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염장이

by 걷고

인왕산 둘레길을 친구들과 함께 다녀왔다.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편안한 둘레길을 함께 걸으며 우정을 쌓아가고 있는 길동무들이다. 길은 도(道)라고도 한다. 마음공부하는 것도 도(道)라고 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을 정도(正道)라고 한다. 따라서 길동무는 바로 도반(道伴)이다. 서로 정도를 가게끔 이끌어주는 도반이다. 서로의 모습을 통해서 배우기도 하고, 힘든 시기에는 서로의 의지처가 되기도 한다. 부처님께서도 자신을 법의 등불로 삼으라고 말씀하셨다. 법등명(法燈明)이다. 자신은 본성, 불성, 본래면목을 의미한다. 너의 본성과 나의 본성은 하나이다. 따라서 길동무는 나의 법등명이 된다. 그 반대도 성립된다. 좋은 도반을 만나면 마음공부의 반은 이미 한 것과 다름없다고 한다. 그만큼 도반은 중요하다. 길동무의 부군이 최근에 책, ‘대통령의 염장이’를 발간했다. 덕분에 우리는 삶과 죽음을 돌아볼 수 있는 저자의 서명이 담긴 귀한 책 선물을 받았다.

저자인 유재철은 대한민국 대표 염장이다. 예전에 TV 프로그램에 딸과 함께 나와 진솔한 얘기를 나눈 것을 시청한 적도 있고, 여러 신문에 그의 인터뷰 기사가 나온 것을 읽은 적도 있다. 그는 이미 이 분야에서 장인 반열에 오른 사람이다. 한 분야의 일을 30년 이상 수행하며 살아온 그 길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가고 있다. 유명세를 떠나 그의 삶의 태도 자체가 주는 큰 울림이 있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나이에 자신의 분야에서 정상에 오른 것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그 역시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다. 차이가 있다면 한 분야에서 사명감을 갖고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반석 같은 마음을 유지하고 꾸준히 노력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차이는 결코 쉽게 메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삶에 경의를 표하며 선물로 받은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염장이로서 수많은 망자들을 편안하게 보내드리고, 유족들이 일상으로 돌아가게끔 도움을 주는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지키는 문지기와 안내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망자는 편안하게 망자의 삶으로 들여보내고, 유족들은 돌아가서 자신의 삶에 충실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어느 누구도 이 문을 함부로 넘나들 수는 없지만, 어느 누구도 이 문을 통과하지 않을 수는 없다. 사람은 또는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들은 이 세상에서 머물다 저 세상으로 간다. 이는 삶의 철칙이자 죽음의 철칙이다. 삶은 죽음으로 연결된다. 삶의 끝이 죽음이다. 윤회를 믿는다면 죽음의 끝은 삶이 된다. 삶과 죽음의 순환이다. 어떤 존재든 이 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통해서 이 윤회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고 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한 호흡에 달려있다고도 한다. 한 숨 내쉬었다가 들이마시지 못하면 바로 죽음이다. 매우 짧은 찰나에 삶이 죽음으로 변한다. 이는 삶 속에서도 매 순간 일어난다. 우리네 삶의 매 순간이 삶과 죽음의 순환과정이다. 화가 치밀어 오르면 ‘화의 삶’이 되고, 그 화가 가라앉으면 ‘화의 죽음’이 된다. 모든 일과 상황, 감정, 감각, 생각, 느낌 등이 일어났다 사라진다. 매 순간 삶과 죽음의 윤회가 반복되고 있다. 저자는 책에서 잘 죽기 위해서 잘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죽음의 무게는 그들이 살았던 삶과는 상관없이 모두 같다고 한다. 대통령이든, 수행자든, 재벌이든, 평범한 노동자든 한평생 살다가 가는 삶의 무게, 즉 죽음의 무게는 같다.


“초상집에는 자기 인생을 돌아보기에 충분한 조건이 갖춰져 있는 것이다. ‘죽음’은 예외 없이 살아 있는 사람에게 손님처럼 들이닥친다. 순간의 즐거움을 좇는 잔칫집과 달리, 초상집에서 발견하는 것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자신의 인생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 초상집에서는 ’ 인생의 화두‘를 얻어오기 마련이다. (중략) 막상 죽음의 기로에 서보니, 매일 후회할 일을 반성하지 않으면 죽기 전에 그 일을 청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본문 중에서)


저자는 이 책에서 죽음은 언제 닥칠지 모르니 후회할 일을 하지 말라고 한다. 수많은 죽음을 지켜본 그는 죽음을 대하는 수많은 유족들의 모습도 바라보았을 것이다. 망자의 모습은 유족들의 모습과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잘 살아온 사람은 죽음을 수용하며 편하게 눈을 감을 것이고, 그를 지켜보는 유족들 역시 편안하게 보내드릴 것이다. 나의 삶이 바로 가족의 삶이고, 친구의 삶이고, 많은 지인들의 삶과 연결되어 있는 중요한 지점이다. 우리가 잘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어떤 삶을 잘 살은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답은 각자의 삶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삶의 희로애락을 통해서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을 찾아낼 수 있다. 삶은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한 과정이다. 고통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선물이고, 즐거움은 고통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는 선물이다.

저자는 ‘엔딩 노트’를 언급하며 자신의 죽음을 살아있을 때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장례식의 주인은 본인이지, 유족이나 문상객들이 아니라는 말이 깊게 와닿는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은 루게릭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는 모리 교수와 그의 제자가 삶의 다양한 이슈들에 관해 얘기 나눈 것을 정리한 책이다. 그는 죽기 전에 보고 싶은 친구들을 병상으로 불러 모아 일일이 인사를 하며 고마웠던 점, 아쉽고 후회했던 점, 용서받을 점들을 나눈 후 음악을 틀고 마치 파티하듯 본인의 장례식을 스스로 즐겁게 주관했다. 저자가 언급한 ‘생전 이별식’을 한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평화 주의자이며 자연주의자인 스콧 니어링은 백 번째 생일 되는 날에 맞춰 스스로 곡기를 끊으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놓치지 않고 지켜보며 아내 옆에서 거룩한 죽음을 맞이했다. 오래전부터 이 둘의 모습을 생각하며 나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고,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죽음을 당하기보다는 맞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가끔 외동딸과 사위에게 나의 죽음과 장례식에 대해 얘기를 한다. 딸아이는 싫어하는 내색을 하면서도 귀 기울여 듣는 것 같다. 무남독녀인 외동딸이 나의 죽음으로 인해 힘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2019년에 등록해서 카드 사진과 등록증을 딸에게 보내 주었다. 작은 명함 지갑에 이 카드를 늘 들고 다닌다. 갑자기 어떤 상황이 닥칠지 모르니 미리 준비해서 쓸데없는 연명치료를 하지 않게끔 준비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이제는 저자가 언급한 엔딩 노트를 작성해 봐야겠다. 무슨 내용으로 어떻게 작성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자의 아내인 길동무에게 물으면 기본적인 도움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엔딩 노트를 미리 작성해서 딸에게 전해주면 나의 죽음을 슬퍼할 수는 있겠지만, 크게 당황하지는 않을 것 같다. 엔딩 노트가 유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리 교수처럼 살아있을 때 사전(死前) 장례식을 미리 준비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죽음을 충실하게 준비하고 맞이한다는 것은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과 같은 의미다. 책에 나온 많은 이들의 죽음을 보며 손에 쥐기보다는 펴기를, 욕심을 들고 있기보다는 내려놓기를, 쓸데없는 망상에 휩쓸려 살기보다는 고요한 마음을 유지하기를 희망해본다. 연습이 필요하다. 평상시에 꾸준히 연습을 해야만 갑자기 닥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본연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공부를 꾸준히 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책 ‘대통령의 염장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삶과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치고, 건전한 장례문화 조성에 도움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다시 한번 저자의 삶에 경의를 표하며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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