히려 난코스를 걸으며 몸과 발과 땅의 사소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걷는 것이 바로 무념무상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경사가 급한 오르막길과 깎아내린 듯 급한 내리막길을 걸으면 잡념은 저절로 사라진다. 오직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집중력과 마음챙김만 남는다. 가끔은 힘들고 위험한 순간들이 긴장감으로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길을 안내해 주신 나들이님께 감사를 표한다. 사모님께서 직접 준비해 주신 맛있는 샌드위치를 맛볼 수 있어서 또한 감사했다. 우장군님께서 준비해 오신 군밤도 너무 맛있게 먹었다. 광명동굴에서 마신 커피 한 잔의 추억도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광명역에 도착 후 각자 집으로 돌아간 뒤 나들이님과 나는 근처에서 치맥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나들이님은 5시 40분 KTX로 현장 사무실로 출발했고, 나는 5시 45분 KTX로 서울역으로 출발했다. 길을 마친 후 각자의 길을 향해 출발했다. 종점은 출발점이다. 또한 헤어졌다가 후에 다시 만나 길을 걷는다. 헤어짐은 만남의 다른 얼굴이다. 좋은 추억 만들어 주신 나들이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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